천국에서의 골프 - 세상을 바꾼 위대한 천재 18명의 인생 수업
밥 미첼 지음, 김성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당신이 만약 50대 창창한 나이에 죽음의 기로에 선다면? 신이 찾아와 나와 골프 내기를 해서 이기면 살려주겠다고 딜을 건다면? 아니, 내가 좋아하는 어떤 것을 들이밀고 이기면 살려주겠다고 한다면? 과연 그 제안을 쿨하게 거절할 수 있겠는가. 그냥 죽겠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사는 게 아무리 고달프고 힘들어도, 산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고, 삶 속에서 배워나가는 게 많은 세상과 갑자기 작별해야 한다면 누구도 이 제안을 단칼에 거절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 <천국에서의 골프>는 삶과 죽음 사이에 선 주인공이 세상을 바꾼 위대한 천재 18명과 골프 시합을 펼친다. 그 흥미진진하고도 다채로운 골프 시합. 용어를 몰라도 좋다. 룰을 몰라도 좋다. 엘리엇과 등장하는 인물이 수다를 떠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신선하고 새로우니 말이다.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에 대한 물음을 장난스럽지만 유쾌하고 진지하게 펼쳐 나가고 있다.

나의 몸뚱이는 침상에 고이 누워 있다. 나의 영혼은 위대한 천재들과 싸운다. 아 이런 현실에서는 만날 수도 없고, 만나지도 못할 이들이 등장한다. 신과의 골프 내기는 어느 새 위대한 인물들과 맞서 싸우는 내기로 바뀌어 있었다. 그 인물 한 명 한 명 범상한 사람이 없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프로이트, 마릴린 먼로, 존 레논, 세익스피어, 피카소, 링컨, 콜롬버스 등 세계인들의 입에 오르락 내리락, 그 여파가 대대손손 면면히 전달되고 있는 인물들. 눈 앞에 일어나는 일이 환상인듯, 그들 모두가 골프를 좋아하고 있었다니. 아직도 골프를 하고 있다고 말하다니. 정말 꿈이라서 가능한 일이다.

위대한 인물들과 좌충우돌 골프 시합에 열중인 엘리엇. 그 모습을 훔쳐보는 것도 재밌지만, 한 단계 한 단계 인생을 다시 쌓아나가듯 인물들과 대화, 상황 속에서 깨달음을 얻는 엘리엇을 만나는 것도 재밌다. 50년을 살아온 사람에게도 아직 깨닫지 못한 것들이 수두룩 하다니. 역시 인생은 오래 산다고 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닌 것같다. 엘리엇이 잘 배우고, 학식이 풍부한 대학교수라는 것도 재밌다.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사람들이 이해하기에는 뭐든 다 알 것 같은, 승승장구였을 것 같은 엘리엇이 깨지고, 깨닫고, 발버둥치는 것을 구경하게 되니 말이다.

결점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던 위인들도 결점 투성이었고, 흉보고 싶은 것 투성이다. 지금 옆에 누군가가 있다면, 이 사람이 이런 사람이었다고 마구마구 수다를 떨고 싶을 정도로, 재밌고 유쾌하다. 모두나 결점은 있는 것이고, 숨겨진 흉은 있다. 하지만,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그 안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삶의 태도야 말로 정말 중요한 것이니 말이다. 

이길 것 같다고 생각한 순간에 어이없이 지는 엘리엇. 질 것이라고 생각한 순간, 또 어이없이 이기는 엘리엇. 그 속에서 교차되는 감정과 깨달음은 우리 모두가 가진 감정일 것이다. 승리에만 집착했던 엘리엇이 조금씩 변해가는 과정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승리에만 마음을 집중하려 노력하면서, 엘리엇의 머릿속에는 금속 스파이크가 아스팔트 길에 부딪쳐서 나는 또각또각 경쾌한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또 불쑥 인용구가 생각났다. 이번에는 <전도서>였다. "구할 때가 있으면 잃을 때가 있나니." 아직도 성경 속에 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 말이 떠올랐을까? 아니면 뭔가 더 심오한 뜻이 있는 걸까?
잃을 때라는 게 과연 존재할까? 내가 진 데에는 무슨 이유가 있을까? 그렇다면...... 얻을 때는? 여기서 내가 무언가를 갈구해야 하는 것일까? 하느님은 나에게 뭔가를 찾으라고 지시하시는 걸까? - 80p
 
   

시합 안에서 생기는 질문, 과정 속에서 찾는 답. 골프는 인생에 비유하며, 길목마다 만나는 사람들은 우리 삶의 방향에 영향을 주는 멘토처럼. 그렇게 앞으로 나아간다.

   
  "나는 점수에 죽네 사네 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재미있으니까 치는 거죠! 한 지점에서 다음 지점까지 볼을 때려서 날려 보내는 것도 재미있고, 야외에 나와 있다는 것도 재미있지 않아요? 자유로운 기분으로 나무와 풀, 새와 구름들을 보는 것도 그렇구요" - 93p  
   

이 대목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한다. 인생은 이런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 죽네 사네 앞만 보고 위만 보고 달리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 옆도 보고 뒤도 보고 아래도 보고 살펴야 인생을 즐길 수 있다는 것. 자신의 인생을 즐기며 사는 사람과 인생에 이끌려 가는 사람. 엘리엇은 살기 위해 죽자사자 골프 시합에 영혼을 걸었지만, 사실 그 자체를 즐기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골프는 아주 대단한 게임이다. 스스로가 자신에 대한 판정을 내릴 수 있는, 아니 내려야만 하는 유일한 경기이니까. 매 순간 신체적인 능력과 정신적인 능력을 시험할 뿐만 아니라 사람 됨됨이까지 시험하는 유일한 경기이니까. - 208p


오 골프여! 그대는 내 인생에 축복을 내려주었거든.
힘들게 살아가야 할 목적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었지!
하루는 내가 얼마나 허약한지 보여주는가 하면
또 다음날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지.
나 자신의 결점에 공감할 수 있게 해주었고
내가 저지를 조그만 인간적인 과오들도 알려주었지.
내가 다른 사람들의 삶을 속속들이 살펴
죄와 결점을 들춰냈듯이
내 안의 허영심을 보여주었지.
탐욕을, 권력에 대한 욕망을, 눈먼 야망을,
분노 때문에 생긴 광기를, 우유부단함을,
마물과도 같은 질투심을 보여주었지. 아직도 그것들은
내 몸속 구석구석에 살아 있다네!  - 225p
 
   

골프는 인생이다. 엘리엇이 살아온 삶을 돌아보게 하는 또 다른 인생. 많은 감정들을 시험하고, 돌발적인 상황들을 받아들이게 하는. 공평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공평한 길. 내가 만들어가는 길이기에 불평 불만할 수 없는 길. 우리 인생처럼 말이다.

자, 결국 엘리엇은 어떻게 될까?
이 위대한 인물들과 싸워 이겨서 새 삶을 살게 될 것인가?
아니면 패배해서 죽음으로 이르게 될 것인가?
삶은 결국 죽음으로 이르는 해피엔딩.
그리고 인생은 우리에게 언제나 기회를 열어준다는 것.
실패와 성공은 누가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

엘리엇의 골프 시합을 따라가다 보면, 엘리엇이 승리해 살아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결국 그의 깨달음을 즐기게 된다. 자 궁금증을 뒤로 하고, 많은 이들을 만나는 여행을 떠나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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