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요새 꽂힌 공부는 바로 '점잇기'이다. 이 교재는 번호 순서대로 점과 점 사이에 선을 그어서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도록 되어있다. 흩어져 있던 점들을 다 이으면 다양한 동물, 식물을 비롯해 세계 각지의 흥미로운 풍물이 마침내 나타난다. 원래 내 계획은 엄마가 점잇기 교재를 하루에 2페이지씩만 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내가 잠깐 다른 일을 하는 동안 혼자서 6페이지를 다 해놓는다. 엄마가 재미를 붙이는 것은 좋은데, 얇은 두께의 그 교재를 다 해버리고 나면 다음 교재로 쓸만한 것이 없다. 2세에서 4세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이 점잇기 교재는 의외로 출판된 책이 얼마 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전번에 구매했던 책을 다시 사야겠다고 나는 생각해 본다.
서점에서 치매 환자를 위한 인지 학습 교재를 찾아보면 그것이 얼마나 빈곤한 출판 콘텐츠인가를 금새 알아차리게 된다. 환자마다 가진 교육적 배경과 인지 수준이 다 다르기 때문에 학습을 위해 그걸 표준화 시키는 것도 어려울듯 하다. 그러다 보니 그 교재의 내용과 질은 천차만별이다. 어떤 것은 일반인들이 심심풀이로 하는 퍼즐 책 같고, 또 어떤 책은 초등 저학년 수준의 매우 기초적인 학습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내가 엄마의 인지 학습을 도우면서 본 책들만 해도 꽤나 많다. 나는 엄마에게 우스갯소리로 그런 말을 하곤 한다.
"엄마, 그동안 엄마가 책 보고 공부한 시간만큼 고시 공부를 했으면 진작에 고시 패스했어야 해."
이런 저런 노인용 인지 학습 교재에 실망한 나는 의외의 황금광맥을 발견했다. 그것은 아동용 서적이었다. 유아와 초등생을 위한 숨은 그림 찾기 책, 그리기와 오리기, 산수책과 십자말풀이, 고사성어와 속담 책... 점잇기 교재는 거기에서 어쩌다 얻은 행운의 아이템과도 같았다. 엄마는 점잇기가 너무나도 재미있다고 했다.
그 점잇기와 함께 엄마가 좋아하는 건 '오리기'이다. 인지 학습에 손가락을 많이 쓰는 것이 좋다고 해서 나는 종이접기 교재도 몇 권 샀었다. 그런데 이 종이접기라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좀 복잡하고 어려운 것은 안하다 보니 나중에는 매번 하던 쉬운 접기만 하게 된다. 그래서 대안으로 찾은 교재가 오리기 교재였다. 음식과 생활용품이 인쇄된 것을 오리는 것부터 종이의 절반을 접어서 여러가지 모양으로 오려내는 것까지, 오리기는 의외로 유용한 인지 학습 아이템이었다.
나는 색종이에다 나름의 도안을 그려서 엄마가 오리도록 했다. 그런데 그림 솜씨가 별로 없는 내가 그리는 도안은 원래 그리려는 그림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되곤 했다. 예를 들면 나비를 그리려는데 나중에 보면 나방이 되어버린다. 코끼리 도안은 코와 다리 각 부분의 비율이 영 맞지 않아서 어색하다. 그래도 엄마는 나의 오리기 도안을 즐겁게 오렸다.
"엄마, 나방이한테 눈이라도 좀 그려줘봐. 여기 양쪽에 하나씩."
엄마는 싸인펜으로 노란색 나방에 눈과 입을 그렸다. 아, 결국 뭔가 이상한 나방이 되고야 말았다. 그런데 가만 보니 이 나방이 꽤나 귀엽다. 엄마는 나방이 웃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나는 코끼리 도안에도 눈과 입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가 오린 회색 코끼리에도 눈과 입이 생겼다. 이 코끼리도 어째 웃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엄마가 그렇게 오리고 그린 나방과 코끼리를 다 끝내버린 교재에다 풀로 붙여놓는다. 엄마는 매일 하는 공부가 재미있다고 일기에 써놓았다. 이렇게 나는 내 시간과 노력을 갈아넣어가면서 엄마의 달아나는 기억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다.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 말하는 건 거짓말이다.
엄마는 이제 자식들의 생일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전에는 아무 문제없이 해내던 단순한 숫자 계산도 틀리는 때가 있다. 엄마는 당신의 뇌에 저장해놓은 많은 기억과 지식을 내가 알지 못하는 어딘가에 아웃소싱해버리고 있다. 그렇게 엄마의 머리는 고요하고 가벼워지는 중이다. 언젠가 엄마가 나를 알아볼 수 없을 때가 올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엄마와 함께 했던 지금의 이 시간들을, 그리고 엄마의 작은 코끼리와 나방을 잊지 못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