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목이 붓고 아픈 것이 한 달 정도 되었다. 이비인후과에 가보았더니 별 이상은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그러려니 하고 지내는 중이다. 동생은 내 이야기를 듣고는 도라지청을 주문해서 보낸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걸 바로 다음날에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덧붙였다. 나는 이 연휴에 무슨 택배 배송이 되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새벽, 문밖에서 무슨 소리가 나길래 나가보니 그 택배가 바로 현관문 옆에 놓여있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반이었다. 아,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새벽 배송이란 거구나... 나는 이제까지 쿠*을 이용해본 적이 없다. 그런 나에게 주문한지 하루가 채 되지 않은 시간에 바로 오는 배송은 참으로 놀라웠다. 하지만 놀라움은 잠시, 마음속에서는 불편한 어떤 무언가가 천천히 올라왔다.

  동생이 보낸 도라지청은 반드시 급하게 받아야만 하는 물품은 아니었다. 나는 그 새벽 시간에 배송을 하는 이들을 잠시 떠올려 보았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프로그램이 있기는 했다. KBS의 다큐 인사이트에서 제작한 '별점 인생(2020년 4월 30일 방영)'. 거기에는 다양한 플랫폼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들어있었다. 플랫폼 노동(Platform work)은 작업자, 온라인 플랫폼(해외의 Uber는 대표적인 공유 운송 플랫폼이다), 고객으로 구성된다. 작업자는 온라인 플랫폼과 계약하고, 플랫폼은 고객의 서비스 요청을 작업자에게 중개한다. 이제 이러한 플랫폼 노동은 우리의 일상 속으로 공기처럼 스며들었다.

  내가 본 '별점 인생'에는 택배 운송 플랫폼 노동자로 새벽 배송에 나서는 이들의 모습도 나온다. 그들 중에는 그 일을 부업으로 하는 이도 있었지만 전업으로 하는 이도 있었다. 카메라는 그들의 고단한 야간 노동을 묵묵히 기록한다. 남들은 다 자고 있는 한밤중에 작업자들은 택배 상자를 들고 나르며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였다. TV 화면 밖으로 강도 높은 노동의 피곤함이 전해지는듯 했다.

  그렇게 힘들게 일하고 나서 받는 수당이 꽤 이문이 남으면 좋으련만, 차의 유류비며 이런저런 것들을 빼고 나면 그들의 손에 쥐어지는 돈은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나마 그렇게 벌 수 있는 일거리도 불규칙하게 주어졌다. 너도나도 그 일을 하겠다는 이들이 많아서 운송 플랫폼 회사에서 작업자에게 주는 택배 운송비는 몇 년째 인상이 정체되고 있었다.

  고객은 자기 전에 쇼핑 앱으로 물품을 주문한다. 그 물건이 든 상자는 이른 새벽에 고객의 집 문 앞에 놓인다. 기업은 고객의 필요를 파악하고 그에 따른 상품을 계발하고 판매한다. 그런 면에서 '새벽 배송'은 끊임없는 매출과 이윤을 보장하는 유용한 사업 아이템이다. 이러한 극강의 신속함과 편리함 뒤에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노고가 자리하고 있다. 물론 그들에게 그것은 일이며 계약된 보수가 지급된다. 기업은 성장하고, 플랫폼 노동자는 돈을 벌고, 고객은 배송 서비스에 만족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리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 내가 가진 능력으로는 결국 이 일 밖에 남는 게 없더라구요."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배송 기사는 그런 말을 했다. 그는 언제까지 운송 플랫폼에 자신의 건강과 젊음을 갈아넣어가며 일을 할 수 있을까? 야간 노동이 몸에 좋지 않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만약에 그가 몸이 좀 아프거나 그 일을 하기에 어려운 상황이 된다면 빠듯하게 유지되는 생계는 어려워질 것이다. 다큐는 플랫폼 노동자가 '불안정성'이라는 리스크를 껴안고 일하는 이들임을 명확하게 부각시킨다.

  "그 사람들에게는 그 일이 있어야 먹고 살 수 있지."

  전화기 너머, 동생은 건조한 말투로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새벽 1시 반에 택배 비닐 봉투를 뜯으며, 나는 그 안에 든 도라지청 상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걸 먹을 때마다 새벽의 거리를 누비며 생계 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누군가를 생각하게 될 것만 같았다. 플랫폼 노동자들에게 법적, 제도적 보호 장치가 마련될 수 있을까? 이윤을 극대화하는 자본주의의 냉혹한 얼굴을 생각해 보니 그 길은 참으로 멀고도 험할듯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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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가 요새 꽂힌 공부는 바로 '점잇기'이다. 이 교재는 번호 순서대로 점과 점 사이에 선을 그어서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도록 되어있다. 흩어져 있던 점들을 다 이으면 다양한 동물, 식물을 비롯해 세계 각지의 흥미로운 풍물이 마침내 나타난다. 원래 내 계획은 엄마가 점잇기 교재를 하루에 2페이지씩만 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내가 잠깐 다른 일을 하는 동안 혼자서 6페이지를 다 해놓는다. 엄마가 재미를 붙이는 것은 좋은데, 얇은 두께의 그 교재를 다 해버리고 나면 다음 교재로 쓸만한 것이 없다. 2세에서 4세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이 점잇기 교재는 의외로 출판된 책이 얼마 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전번에 구매했던 책을 다시 사야겠다고 나는 생각해 본다.

  서점에서 치매 환자를 위한 인지 학습 교재를 찾아보면 그것이 얼마나 빈곤한 출판 콘텐츠인가를 금새 알아차리게 된다. 환자마다 가진 교육적 배경과 인지 수준이 다 다르기 때문에 학습을 위해 그걸 표준화 시키는 것도 어려울듯 하다. 그러다 보니 그 교재의 내용과 질은 천차만별이다. 어떤 것은 일반인들이 심심풀이로 하는 퍼즐 책 같고, 또 어떤 책은 초등 저학년 수준의 매우 기초적인 학습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내가 엄마의 인지 학습을 도우면서 본 책들만 해도 꽤나 많다. 나는 엄마에게 우스갯소리로 그런 말을 하곤 한다.

  "엄마, 그동안 엄마가 책 보고 공부한 시간만큼 고시 공부를 했으면 진작에 고시 패스했어야 해."

  이런 저런 노인용 인지 학습 교재에 실망한 나는 의외의 황금광맥을 발견했다. 그것은 아동용 서적이었다. 유아와 초등생을 위한 숨은 그림 찾기 책, 그리기와 오리기, 산수책과 십자말풀이, 고사성어와 속담 책... 점잇기 교재는 거기에서 어쩌다 얻은 행운의 아이템과도 같았다. 엄마는 점잇기가 너무나도 재미있다고 했다.

  그 점잇기와 함께 엄마가 좋아하는 건 '오리기'이다. 인지 학습에 손가락을 많이 쓰는 것이 좋다고 해서 나는 종이접기 교재도 몇 권 샀었다. 그런데 이 종이접기라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좀 복잡하고 어려운 것은 안하다 보니 나중에는 매번 하던 쉬운 접기만 하게 된다. 그래서 대안으로 찾은 교재가 오리기 교재였다. 음식과 생활용품이 인쇄된 것을 오리는 것부터 종이의 절반을 접어서 여러가지 모양으로 오려내는 것까지, 오리기는 의외로 유용한 인지 학습 아이템이었다.

  나는 색종이에다 나름의 도안을 그려서 엄마가 오리도록 했다. 그런데 그림 솜씨가 별로 없는 내가 그리는 도안은 원래 그리려는 그림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되곤 했다. 예를 들면 나비를 그리려는데 나중에 보면 나방이 되어버린다. 코끼리 도안은 코와 다리 각 부분의 비율이 영 맞지 않아서 어색하다. 그래도 엄마는 나의 오리기 도안을 즐겁게 오렸다.

  "엄마, 나방이한테 눈이라도 좀 그려줘봐. 여기 양쪽에 하나씩."

  엄마는 싸인펜으로 노란색 나방에 눈과 입을 그렸다. 아, 결국 뭔가 이상한 나방이 되고야 말았다. 그런데 가만 보니 이 나방이 꽤나 귀엽다. 엄마는 나방이 웃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나는 코끼리 도안에도 눈과 입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가 오린 회색 코끼리에도 눈과 입이 생겼다. 이 코끼리도 어째 웃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엄마가 그렇게 오리고 그린 나방과 코끼리를 다 끝내버린 교재에다 풀로 붙여놓는다. 엄마는 매일 하는 공부가 재미있다고 일기에 써놓았다. 이렇게 나는 내 시간과 노력을 갈아넣어가면서 엄마의 달아나는 기억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다.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 말하는 건 거짓말이다.

  엄마는 이제 자식들의 생일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전에는 아무 문제없이 해내던 단순한 숫자 계산도 틀리는 때가 있다. 엄마는 당신의 뇌에 저장해놓은 많은 기억과 지식을 내가 알지 못하는 어딘가에 아웃소싱해버리고 있다. 그렇게 엄마의 머리는 고요하고 가벼워지는 중이다. 언젠가 엄마가 나를 알아볼 수 없을 때가 올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엄마와 함께 했던 지금의 이 시간들을, 그리고 엄마의 작은 코끼리와 나방을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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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 카우보이의 시조는 백인이 아니다? 흑인 카우보이에 대한 새로운 가설

https://www.science.org/content/article/america-s-first-cowboys-were-enslaved-africans-ancient-cow-dna-suggests


  미 대륙에서 카우보이가 나타난 시기는 160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자들은 미국 소의 DNA 분석을 통해 미국 소의 조상이 스페인에서 건너온 것임을 이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 새로운 가능성이 제시되었다. 아프리카의 노예 무역과 함께 들여온 아프리카 소도 오늘날 미국 소의 유전자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노예 무역 상인들은 소만 들여오지 않았다. 그 소들을 잘 다루고 몰 수 있는 소몰이꾼도 데려왔다. 학자들은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흑인 카우보이가 자신들의 경험과 지식을 미 대륙에 전파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나의 comment:
  과학은 우리가 흔히 가진 고정 관념과 편견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물론 그 기반은 어디까지나 과학적 사실에 입각한 증거와 연구 결과이다. 미국의 서부 개척사와 함께 시작된 인디언 박해와 버팔로 멸절로 미 평원에는 소떼와 카우보이들이 등장했다. 그 시기에 흑인 카우보이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최근의 연구는 카우보이의 시조로 아프리카 흑인 노예를 지목한다. 역사와 과학의 흥미로운 조합을 보게되는 기사.
 

2. 강황(tumeric)과 납중독(lead poisoning)의 미스터리

https://www.vox.com/future-perfect/2023/9/20/23881981/bangladesh-tumeric-lead-poisoning-contamination-public-health

  강황(tumeric)은 카레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잘 알고 있는 향신료이다. 방글라데시는 강황의 주요 산지이며 수출국이다. 그런데 이 강황이 은밀한 납중독의 주범으로 과학 기사에 등장했다. 강황을 밝은 노란색으로 만들기 위해서 가공업자들은 유해한 도구와 첨가물을 사용했다. 미국 정부의 지원과 방글라데시 정부의 과감한 단속으로 강황에서 검출되는 납은 현저히 낮아졌다. 강황이 다양한 식품과 화장품의 원료로 사용된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러한 조치는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나의 comment:
  이 뉴스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미국의 역학자(epidemiologist)들은 방글라데시의 특정 지역에서 관찰되는 여성과 아동의 납중독을 연구하다가 이러한 사실을 발견했다(기사 출처: https://stanmed.stanford.edu/turmeric-lead-risk-detect/). 납중독을 연구하던 과학자는 몇 년에 걸쳐서 강황이 납중독 연결고리의 마지막에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열정과 신념을 가진 과학자는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에 기여한다.


*사진 출처: https://stanmed.stanford.edu

Stephen Luby, MD,(left) and Jenna Forsyth, Ph.D



3. Science지 뉴스의 한 꼭지를 차지한 우리나라 소식: 과학 연구 예산의 무자비한 삭감

https://www.science.org/content/article/south-korea-science-spending-champion-proposes-cutbacks

나의 comment: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암울한 뉴스이다. 이 기사에 실린 인터뷰에서 학자들은 기존의 연구들이 위축되고 중단될 위기에 처해있다고 토로한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삭감인가? 이런 뉴스로 한국이 세계 과학계의 이목을 받는 일은 괴롭고 수치스러운 일이다.
 

4. 우울증 치료의 새로운 지견: 뇌에 DBS를 심는다고?

https://www.sciencenews.org/article/dbs-deep-brain-stimulation-depression


  DBS(deep brain stimulation, 뇌 심부 자극술)는 뇌 기저부에 전극을 삽입하고, 전류를 주어 이상 신경 신호를 바꾸어주는 술식이다. 이것은 만성화된 파킨슨병 환자에게 좋은 효과를 입증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DBS가 중증 우울증 환자들에게도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기존의 약물 요법이 잘 듣지 않는 중증 우울증 환자들은 반복적인 자살 시도를 하게 된다. 그런 환자들 가운데 DBS를 받은 사람이 일상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현재로서는 후속 연구 결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나의 comment:
  DBS가 우울증 치료의 새로운 game changer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DBS는 뇌에 직접 전극을 삽입하는 침습적 술식으로 나름의 위험이 따른다. 그럼에도 최근의 연구는 기존의 치료 방법으로 차도를 보이지 않는 중증 우울증 환자에게 희망의 빛을 던져준다.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선택 보다는 새로운 의학 기술의 힘으로 삶을 이어가는 것은 누군가에게 매우 중요한 일일 수 있다.  


5. 미국 영화계가 멈췄다! 피켓 들고 거리로 나선 배우와 영화 산업 노동자들

https://www.vox.com/culture/2023/9/18/23878883/sag-wga-strike-maher-barrymore-amptp

  미국 영화와 방송계에는 양대 노조가 있다. WGA(Writers Guild of America, 미국 작가 조합)와 SAG-AFTRA(Screen Actors Guild and the American Federation of Television and Radio Artists, 미국의 배우 방송인 연합 노조)가 그것이다. WGA는 지난 5월부터, SAG-AFTRA는 7월부터 파업중이다. 그들이 내건 파업 조건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역시 핵심은 '돈'이다.

  거리로 나선 노조원들은 제작사가 막대한 이익을 독차지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들의 고용주인 제작사와 제작자들은 발전하는 영화 기술과 설비를 통해 인력을 감축하고 원가를 절감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물론 여기에 AI(인공지능)도 등장한다. 일례로 제작사는 영화의 스토리를 만드는 일에 AI를 내세워 작가들을 보조 인력으로 쓰고 싶어한다. 말 그대로 영화 산업계의 노동자들은 밥그릇이 날아갈 지경에 처했다. 현재 제작사는 노조와 협상을 시작했다. 이 협상이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은 자명하다. 결국 누가 돈을 더 가질 것인가? 지난하고 고통스런 싸움이 어떻게 끝날지 지켜볼 일이다.

나의 comment:
  내가 읽은 이 파업의 다른 기사에서 헐리우드의 유명 제작자는 이 파업이 시대착오적이라고 비난을 퍼붓는다. 말하자면 영화계 노동자들이 시대의 변화인 AI에 적응하지 못하고 밥그릇 지키기에 혈안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헐리우드 제작사의 입장은 매우 분명하고 단호하다. 거리로 나선 노조원들에게 이전보다 높은 임금을 줄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제작자들에게 AI와 같은 새로운 과학 기술은 적은 자본으로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이 파업은 영화라는 매체가 직면한 산업 혁명(Industrial Revolution)을 연상케 한다. 이 위기를 창작자들과 영화 산업 종사자들이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협상은 어떤 식으로든 타결될 것이다. 영화계 인력들은 지금보다 더 힘들고 고통스럽게 생존을 해나갈 수 밖에 없을듯 하다.



**사진 출처: vox.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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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다니는 산책길에는 초등학교가 하나 있다. 오늘 아침에 거길 지나가면서 보니, 가을 운동회를 알리는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문득 내 어린 시절의 국민학교 운동회가 떠올랐다. 운동이라면 지금도 몹시 싫어하는 나에게 운동회는 지겨운 연례 행사였다. 그럼에도 생각나는 것들이 있기는 하다.

  나는 달리기를 잘하는 애들이 몹시 부러웠었다. 달리기에서 등수에 들면 심판을 보는 선생들은 그 아이들의 팔목에 보라색 스탬프 잉크로 등수를 찍어주었다. 나중에 그 아이들은 본부석에 가서 자신의 팔에 찍힌 도장을 보여주고 이런저런 상품들을 받아갔다. 상품이라고 해봐야 연필과 공책, 필통, 크레파스 정도였다. 그런데도 나는 단 한 번도 받아볼 수 없었던 그 달리기 상품들이 너무나도 갖고 싶었더랬다. 어린 마음에도 어떤 일에 재능이 없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그 괴로움을 얼핏 느꼈다. 이제 이 나이에 생각해 보니 인생의 많은 것들이 그 달리기 경품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간절히 원하지만 가질 수 없는 것들 말이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천천히 지나고 나면 큰 사거리의 횡단보도가 나온다. 거길 건너면 작은 시민 공원으로 길이 이어진다. 사실 공원이라고 말하기도 무색한 동네 자투리땅에 불과한 곳이기는 하다. 별 거 없는 운동기구와 앉을 만한 벤치가 드문드문 놓여있는 공원. 오전 시간에 이 공원을 찾는 사람들은 대개가 나이가 있는 중장년층의 사람들, 노인들이다. 그들은 결코 뛰거나 과격한 운동을 하지 않는다. 설렁설렁 걷거나 운동기구를 이용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런데 한번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기는 했다. 족히 60은 넘어보이는 아줌마가 훌라후프를 돌리는데 어찌나 잘하는지, 나는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쳐다보았다. 저 아줌마는 나름대로 운동신경이 있는 사람이구나. 자전거 타기는 물론 수영도 할 줄 모르는 저질 운동신경을 가진 나로서는 그런 사람을 보는 것이 신기하다.

  그렇게 손바닥만한 작은 공원을 지나면 인근의 아파트 단지가 나온다. 요새 들어서 느끼는 점은 개 짖는 소리가 자주 들린다는 것이다. 어느 집에서 개 한 마리가 짖기 시작하면 인접한 아파트 이곳저곳에서 그 소리에 응수하듯 개들이 짖어댄다. 컹컹, 왈왈, 으르렁... 마치 둑이 무너지는 것처럼 여러 마리의 개들이 일시에 짖어대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환장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절로 알게 된다. 개들은 볼 수도 없는 저 건너편 아파트의 개들을 물어뜯어버릴 것처럼 짖는다. 그 개들은 주인이 있어도 그 말귀를 들어처먹지 않거나, 아니면 주인이 집에 없으니 더 제멋대로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전에는 그렇게 개 짖는 소리를 들으면 나는 아주 듣기 싫어했다. 그러나 요새는 그 개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게 된다. 쟤들도 여북하면 저럴까...

  '여북하다'는 정도가 매우 심하거나 상황이 좋지 않음을 뜻하는 형용사이다. 잠깐 산책하는 시간을 빼놓고는 하루종일 집에서 지내는 개들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마당이 있는 주택도 아닌 아파트는 개들에게 좋은 환경도 아니다. 가끔 공원에서 대형견들을 데리고 나온 사람들을 본다. 내가 본 대형견의 견주들은 의외로 매너가 좋았다. 그들은 개에게 목줄은 물론 입마개를 씌우고서 산책을 나왔다. 그리고 그 개들은 꽤나 훈련이 잘 되어있어서 사람을 보고 짖거나 위협한 적도 드물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과는 별개로 과연 그런 큰 개들이 아파트라는 곳에서 잘 지내는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탁 트인 들판에서 사냥감을 쫓아가야할 셰퍼드나 하운드, 산에서 양떼 무리를 보살피며 기세등등하게 뛰어다녀야 할 커다란 털복숭이 양치기 개들이 콘크리트 보도 블럭을 천천히 걷고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뭔가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이 키우는 개와 보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주인이 없는 시간 동안 개들이 받는 스트레스와 외로움을 그 누가 알 수 있겠는가? 그러니 그 개들은 신경이 곤두서서 작은 자극에도 시도 때도 없이 짖어대는 것이다. 그저 지나가는 사람으로서 나는 미친듯이 짖는 개들의 마음을 달래 줄 방법이 없다. 아이구, 너희들도 참 안되었다. 참으로 사람들이 못할 짓을 하고 있구나... 나는 이렇게 혼잣말을 할 뿐이다.

  문득, EBS의 클래스e에서 법의학자 유성호의 강의를 들었을 때가 생각이 났다. 그는 고독사한 노인들의 시신을 부검할 때 보았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시신들 가운데에는 연조직(그는 '얼굴'이라는 단어를 차마 쓸 수 없었던듯 하다)이 사라지거나 심하게 훼손된 경우가 있다고 했다. 나중에 그 원인을 찾아보면 노인들이 키우던 반려 동물에게 있었다. 죽어버린 주인 옆에 남은 동물들이 대체 무얼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너무 연로하거나 죽음을 앞둔 이들은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일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법의학자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울분에 찬 개들의 아파트 숲을 지나면 소나무들이 줄지어 심어진 조그만 오솔길이 나온다. 조금 떨어진 내 앞쪽에서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아줌마가 맨발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 아줌마 뒤로 보이는 할머니 둘도 맨발이다. 어제 내린 비 때문에 그 오솔길은 꽤나 질척거리는 진창길로 변해 있었다. 당연히 그들의 발은 진흙으로 뒤범벅이다. 이게 말로만 듣던 '맨발로 걷기'로구나... 도대체 맨발로 걷는 열풍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어떤 말기암 환자가 '맨발로 걷기'를 하고나서 몸이 다 나았다는 체험담에서부터인듯 했다.

  내 생각에 저렇게 맨발로 걸으려면 최소한 파상풍 주사는 맞아야 한다. 그리고 당뇨병이 있는 이들은 절대로 저런 걷기를 하면 안된다. 당뇨족을 앓는 이들에게 작은 모래나 이물질은 염증이나 궤양, 최악의 경우 다리 절단에 이르게도 만든다. 산책길에서 진흙발로 걸어나오는 이들을 보면서, 나는 '맨발로 걷기'라는 이 광풍에 누군가 불운하게 다치거나 더 아픈 경우가 없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된다.

  나는 소나무 오솔길을 나와서 다시 아파트 단지로 들어선다. 집을 나올 때 보니 하늘빛이 많이 흐렸다. 후두둑, 흐린 하늘에서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져온 3단 우산을 천천히 폈다. 올해는 늦더위가 유독 질기게도 쉬이 물러가질 않았다. 하지만 이 비가 내리고 나면 그 길었던 여름도 진짜 작별을 고할 것이다. 이제 매미 소리는 더이상 들리지 않는다. 아파트 화단에 누군가 심어놓은 분꽃과 사루비아는 거의 다 졌다. 국화는 작은 꽃망울이 올라오는 것이 보인다. 어느새 빗줄기가 세어지고 있다. 나는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흐린 가을날의 산책은 그렇게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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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청 사람들'은 1990년대를 풍미했던 범죄 수사 재연 프로그램이었다. 1993년에 첫 방송을 탄 이 프로그램은 방영 시간이 수요일 저녁 8시였다. 실제 수사 기록을 바탕으로 사건을 해결한 경찰들과 보조 출연자들이 극을 재연했다. 뭔가 어설픈 구석이 있었음에도, '경찰청 사람들'이 가진 리얼리티는 독보적이었다. 수요일 저녁이면 나도 모르게 TV 앞에 앉아 있곤 했다. 일반인 경찰들이 하는 연기를 보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었다. 그저 국어책 따라 읽는 정도의 연기에서부터 전문 조연 배우 뺨치는 연기력을 보여주는 이들도 있었다. 그 형사 반장은 후자에 속하는 이였다.

  한 번은 그가 팀원들과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왔더랬다.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불렀는데, 정말이지 조용필도 그가 부르는 노래를 듣다가 울 것만 같은 감성을 보여주었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로 시작되는 독백 부분이 이 노래의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데, 그 형사 반장이 읊조리는 그 가사는 듣는 이의 심금을 울렸다. 아마도 노래가 표현하는 '고독한 사냥꾼'인 킬리만자로의 표범에 범죄자를 찾아 헤매는 그 자신의 상황이 감정이입이 되어서 그러했으리라.

  작년인가, 영화 검색을 하다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H의 소식을 아주 철 지난 기사로 읽었다. 같이 수업 듣고 공부했던 이들, 스쳐지나가면서 얼굴을 알았던 이들의 소식을 그렇게 인터넷을 통해 듣게 되는 때가 있다.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이들도 있고, 정말로 반가운 이들의 소식도 있다. 상업 장편 영화를 찍었다는 H의 소식은 무척 반가웠다. 나에게는 영화 제목도 생소하지만, 그래도 늦은 나이에 자신이 원하는 영화를 찍었다니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학교 다닐 때 내가 보았던 H는 인간적으로도 꽤 괜찮은 친구였다. 기사의 사진 속 H의 얼굴이 편안해 보이는 것이 참 좋았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영화를 공부한 건 그것을 하지 않으면 남은 생애 동안 후회할 것 같아서였다. 그 후회는 '한(恨)'과는 좀 다른 정서이다. 사실 '한'의 정서는 나의 세대에 보편적으로 인식되는 정서가 아니다. 좀 더 윗세대의 사람들에게는 그 정서가 익숙할 것이다. 가난 때문에 학업을 이어갈 수 없었다던가, 시대적 상황 때문에 개인적으로 심한 좌절을 겪었다던가 하는 경우... 정말로 간절히 바라고 원했지만 강력한 외부적 압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하지 못했던 일에 대한 아쉬움은 '한'으로 남는다. 어떤 면에서 '한'의 감정은 한국 사회에서 사회 체제적 압박감이 개인의 삶에 남긴 흔적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내가 영화를 공부하지 않았다고 해도 좀 후회로 남을 수는 있어도, 결코 한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끔씩 영화가 삼켜버린 무수한 이들의 청춘의 시간들과 인생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영화로 행복한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H도 길고 힘든 시간을 견딘 끝에 겨우 자신의 영화를 찍을 수 있었다. 사실 슬프고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 아주 이른 나이에 불운하게 세상을 뜬 C가 그러했다. 미국 영화사를 강의했던 평론가 선생은 오랜 병고로 한창때의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다. 누구보다도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넘쳤던 이였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중략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한줄기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도 빛나는 불꽃으로 타올라야지 


  그렇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들으면 뭔가 마음 속 밑바닥에서 묵직하게 올라오는 감정들이 있다. 오늘도 '괜찮은 영화'를 찾아나서는 늙은 영화광의 하루가 천천히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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