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베란다 청소를 하다가 소금 포대 근처에 하얀 가루가 지저분하게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게 뭐지.... 오래된 집이라 베란다 천장에서 페인트가 탈락한 것인가 했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건 소금을 담은 비닐 포대의 조각들이었다. 그랬다. 비닐이 삭아서 조각조각 떨어지고 있었다. 이 소금을 샀던 때는 2011년,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있던 해였다. 그 해는 방사능 오염에 대한 공포 때문에 소금값이 급등했었다. 급한 마음에 나도 부랴부랴 20kg 소금 한 포대를 샀었다. 그렇게 소금을 사놓고 간수를 빼놓는다고 베란다 한 귀퉁이에 두었다. 이제 12년이 지난 지금 그 소금 포대의 비닐이 시간의 무게를 못 이기고 삭아내리고 있었다.

  그 소금을 그동안 먹지 않고 놔둔 건... 아끼느라 그랬다. 뭐랄까, 나에게 그 소금은 오염되지 않은 바다가 준 마지막 선물과도 같았다. 나는 그 소금 포대를 볼 때마다 마음이 든든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올해,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배출이 시작되면서 다시 소금값이 천정부지로 뛰기 시작했다. 소금 사재기 열풍 속에서도 내 마음은 편안했다. 나에게는 후쿠시마 원전이 터지기 전에 생산된 소금 한 포대가 있다! 혼자 마음속으로 그렇게 되뇌면 아주 내가 부자가 된 느낌이 들곤 했다. 그런데 그 소금 포대가 삭아내리고 있는 것을 보니 나도 참 세월의 흐름에 무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아침, 나는 소금 포대 정리에 나섰다. 꽁꽁 동여맨 포대의 끈을 풀자 단단하게 굳은 소금이 보였다. 소금을 퍼내려고 했지만, 간수가 다 빠지다 못해 굳어버린 소금은 돌덩어리나 다름없었다. 나는 주방 가위로 소금을 조금씩 깨나가면서 소금 덩어리를 해체해 나갔다. 그런데 정작 가장 큰 문제는 다른 데에 있었다. 포대였다. 부서지는 비닐 조각들이 소금 속에 계속해서 섞였다. 나는 비닐 포대와 접한 가장자리 부분은 놔두고 안쪽을 우물 파 내려가듯 덩어리를 부수어 가며 소금을 퍼내었다. 그렇게 큰 항아리에 깨끗한 소금을 채워나갔다.

  포대 바깥 부분의 소금은 단단한 덩어리인 채로 크게 조각을 내어 항아리에 담았다. 눈가루처럼 날리는 비닐 조각들이 꽤나 신경 쓰이기는 했다. 나는 소금 덩어리의 겉면을 대충 털어내면서 비닐 조각들을 제거했다. 그렇게 20kg 소금 한 포대를 항아리 세 개에 나누어 담았다. 베란다는 어느새 소금밭이 되어있었다. 진공청소기를 2번이나 돌렸는데도 소금 알갱이들은 계속해서 나왔다. 소금 덩어리를 부수고 퍼내어 담느라 손목은 시큰거렸다. 팔목은 소금 덩어리에 긁혀서 상처가 나 있었다.

  겨우 베란다 청소를 해놓고 나니 그제서야 마음이 좀 놓였다. 하지만 소금을 담을 때 계속해서 부서지던 비닐 포대 조각들이 영 마음에 걸렸다. 그런 소금을 그냥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저녁에, 나는 시험 삼아 항아리의 소금을 담아서 물에 씻어 보았다. 비닐 조각들이 물에 둥둥 떠다녔다. 두어 번 헹구면 되겠지. 하지만 무려 5번이나 헹구고 나서야 비닐 조각이 나오지 않았다. 커다란 양재기 가득 담았던 소금은 이제 한 움큼밖에 남지 않았다.

  오호통재(嗚呼痛哉)라, 오호애재(嗚呼哀哉)라! 나는 조침문(弔針文)을 지은 조선 시대 유씨 부인의 절절한 심정을 느낄 수 있었다. 방사능에 오염되지 않은 이 순수한 소금을, 한갓 비닐 조각들 때문에 내가 어찌 버릴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마음속으로 거듭해서 내 어리석음과 무신경함을 탓하고 있었다. 아니다, 분명 이 귀한 소금을 구할 방법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구글 신이 있다. 나는 간절히 구글 신의 가호를 빌며 열심히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그랬다. 유튜브에는 천일염 잘 씻는 법을 알려주는 이가 있었다. 소금을 씻을 때는 미리 받아놓은 물에다 씻어야만 녹아서 버리는 소금의 양을 줄일 수 있었다. 천일염을 물에 씻는 것은 오히려 권장할 만한 일이었다. 그것은 소금에 섞인 이런저런 이물질들을 제거하는 데에 좋은 방법이었다. 그렇게 씻은 소금을 체에 밭쳐서 한 며칠 두면 물기가 빠진다. 물기를 더 제거하기 위해서는 키친 타월을 깔고 그 위에 소금을 두면 되었다.

  "아, 그거 못 먹겠네. 그냥 버려."

  밤늦게 전화로 내 하소연을 들은 동생은 그렇게 말했다. 지난 12년 동안 든든한 만기 적금과도 같았던 소금은 이제 애물단지로 전락해 버렸다. 나에게는 앞으로 물에다 씻어서 써야 할 20kg의 소금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그래도 이 소중한 소금을 버릴 수는 없다. 시큰거리는 손목에 파스를 붙이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크게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