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목이 붓고 아픈 것이 한 달 정도 되었다. 이비인후과에 가보았더니 별 이상은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그러려니 하고 지내는 중이다. 동생은 내 이야기를 듣고는 도라지청을 주문해서 보낸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걸 바로 다음날에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덧붙였다. 나는 이 연휴에 무슨 택배 배송이 되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새벽, 문밖에서 무슨 소리가 나길래 나가보니 그 택배가 바로 현관문 옆에 놓여있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반이었다. 아,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새벽 배송이란 거구나... 나는 이제까지 쿠*을 이용해본 적이 없다. 그런 나에게 주문한지 하루가 채 되지 않은 시간에 바로 오는 배송은 참으로 놀라웠다. 하지만 놀라움은 잠시, 마음속에서는 불편한 어떤 무언가가 천천히 올라왔다.
동생이 보낸 도라지청은 반드시 급하게 받아야만 하는 물품은 아니었다. 나는 그 새벽 시간에 배송을 하는 이들을 잠시 떠올려 보았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프로그램이 있기는 했다. KBS의 다큐 인사이트에서 제작한 '별점 인생(2020년 4월 30일 방영)'. 거기에는 다양한 플랫폼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들어있었다. 플랫폼 노동(Platform work)은 작업자, 온라인 플랫폼(해외의 Uber는 대표적인 공유 운송 플랫폼이다), 고객으로 구성된다. 작업자는 온라인 플랫폼과 계약하고, 플랫폼은 고객의 서비스 요청을 작업자에게 중개한다. 이제 이러한 플랫폼 노동은 우리의 일상 속으로 공기처럼 스며들었다.
내가 본 '별점 인생'에는 택배 운송 플랫폼 노동자로 새벽 배송에 나서는 이들의 모습도 나온다. 그들 중에는 그 일을 부업으로 하는 이도 있었지만 전업으로 하는 이도 있었다. 카메라는 그들의 고단한 야간 노동을 묵묵히 기록한다. 남들은 다 자고 있는 한밤중에 작업자들은 택배 상자를 들고 나르며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였다. TV 화면 밖으로 강도 높은 노동의 피곤함이 전해지는듯 했다.
그렇게 힘들게 일하고 나서 받는 수당이 꽤 이문이 남으면 좋으련만, 차의 유류비며 이런저런 것들을 빼고 나면 그들의 손에 쥐어지는 돈은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나마 그렇게 벌 수 있는 일거리도 불규칙하게 주어졌다. 너도나도 그 일을 하겠다는 이들이 많아서 운송 플랫폼 회사에서 작업자에게 주는 택배 운송비는 몇 년째 인상이 정체되고 있었다.
고객은 자기 전에 쇼핑 앱으로 물품을 주문한다. 그 물건이 든 상자는 이른 새벽에 고객의 집 문 앞에 놓인다. 기업은 고객의 필요를 파악하고 그에 따른 상품을 계발하고 판매한다. 그런 면에서 '새벽 배송'은 끊임없는 매출과 이윤을 보장하는 유용한 사업 아이템이다. 이러한 극강의 신속함과 편리함 뒤에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노고가 자리하고 있다. 물론 그들에게 그것은 일이며 계약된 보수가 지급된다. 기업은 성장하고, 플랫폼 노동자는 돈을 벌고, 고객은 배송 서비스에 만족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리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 내가 가진 능력으로는 결국 이 일 밖에 남는 게 없더라구요."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배송 기사는 그런 말을 했다. 그는 언제까지 운송 플랫폼에 자신의 건강과 젊음을 갈아넣어가며 일을 할 수 있을까? 야간 노동이 몸에 좋지 않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만약에 그가 몸이 좀 아프거나 그 일을 하기에 어려운 상황이 된다면 빠듯하게 유지되는 생계는 어려워질 것이다. 다큐는 플랫폼 노동자가 '불안정성'이라는 리스크를 껴안고 일하는 이들임을 명확하게 부각시킨다.
"그 사람들에게는 그 일이 있어야 먹고 살 수 있지."
전화기 너머, 동생은 건조한 말투로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새벽 1시 반에 택배 비닐 봉투를 뜯으며, 나는 그 안에 든 도라지청 상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걸 먹을 때마다 새벽의 거리를 누비며 생계 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누군가를 생각하게 될 것만 같았다. 플랫폼 노동자들에게 법적, 제도적 보호 장치가 마련될 수 있을까? 이윤을 극대화하는 자본주의의 냉혹한 얼굴을 생각해 보니 그 길은 참으로 멀고도 험할듯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