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 산책을 다녀오고 나서 발바닥에 뜨거운 무언가가 느껴졌다. 족저근막염이 도진 것이다. 얼마 전부터 그 병이 도지는 조짐이 있기는 했다. 그럴 땐 좀 쉬어야 하는데, 그걸 그냥 무시하고 산책을 나갔다 왔다. 가을 날씨가 좋았기 때문이다. 산책이라고 해봐야 아파트 근처 공원을 1시간 남짓 걷는 것이 전부이다. 무슨 무리한 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매일 하루종일 서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왜 족저근막염이 생기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족저근막염의 원인을 살펴보니 익숙한 단어가 눈에 띈다. 노화(老化). 나이가 들면서 몸 이곳저곳이 아픈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 단어 하나면 충분하다.
정형외과 의사의 유튜브를 찾아서 보니, 족저근막염에는 휴식이 답이란다. 의사는 그 병엔 소염진통제도 그다지 효과가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늘 하던대로 발바닥에 파스를 붙이고, 신발장에서 비치 샌들을 꺼내어 신었다. 이 샌들은 10년 전인가, 인터넷에서 5천원을 주고 산 것이다. 족저근막염이 도졌을 때마다 나는 이 샌들을 꺼내어 집안에서 신고 다녔다. 한 며칠, 그 샌들을 신고 집에서 걷다 보면 통증이 좀 잦아들곤 했다. 내일은 산책을 나가지 말고 쉬어야지. 생각은 그렇게 해도 한편으로는 걸으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서 또 나가게 된다.
올해는 이래저래 몸이 아파서 고생을 하고 있다. 봄에는 오십견이 생겨서 팔을 드는 것이 꽤나 고통스러웠다. 매일 억지로 스트레칭 체조를 해가며 이를 악물고 버텼다. 가을에 접어드니 이제서야 어깨를 좀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었다. 늙어서 그래. 혼잣말을 하면서 거울을 보니, 앞머리 사이로 뭉텅이진 흰머리가 보인다. 올해 들어서 흰머리가 더 많이 나고 있다. 그동안 염색을 하기 싫어서 안하고 살았다. 귀찮기도 하고, 염색약 알레르기도 걱정스러웠다. 그래도 염색을 해야한다면 뭘로 해야하나... 알아보니 염색이 되는 샴푸도 있었다. 그 샴푸는 가격도 꽤나 비쌌다. 이걸 써보면 어떨까?
'회사의 부장님이 이 샴푸를 쓴다 하더라구요. 염색은 자연스럽게 잘 된대요. 그 말을 들으니 나도 써볼까 싶었죠. 그런데 부장님 손톱이 눈에 띄는 거에요. 손톱 밑이 거무스름하게 물이 들어있어요. 아, 저 샴푸를 쓰면 손톱도 저렇게 색이 변하는구나... 그걸 보니 쓰고 싶은 마음이 싹 달아나던데요.'
누군가 그런 글을 써놓았다. 그렇구나. 그 샴푸는 염색의 귀찮음을 상쇄하는 대신에 손톱에도 검은 물을 들이는 모양이었다. 문득 오래전, 엄마의 흰머리를 뽑을 때가 생각났다. 내 모친은 일찍부터 머리가 세었다. 엄마에게 흰머리가 나기 시작한 때가 30대 후반부터였을 것이다. 그 즈음에 엄마는 나에게 흰머리 하나에 10원을 주겠노라며 흰머리를 뽑아달라고 하셨다. 나는 흰머리를 뽑다가 더이상 흰머리가 보이지 않으면 검은 머리카락을 뽑고는 엄마를 살짝 속이곤 했다. 엄마는 알면서도 속아주었다. 그래서였을까? 이제 팔순이 가까운 엄마의 휑한 정수리를 보고 있노라면 나는 약간의 죄책감을 느낀다.
늙음이 주는 좋은 점이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머릿속에는 떠오르는 게 없다. 나이가 들면 인생의 지혜가 생긴다느니 하는 말은 내게는 그저 개 풀 뜯어먹는 소리처럼 들릴 뿐이다. 체력은 떨어지고, 몸 여기저기가 아프니 병원 갈 일이 자꾸 생긴다. 기억력도 예전만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서 읽으니 장년의 나이에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 기억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대학 때 배웠던 중국어를 독학으로 다시 시작한 것이 한 2년쯤 되었다. 의외로 뭔가를 새롭게 배운다는 것이 참 재미있었다. 이걸 써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중국에는 가본 적이 없지만, 언젠가 가게 되면 그곳 현지인에게 가벼운 인사말을 건넬 수는 있을 것이다.
어제, 매일 확인하는 Merriam-Webster 홈페이지의 'word of the day'는 'foliage'였다. '잎사귀'를 뜻하는 이 단어는 중세 프랑스어의 'foille(잎)'에서 유래했다. 생각해 보니 나무의 생장은 사람의 일생과 비슷한 면이 있다. 봄이 되면 작은 새잎들이 돋고, 여름에는 푸르름이 무성해지며, 가을에는 그 잎들이 모두 떨어진다. Merriam-Webster는 'foliage'의 연관 단어로 'deciduous'를 알려준다. 그 단어는 '잎이 떨어지는'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잎이 떨어져도 봄에 다시 녹색의 잎을 틔우는 나무와는 달리 사람의 인생은 점차적으로 노쇠해질 뿐이다. 늦은 밤, 나는 발바닥에 붙인 파스를 떼어내며 자그맣게 한숨을 내쉰다. 어쩌겠는가, 늙어감을 그저 견디며 살아낼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