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사람들'은 1990년대를 풍미했던 범죄 수사 재연 프로그램이었다. 1993년에 첫 방송을 탄 이 프로그램은 방영 시간이 수요일 저녁 8시였다. 실제 수사 기록을 바탕으로 사건을 해결한 경찰들과 보조 출연자들이 극을 재연했다. 뭔가 어설픈 구석이 있었음에도, '경찰청 사람들'이 가진 리얼리티는 독보적이었다. 수요일 저녁이면 나도 모르게 TV 앞에 앉아 있곤 했다. 일반인 경찰들이 하는 연기를 보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었다. 그저 국어책 따라 읽는 정도의 연기에서부터 전문 조연 배우 뺨치는 연기력을 보여주는 이들도 있었다. 그 형사 반장은 후자에 속하는 이였다.

  한 번은 그가 팀원들과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왔더랬다.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불렀는데, 정말이지 조용필도 그가 부르는 노래를 듣다가 울 것만 같은 감성을 보여주었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로 시작되는 독백 부분이 이 노래의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데, 그 형사 반장이 읊조리는 그 가사는 듣는 이의 심금을 울렸다. 아마도 노래가 표현하는 '고독한 사냥꾼'인 킬리만자로의 표범에 범죄자를 찾아 헤매는 그 자신의 상황이 감정이입이 되어서 그러했으리라.

  작년인가, 영화 검색을 하다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H의 소식을 아주 철 지난 기사로 읽었다. 같이 수업 듣고 공부했던 이들, 스쳐지나가면서 얼굴을 알았던 이들의 소식을 그렇게 인터넷을 통해 듣게 되는 때가 있다.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이들도 있고, 정말로 반가운 이들의 소식도 있다. 상업 장편 영화를 찍었다는 H의 소식은 무척 반가웠다. 나에게는 영화 제목도 생소하지만, 그래도 늦은 나이에 자신이 원하는 영화를 찍었다니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학교 다닐 때 내가 보았던 H는 인간적으로도 꽤 괜찮은 친구였다. 기사의 사진 속 H의 얼굴이 편안해 보이는 것이 참 좋았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영화를 공부한 건 그것을 하지 않으면 남은 생애 동안 후회할 것 같아서였다. 그 후회는 '한(恨)'과는 좀 다른 정서이다. 사실 '한'의 정서는 나의 세대에 보편적으로 인식되는 정서가 아니다. 좀 더 윗세대의 사람들에게는 그 정서가 익숙할 것이다. 가난 때문에 학업을 이어갈 수 없었다던가, 시대적 상황 때문에 개인적으로 심한 좌절을 겪었다던가 하는 경우... 정말로 간절히 바라고 원했지만 강력한 외부적 압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하지 못했던 일에 대한 아쉬움은 '한'으로 남는다. 어떤 면에서 '한'의 감정은 한국 사회에서 사회 체제적 압박감이 개인의 삶에 남긴 흔적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내가 영화를 공부하지 않았다고 해도 좀 후회로 남을 수는 있어도, 결코 한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끔씩 영화가 삼켜버린 무수한 이들의 청춘의 시간들과 인생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영화로 행복한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H도 길고 힘든 시간을 견딘 끝에 겨우 자신의 영화를 찍을 수 있었다. 사실 슬프고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 아주 이른 나이에 불운하게 세상을 뜬 C가 그러했다. 미국 영화사를 강의했던 평론가 선생은 오랜 병고로 한창때의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다. 누구보다도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넘쳤던 이였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중략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한줄기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도 빛나는 불꽃으로 타올라야지 


  그렇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들으면 뭔가 마음 속 밑바닥에서 묵직하게 올라오는 감정들이 있다. 오늘도 '괜찮은 영화'를 찾아나서는 늙은 영화광의 하루가 천천히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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