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베란다 청소를 하다가 소금 포대 근처에 하얀 가루가 지저분하게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게 뭐지.... 오래된 집이라 베란다 천장에서 페인트가 탈락한 것인가 했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건 소금을 담은 비닐 포대의 조각들이었다. 그랬다. 비닐이 삭아서 조각조각 떨어지고 있었다. 이 소금을 샀던 때는 2011년,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있던 해였다. 그 해는 방사능 오염에 대한 공포 때문에 소금값이 급등했었다. 급한 마음에 나도 부랴부랴 20kg 소금 한 포대를 샀었다. 그렇게 소금을 사놓고 간수를 빼놓는다고 베란다 한 귀퉁이에 두었다. 이제 12년이 지난 지금 그 소금 포대의 비닐이 시간의 무게를 못 이기고 삭아내리고 있었다.

  그 소금을 그동안 먹지 않고 놔둔 건... 아끼느라 그랬다. 뭐랄까, 나에게 그 소금은 오염되지 않은 바다가 준 마지막 선물과도 같았다. 나는 그 소금 포대를 볼 때마다 마음이 든든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올해,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배출이 시작되면서 다시 소금값이 천정부지로 뛰기 시작했다. 소금 사재기 열풍 속에서도 내 마음은 편안했다. 나에게는 후쿠시마 원전이 터지기 전에 생산된 소금 한 포대가 있다! 혼자 마음속으로 그렇게 되뇌면 아주 내가 부자가 된 느낌이 들곤 했다. 그런데 그 소금 포대가 삭아내리고 있는 것을 보니 나도 참 세월의 흐름에 무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아침, 나는 소금 포대 정리에 나섰다. 꽁꽁 동여맨 포대의 끈을 풀자 단단하게 굳은 소금이 보였다. 소금을 퍼내려고 했지만, 간수가 다 빠지다 못해 굳어버린 소금은 돌덩어리나 다름없었다. 나는 주방 가위로 소금을 조금씩 깨나가면서 소금 덩어리를 해체해 나갔다. 그런데 정작 가장 큰 문제는 다른 데에 있었다. 포대였다. 부서지는 비닐 조각들이 소금 속에 계속해서 섞였다. 나는 비닐 포대와 접한 가장자리 부분은 놔두고 안쪽을 우물 파 내려가듯 덩어리를 부수어 가며 소금을 퍼내었다. 그렇게 큰 항아리에 깨끗한 소금을 채워나갔다.

  포대 바깥 부분의 소금은 단단한 덩어리인 채로 크게 조각을 내어 항아리에 담았다. 눈가루처럼 날리는 비닐 조각들이 꽤나 신경 쓰이기는 했다. 나는 소금 덩어리의 겉면을 대충 털어내면서 비닐 조각들을 제거했다. 그렇게 20kg 소금 한 포대를 항아리 세 개에 나누어 담았다. 베란다는 어느새 소금밭이 되어있었다. 진공청소기를 2번이나 돌렸는데도 소금 알갱이들은 계속해서 나왔다. 소금 덩어리를 부수고 퍼내어 담느라 손목은 시큰거렸다. 팔목은 소금 덩어리에 긁혀서 상처가 나 있었다.

  겨우 베란다 청소를 해놓고 나니 그제서야 마음이 좀 놓였다. 하지만 소금을 담을 때 계속해서 부서지던 비닐 포대 조각들이 영 마음에 걸렸다. 그런 소금을 그냥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저녁에, 나는 시험 삼아 항아리의 소금을 담아서 물에 씻어 보았다. 비닐 조각들이 물에 둥둥 떠다녔다. 두어 번 헹구면 되겠지. 하지만 무려 5번이나 헹구고 나서야 비닐 조각이 나오지 않았다. 커다란 양재기 가득 담았던 소금은 이제 한 움큼밖에 남지 않았다.

  오호통재(嗚呼痛哉)라, 오호애재(嗚呼哀哉)라! 나는 조침문(弔針文)을 지은 조선 시대 유씨 부인의 절절한 심정을 느낄 수 있었다. 방사능에 오염되지 않은 이 순수한 소금을, 한갓 비닐 조각들 때문에 내가 어찌 버릴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마음속으로 거듭해서 내 어리석음과 무신경함을 탓하고 있었다. 아니다, 분명 이 귀한 소금을 구할 방법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구글 신이 있다. 나는 간절히 구글 신의 가호를 빌며 열심히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그랬다. 유튜브에는 천일염 잘 씻는 법을 알려주는 이가 있었다. 소금을 씻을 때는 미리 받아놓은 물에다 씻어야만 녹아서 버리는 소금의 양을 줄일 수 있었다. 천일염을 물에 씻는 것은 오히려 권장할 만한 일이었다. 그것은 소금에 섞인 이런저런 이물질들을 제거하는 데에 좋은 방법이었다. 그렇게 씻은 소금을 체에 밭쳐서 한 며칠 두면 물기가 빠진다. 물기를 더 제거하기 위해서는 키친 타월을 깔고 그 위에 소금을 두면 되었다.

  "아, 그거 못 먹겠네. 그냥 버려."

  밤늦게 전화로 내 하소연을 들은 동생은 그렇게 말했다. 지난 12년 동안 든든한 만기 적금과도 같았던 소금은 이제 애물단지로 전락해 버렸다. 나에게는 앞으로 물에다 씻어서 써야 할 20kg의 소금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그래도 이 소중한 소금을 버릴 수는 없다. 시큰거리는 손목에 파스를 붙이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크게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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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삶은 계란의 껍질이 죽어도 안까질 때: 계란을 잘 삶는 방법

  일단 물을 가스불에 올려놓는다. 물이 끓으면 불을 끈다. 그때에 달걀을 물에 조심스럽게 넣는다. 그 시점부터 보통 10분 정도 삶으면 완숙에 가깝게 된다. 불을 끄고 뜨거운 물을 버린 후, 계속해서 찬물을 붓는다. 찬물에 적어도 15분 이상 계란을 놔둔다. 이렇게 하면 대부분의 계란은 껍질이 잘 까진다. 하지만 매우 신선한 계란의 경우에는 껍질이 잘 까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참조하시라. 의외로 식초나 굵은 소금을 넣는 것은 껍질을 잘 까지게 하는 데에는 별로 효과가 없다.


2. 스텐 보온병의 찻물때 제거: 깨끗한 스텐 보온병 만들기

  보온병에 커피나 차를 넣어서 마시다 보면 보온병 내부에는 자연스럽게 찻물때가 낀다. 이럴 경우에 그 얼룩을 제거하기 위해 무리하게 수세미를 쓸 필요가 없다. 적당량의 과탄산소다만 있으면 된다. 물때가 낀 보온병에 찻숟가락 하나 정도의 과탄산소다를 넣는다. 그리고 거기에 끓는 물을 붓는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반드시 '끓는 물'을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냥 미적지근한 물이나 적당히 뜨거운 물 정도로는 찻물때 제거가 어렵다. 그렇게 10분 정도 놔둔다. 마찬가지로 도자기 머그컵의 찻물때도 그렇게 제거할 수 있다. 과탄산소다를 녹인 물은 부엌 개수구에 버리면 자연스럽게 배관 청소도 된다.


3. 운동화 밑창이 떨어졌을 때: 운동화 전용 접착제를 산다

  러닝화나 운동화를 신다 보면 밑창이 갑피와 분리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럴 때 쓰는 전용 접착제가 있다. 대개의 운동화 밑창은 폴리우레탄(polyurethane)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러므로 같은 계열의 성분을 쓴 접착제를 써야 잘 붙는다. 다이*의 운동화 전용 접착제는 폴리우레탄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얼마 전, 내 러닝화의 앞코 부분이 약간 벌어져서 그 접착제를 한번 써보았다. 이게 정말 붙을까, 반신반의하면서 써보았다.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앞코 부분은 멀쩡히 잘 붙어있다. 이 접착제는 사용할 때 바로 붙이면 안된다. 접착제를 붙이려는 부위에 짜놓고, 5분이나 10분 정도 시간이 좀 지난 뒤에 끈기가 생길 때까지 기다린다. 그런 뒤에 강한 힘을 주어서 두 접착면을 붙인다. 집게 같은 것으로 접착 부위를 고정해서 반나절 정도 놔두는 것이 좋다.


4. 다 쓴 칫솔의 쓸모: 창틀의 틈새 청소

  칫솔모가 휘어진 칫솔은 곧바로 플라스틱 분리수거함으로 보내지 말자. 창틀의 틈새 청소와 방충망의 부분적인 먼지 제거에 헌 칫솔은 매우 유용하다. 어느정도 더 닳아질 때까지 그 칫솔을 창틀 청소에 쓸 수 있다.  


5. 끈적거리는 모든 것은 가라: 오렌지 껍질의 활용 비법

  스카치 테이프를 자르는 전용 가위는 쓰다 보면 테이프 끈기 때문에 잘 들지 않는다. 그럴 때는 오렌지 껍질을 써본다. 오렌지 껍질의 겉부분을 가위의 날 부분에 반복해서 문질러주면 된다. 끈적거리는 테이프 자국이 제거되면서 반짝거리는 윤까지 난다. 오렌지 껍질은 개수대나 후라이팬의 잘 지워지지 않는 얼룩과 기름기를 제거하는 데에도 유용하다.


6. 생선과 육류를 쓴 식기의 비린내 제거: 락스 희석액을 쓴다

  락스는 화장실 청소에만 유용한 아이템이 아니다. 그것은 주방에서도 꽤 쓸모가 있다. 생선이나 육류 요리 후, 식기를 아무리 깨끗이 설거지해도 비린내가 남는다. 그럴 때는 락스를 적당량의 물에 희석해서(락스 용기 뒷면의 사용법 참조) 식기를 헹구어 낸다. 락스는 물과의 희석 비율만 정확히 지킨다면 매우 좋은 소독제가 된다. 내가 읽은 가장 놀라운 락스 활용법은 아프리카에 파견된 선교사의 글에서였다. 온갖 기생충이 창궐하는 아프리카 오지의 선교사는 채소 식재료를 락스 희석액에 반드시 담근 후에 쓴다고 했다. 그렇게 해야만 기생충을 비롯해 벌레들을 제거할 수 있다고 했다. 락스는 그곳 선교사에게는 생존의 필수품인 셈이었다.


7. 쌀과 곡식의 보관: 생수 PET병을 모아서 쓰라

  쌀을 보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냉장고에 넣는 것이다. 하지만 10kg 또는 20kg이상의 쌀을 냉장고에 두고 먹기는 쉽지 않다. 물론 햅쌀의 경우는 냉장 보관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그것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생수 PET병에다 쌀을 소분해서 담는다. 그렇게 담은 쌀을 직사광선을 피해 서늘하고 건조한 곳에 둔다. 쌀을 담은 병마다 실리카겔 작은 봉지를 하나씩 넣어두는 것도 좋다. 10kg 쌀 한 포대를 담는 데에는 보통 2L 생수병 6개 정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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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아침, 산책을 다녀오고 나서 발바닥에 뜨거운 무언가가 느껴졌다. 족저근막염이 도진 것이다. 얼마 전부터 그 병이 도지는 조짐이 있기는 했다. 그럴 땐 좀 쉬어야 하는데, 그걸 그냥 무시하고 산책을 나갔다 왔다. 가을 날씨가 좋았기 때문이다. 산책이라고 해봐야 아파트 근처 공원을 1시간 남짓 걷는 것이 전부이다. 무슨 무리한 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매일 하루종일 서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왜 족저근막염이 생기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족저근막염의 원인을 살펴보니 익숙한 단어가 눈에 띈다. 노화(老化). 나이가 들면서 몸 이곳저곳이 아픈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 단어 하나면 충분하다.

  정형외과 의사의 유튜브를 찾아서 보니, 족저근막염에는 휴식이 답이란다. 의사는 그 병엔 소염진통제도 그다지 효과가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늘 하던대로 발바닥에 파스를 붙이고, 신발장에서 비치 샌들을 꺼내어 신었다. 이 샌들은 10년 전인가, 인터넷에서 5천원을 주고 산 것이다. 족저근막염이 도졌을 때마다 나는 이 샌들을 꺼내어 집안에서 신고 다녔다. 한 며칠, 그 샌들을 신고 집에서 걷다 보면 통증이 좀 잦아들곤 했다. 내일은 산책을 나가지 말고 쉬어야지. 생각은 그렇게 해도 한편으로는 걸으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서 또 나가게 된다. 

  올해는 이래저래 몸이 아파서 고생을 하고 있다. 봄에는 오십견이 생겨서 팔을 드는 것이 꽤나 고통스러웠다. 매일 억지로 스트레칭 체조를 해가며 이를 악물고 버텼다. 가을에 접어드니 이제서야 어깨를 좀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었다. 늙어서 그래. 혼잣말을 하면서 거울을 보니, 앞머리 사이로 뭉텅이진 흰머리가 보인다. 올해 들어서 흰머리가 더 많이 나고 있다. 그동안 염색을 하기 싫어서 안하고 살았다. 귀찮기도 하고, 염색약 알레르기도 걱정스러웠다. 그래도 염색을 해야한다면 뭘로 해야하나... 알아보니 염색이 되는 샴푸도 있었다. 그 샴푸는 가격도 꽤나 비쌌다. 이걸 써보면 어떨까? 

  '회사의 부장님이 이 샴푸를 쓴다 하더라구요. 염색은 자연스럽게 잘 된대요. 그 말을 들으니 나도 써볼까 싶었죠. 그런데 부장님 손톱이 눈에 띄는 거에요. 손톱 밑이 거무스름하게 물이 들어있어요. 아, 저 샴푸를 쓰면 손톱도 저렇게 색이 변하는구나... 그걸 보니 쓰고 싶은 마음이 싹 달아나던데요.'

  누군가 그런 글을 써놓았다. 그렇구나. 그 샴푸는 염색의 귀찮음을 상쇄하는 대신에 손톱에도 검은 물을 들이는 모양이었다. 문득 오래전, 엄마의 흰머리를 뽑을 때가 생각났다. 내 모친은 일찍부터 머리가 세었다. 엄마에게 흰머리가 나기 시작한 때가 30대 후반부터였을 것이다. 그 즈음에 엄마는 나에게 흰머리 하나에 10원을 주겠노라며 흰머리를 뽑아달라고 하셨다. 나는 흰머리를 뽑다가 더이상 흰머리가 보이지 않으면 검은 머리카락을 뽑고는 엄마를 살짝 속이곤 했다. 엄마는 알면서도 속아주었다. 그래서였을까? 이제 팔순이 가까운 엄마의 휑한 정수리를 보고 있노라면 나는 약간의 죄책감을 느낀다.

  늙음이 주는 좋은 점이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머릿속에는 떠오르는 게 없다. 나이가 들면 인생의 지혜가 생긴다느니 하는 말은 내게는 그저 개 풀 뜯어먹는 소리처럼 들릴 뿐이다. 체력은 떨어지고, 몸 여기저기가 아프니 병원 갈 일이 자꾸 생긴다. 기억력도 예전만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서 읽으니 장년의 나이에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 기억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대학 때 배웠던 중국어를 독학으로 다시 시작한 것이 한 2년쯤 되었다. 의외로 뭔가를 새롭게 배운다는 것이 참 재미있었다. 이걸 써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중국에는 가본 적이 없지만, 언젠가 가게 되면 그곳 현지인에게 가벼운 인사말을 건넬 수는 있을 것이다.     

  어제, 매일 확인하는 Merriam-Webster 홈페이지의 'word of the day'는 'foliage'였다. '잎사귀'를 뜻하는 이 단어는 중세 프랑스어의 'foille(잎)'에서 유래했다. 생각해 보니 나무의 생장은 사람의 일생과 비슷한 면이 있다. 봄이 되면 작은 새잎들이 돋고, 여름에는 푸르름이 무성해지며, 가을에는 그 잎들이 모두 떨어진다. Merriam-Webster는 'foliage'의 연관 단어로 'deciduous'를 알려준다. 그 단어는 '잎이 떨어지는'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잎이 떨어져도 봄에 다시 녹색의 잎을 틔우는 나무와는 달리 사람의 인생은 점차적으로 노쇠해질 뿐이다. 늦은 밤, 나는 발바닥에 붙인 파스를 떼어내며 자그맣게 한숨을 내쉰다. 어쩌겠는가, 늙어감을 그저 견디며 살아낼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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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란타나(학명 Lantana)

  작은 꽃이지만 매우 오밀조밀하면서도 예쁘게 생겼다. 나름대로 색감도 화려하다. 그런데 이 예쁘장한 꽃은 독으로 무장하고 있다. 함부로 만지거나 손대지 않는 것이 나을듯 하다.





2. 일일초(학명 Catharanthus roseus)

  분홍색의 화사한 이 꽃은 '일일초'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꽃이 지더라도 이어서 새 꽃이 피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 꽃의 잎사귀는 가늘고 날렵하게 생겼다. 그 모양새를 보고 나는 이 꽃이 협죽도과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맞았다. 협죽도과의 꽃들은 대체로 곱고 아름다운 모양을 지녔다.





3. 천수국(학명 Tagetes erecta)

  'Mexican marigold'라고 불리는 이 꽃은 뾰족뾰족 가시 모양의 잎사귀가 인상적이다. 멕시코에서 자생하는 꽃이라고 하니, 멕시코에 여행갈 일이 있다면 그곳에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4. 우단동자(학명 Silene Coronaria)

  이 꽃은 모양새로만 본다면 그렇게 눈길을 끄는 꽃은 아니다. 꽃이름을 찾아보니 '우단동자'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우단(羽緞)'은 우리가 흔히 아는 '벨벳', '비로드'라고 불리는 그 옷감이다. 이 꽃의 줄기와 잎에는 작은 솜털이 나있는데, 그것이 부드러운 우단 옷감을 연상하게 만든다. 꽃 보다도 '우단동자'라는 이름이 인상적인 꽃.





5. 천일홍(학명 Gomphrena globosa)

  천일홍은 흰 토끼풀 꽃에 보라색을 물들인 것 같다. 뭔가 볼품없어 보이는 꽃이지만 지나가는 이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만든다. 진보라의 화려한 색감이 눈길을 끈다.





6. 체리 세이지(학명 Salvia Microphylla)

  손톱만한 작은 이 꽃은 꿀풀과에 속하는 세이지 꽃이다. 워낙 아종이 많아서 꽃의 색에 따라 세이지 앞에 다양한 이름이 붙는다. 이 세이지 꽃은 붉은색이라 '체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7. 백일홍(학명 Zinnia elegans)

  나는 이 꽃을 보고 처음에는 과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구글의 '렌즈' 기능을 써서 확인해 보니 과꽃(Callistephus chinensis)이 아니라 백일홍이다. 두 꽃의 차이는 잎사귀에 있다. 백일홍은 가는 타원형의 잎인데, 과꽃은 잎사귀가 갈퀴 모양으로 생겼다. 백일홍은 관상용으로 심기에 정말 좋은 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 꽃은 배롱나무(학명 Lagerstroemia indica)의 다른 이름에도 들어있다. '목백일홍(나무 백일홍)'으로 불리는 배롱나무의 분홍색 꽃은 백일홍의 화사함을 떠올리게 만든 데에서 유래했다.  





8. 피튜니아(Petunia)
 
  피튜니아는 길가 화단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다. 자주색, 푸른색, 흰색, 붉은색의 피튜니아는 흔하다. 그런데 처음 본 이 분홍색의 피튜니아는 나팔꽃을 떠올리게 만드는 소박함과 청초함이 느껴진다.



 

9. 송엽국(학명 Lampranthus spectabilis)

  이 꽃을 처음 보고서 뭔가 알 것 같은 꽃인데, 하고서 고개를 갸우뚱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꽃의 잎이 채송화와 비슷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꽃의 또 다른 이름이 '사철 채송화'이다. 사람들은 이 꽃의 잎이 소나무의 잎을 떠올리게 만든다고 해서 '송엽국'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송엽국은 학명에서 따온 '람프란서스'로도 불린다. 




 
  예전에는 잘 모르는 꽃의 이름을 찾는 일이 꽤 번거롭고 힘들었다. 그런데 구글 포토에서 '렌즈' 기능을 사용하니 꽃 이름 찾는 일이 참으로 수월했다. 아, 구글은 한 3년 동안 아무것도 안해도 망하지는 않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이 회사는 사용자의 요구를 파악하고 그것을 상품화시키는 데에는 아주 귀신같은 재능을 지녔다.

  문득 2004년에 지메일이 처음 나왔을 때 생각이 난다. 그때는 지메일 계정을 가진 사람이 초청장을 보내야만 지메일에 가입할 수 있었다. 지들이 뭔데, 참 치사하고 더럽다는 생각을 했었던... 그랬던 내가 결국 지메일에 가입하고 이제는 구글 생태계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나는 구글 렌즈에 감탄하다가, 이 기업의 편의성에 너무나 손쉽게 중독되어 사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이 편리함에 익숙해지면 아주 자연스럽게 구글의 충성스런 고객이 되고 거기에 따른 돈을 지불해야겠지. 오늘, 꽃 이름을 찾다가 이상하게도 마음이 씁쓸해짐을 느꼈다.



*본문의 사진들은 모두 내가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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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구, 청하가 여기 있네."

  머리가 허연 노인이 아파트 분리수거함에서 능숙하게 술병을 꺼낸다. 나는 산책 나가는 길에 그 할머니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가만 보니 노인은 공병 보증금이 있는 술병이 눈에 띄면 가져가는 모양이었다. 청하 300ml 작은 병의 공병 보증금은 100원. 그 보다 훨씬 큰 700ml 용량의 백화수복은 130원이다. 그 할머니가 작은 청하병을 보고 반가움의 탄성을 질렀을 법도 하다.

  사실 청주는 집안 제사를 지낼 때 빼고는 따로 구매할 일이 없는 물품이기는 하다. 그 청주를 요리에 좀 쓰고 나면 병이 나온다. 술병 한 귀퉁이에 빨간 테두리로 인쇄된 부분에는 공병 보증금이 적혀있다. 하지만 나는 그걸 마트에 가져가기 귀찮아서 아파트 분리수거함에 내놓는다. 유리병으로 표기된 분리수거함에는 그렇게 공병보증금을 받을 수 있는 여러 종류의 술병이 쌓인다. 대개는 그 병들은 경비들의 가외 수입으로 쓰이는 모양이다. 분리수거함에는 경고문까지 붙여져 있다.

  "공병을 함부로 가져가지 마십시오. CC TV 확인 후 도난 행위에 대해 조치할 것입니다."

  그런데 분리수거함에서 공병을 가져가는 것이 과연 절도에 해당하는가? 나는 그 경고문을 볼 때마다 쓴웃음을 짓게 된다. 어쨌든 경비들 입장에서는 입주민이 버린 공병은 자신들의 수입에 해당하는데, 그걸 빼앗기는 형국이라 저런 말도 안되는 글을 써붙였을 것이다. 그런 경비들에게 '청하 할머니' 같은 이들은 공공의 적임이 분명하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나는 산책을 가던 도중에 그 할머니의 공병 수거 현장을 목격했다. 마치 맨손으로 물고기를 날렵하게 잡아내듯, 노인은 순식간에 청하 병을 일별해내어 건졌다. 할머니에게 각 아파트 동마다 놓여있는 분리수거함은 자신만의 사업장과도 같았다. 노인은 불룩해진 비닐 봉투를 손에 들고 있었다. 할머니는 아는 친구 노인과 분리수거함 앞에서 만나서 병을 몇 개 주웠나에 대해 떠들어댔다. 나는 머릿속으로 저 할머니가 하루에 수확(?)하는 공병이 과연 얼마나 될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각 단지의 아파트마다 있는 분리수거함에서 하루에 100원짜리 공병을 10개 주으면 1000원, 한 달이면 3만원이 된다. 노인에게는 나름대로 솔찮은 용돈벌이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경비의 눈을 피해서 조심스럽게 해야겠지만 말이다.

  반드시 공병을 줍고 말겠다는 의지. 나는 그 '청하 할머니'의 말과 행동거지에서 그 결연함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것이 어떤 면에서는 궁상맞음과 맞닿아 있음에도 노인이 청하 병을 발견했을 때 내지르는 감탄사는 행복감 그 자체의 표현이었다. 저렇게 적은 액수라도 공짜로 무언가를 얻어내는 것은 소시민적인 행복에 해당하는가? 나는 비로소 노인이 보여주는 그 억척스러움을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사진 출처: 내가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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