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분, 잘 들으세요. 백내장은 약 먹어서 낫는 병이 아닙니다. 수술을 해야한다구요. 그 약들 다 소용없단 말입니다."

  의사의 목소리가 다소 신경질적으로 들렸다. 이 안과의 진료실은 문이 다 열려 있어서 대기실에서 의사와 환자의 이야기가 다 들렸다. 그렇군. 눈에 좋다는 무슨 무슨 영양제 같은 것은 다 소용이 없나 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이가 지긋한 노인 환자가 진료실에서 나왔다.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불렀다.

  올해 들어 부쩍 눈이 침침해져서 나는 안과에서 정밀 검진을 받아보기로 했다. 세 명의 안과 전문의가 보는 이 병원은 환자들로 미어터졌다. 말 그대로 돈을 쓸어담는듯 했다. 검사하는 데만 1시간이 걸렸다. 그나마 대기실에서의 시간은 짧았다. 의사를 만나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의사는 간결하게 이야기를 전달했다. 아마도 채 5분이 되지도 않는 시간이었다. 아직까지 큰 문제는 없고, 백내장이 시작되고 있지만 아주 초기 단계라고 했다. 그걸로 끝이었다.

  '백내장'이라는 단어를 들은 것은 나름대로 충격이었다. 나는 그것이 아주 나이든 노인 환자들의 질병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말하자면 백내장은 눈의 노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의사가 보여준 모니터에는 작은 유리 알갱이가 반짝이는 내 수정체 사진이 있었다. 언젠가 저 유리 알갱이가 더 많아져서 뿌옇게 되면 수술을 해야할 것이다. 백내장의 진행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눈을 덜 쓰면 되나? 나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눈이 건조하고 피로하다면 사유(蛇油)성분이 들어있는 영양제를 추천합니다."

  그날 저녁, 인터넷 검색창에 '눈 영양제'를 넣고 이리저리 사이트를 들쑤시다가 나는 그런 글을 읽었다. 사유(蛇油)는 말 그대로 '뱀기름'을 의미했다. 아니,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뱀기름하고 눈 건강하고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어? 나는 '비타민A', '루테인', '지아잔틴', 이런 것들은 들어봤어도 '뱀기름'은 처음 들어봤다. 뱀기름은 뱀을 잡아서 어떻게 특수한 과정을 거쳐 쥐어짜내는 것인가? 호기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실제로 '뱀기름' 영양제는 몇몇 제약회사에서 일반의약품으로 나오고 있었다. 아, 아무리 그래도 뱀기름을 어떻게 먹어? 그건 좀 그렇다.

  눈 영양제 따위는 소용없다는 의사의 말이 귓가에서 맴돌았다. 그래도 '뱀기름' 영양제에 대한 일말의 기대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오랫동안 안구건조증으로 고생해왔다. 이젠 거기에다 백내장도 서서히 시작되고 있었다. 불안과 호기심이 뒤엉켜져서 '뱀기름'에 대한 나름의 인터넷 연구를 이어가게 만들었다.

  도대체 '뱀기름'은 어떻게 눈에 효과가 있단 말인가? 뱀기름에는 오메가 3의 성분으로 알려진 EPA가 들어있는데, 그것이 눈의 건조함을 덜어주는 모양이었다. 아니, 그렇다면 오메가 3를 먹으면 되잖아. 그런데 뱀기름에 있는 성분이 일반적인 오메가 3와는 좀 다른 모양이었다. 오랫동안 오메가 3는 안구건조증, 고혈압을 비롯해 우울증까지 개선시킬 수 있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막상 임상 연구 결과를 보면 그 효능을 명확히 입증할만한 것이 없었다. 나는 '뱀기름' 영양제도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혹시 뱀기름에 대한 임상 논문이 있나 찾아보자. 나는 구글 검색창에 'snake oil'을 입력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쏟아져 나온 것은 '뱀기름'에 대한 서양의학계의 준엄한 꾸짖음과 멸시였다. 서양 의학이 발달하기 이전에 유럽과 미국에서도 이 '뱀기름'을 만병통치약으로 팔아먹은 약장수들이 있었다. 그런 이유에서 영어 단어 'snake oil'은 관용적으로 돌팔이 약장수의 사기 수법을 의미하게 되었다. 물론 '뱀기름'에 EPA 성분이 들어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서양의 안과 관련 학회와 의사들은 '뱀기름'을 신뢰할 수 없는 동종 요법(同種療法)으로 취급하는듯 했다.  

  "딸이 지독한 안구건조증으로 고생했는데, 사유 성분 영양제 먹고 많이 나아졌습니다. 효과 좋아요."

  '뱀기름' 영양제에 대한 좋은 후기도 있었다. 그래, 제약회사에서 저렇게 약으로 만들어 판매할 때에는 뭐 나름의 근거가 있겠지. 그냥 속는 셈치고 한번 먹어보자. 나는 약국에 가서 그 뱀기름 영양제를 사볼 요량이었다. 어느 회사 제품이 좀 나은지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 이 뱀기름 영양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아마도 '뱀기름'이라는 동물성 생약에 대한 사람들의 거부감과 '루테인'의 무지막지한 파워에 밀려서 그리된 모양이었다. 검색을 해보니 뱀기름 영양제를 만들었던 제약 회사들이 해당 제품에 대한 품목 허가를 반납하고 생산을 중단했다는 2021년도 기사들이 주르륵 떴다.

  시중 약국에서 씨가 마른 뱀기름 영양제를 찾아 발품을 팔고 다녔다는 사람의 이야기도 있었다. 그런 이들처럼 내가 그 눈 영양제를 간절히 원하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정말로 '뱀기름'이 들어있는 그 약을 먹으면 건조한 눈이 촉촉해지고 좀 나아질까 궁금하기는 했다. 누군가에게 정말로 효과가 있다면 그 사람에게 뱀기름은 결코 돌팔이 약장수의 협잡을 뜻하는 'snake oil'이 아닐 터였다. 그렇게 '뱀기름' 영양제에 대한 내 인터넷 검색의 여정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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