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호텔르완다를 본게 언제인지 기억이 안나는데 오래됐지만 그 영화로 인한 충격과 공포를 잊을 수가 없다. 이름 몰랐던 배우가 뿜어내는 실제 아닌 연기를 내심 확인하며 보았는데도 너무나 사실적인 내용에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이게 정말 일어난 일이라고?! 후투족과 투치족간 백만명 학살전쟁중 천여명을 살린 이야기. 이 영화를 통해 아프리카의 한나라 그곳의 민족분쟁의 엄청난 분노를 알게 되었다.이 책은 그 로완다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났던 전쟁과 분쟁속에 여성들의 지울 수 없는 아픔에 집중한다.정말로 이 책을 읽는게 고통스러웠다. 이런 말로 쓰는 글이 책속 그녀들을 아픔의 일초도 나타낼수 없음이 안타깝다.역사에서 신화속에서도 하물며 성경에서도 여자를 취하는 일은 강물에 씻으면 없는 일이 되는 일로 여겨졌다.그러나 강간당한 여자들의 삶은 살아 있으나 살아 있는게 아닌 빈껍데기의 삶이 된다. 야지디족의 한 여성은 ISIS의 성노예가 되어 하루 5~6번씩 강간당하며 팔리고 팔려 13번이 팔린 끝에 가족의 품에 갈 수 있었다 그나마 돌아간 케이스를 찾은 경우이고 이슬람에 세뇌되고 낙인이 무서워 돌아오지 않거나 돌아오더라도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가 너무 많다고 했다.로힝야족의 학살과 강간 2차세계대전에서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의 위안부 유고 세르비아 내전 르완다 콩고내전등전쟁에서 강간은 어리고 늙음을 구분하지 않았다. 충격적인 챕터 중 하나였는데 18개월 세살 이런 아기들이 잠깐의 틈에 강간 당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일들이 일련의 국가들에서 계속적으로 늘어난다는 것이다.인권을 생각지 않더라도 사람의 목숨까지 잃게하는 그 일을 서스럼없이 할 수 있게하는 환경이란 것에 분노 할 수 밖에 없다. 전쟁을 강간때문에 하는건가 싶은 정도로. 전쟁에서는 아무 죄가 안된다 그러니까 여자들을 마음대로 해도된다. 강간으로 질에 날카로운 막대를 꽂거나 총으로 쏘거나 불을 지르거나 하는 행위로 상대 부족의 아이를 낳지 못하고 자기민족을 임신하게 하며 공동체에 적응할 수 없게 하는 완벽한 전쟁무기로써의 강간. 그럼에도 그 행위를 한 남자들은 일말의 부끄러움이 없는 태도와 아무런 책임도 심판 받지 않는 일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에 너무 참담했다.죄가 죄로 인정 되지 않는데에는 판결의 문제도 있지만 그 또한 성별의 문제로도 귀결될때가 대부분이기도 했다. 남성 판사가 판결을 내리는 경우와 여성판사가 결론을 내리는 경우의 차이.각 나라에서 치욕적이지만 낙인찍힘의 두려움을 떨치고 나선 여성들의 용기에는 나에게 욕보인자들도 심판받고 두려워 죽음의 고통을 느끼기 바라고 그녀들 앞에 나와 사과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의 태도는 수많은 피해자들의 목소리와 현실적인 건강의 문제를 문제로조차 여기지 않는다. 국제기구들도 여성의 목소리에 대해 무감각하며 어쩔 수 없는 일로 대한다. 그렇게 모른체 하기엔 그녀들의 고통과 한숨과 공허함과 포기 희망없음이 너무 현실적이며 죽음까지의 시간이 너무 가까워보였다.문제의 근원 민족의 다름 역시 어찌보면 강간으로 인한 두 파의 갈림이 있었고 역사적으로 그렇게 얽히고 설킨 전쟁속 강간 문제를 풀기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남자들이 이 지구에 없어지지 않는 한 사실은 풀 수 없는 문제라는 생각도 든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런 일을 저지른 자들에게 고대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강력하게 처벌이 내려졌으면 한다. 창살 없는 감옥 속의 무퀘게 박사님이라는 산부인과 의사는 강간 당한 여자들의 병을 고치는데 평생을 바쳤다. 기쁨의 도시라는 공동체는 피해여성들이 살아가게 하려는 각종 지원을 한다. 납치된 여성들을 양봉기술자가 목숨을 걸고 끊임없이 구해내기도 한다. 뭘하든 목숨을 걸어야 되는 사회라니. 사법제도가 전혀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 주지 못하고 또 다른 억울함을 낳는 악순환의 고리. 나는 앞으로의 우리나라가 여전히 우려되는데몇십년을 이어온 수요집회와 위안부문제에 대한 관심은이런 다른 민족들에 비하면 그나마 이야기라도 나온 상태인거다. 정치 없음의 나라들과 각국은 경제적 이익에 취해 문제는 점점 더 잊혀져간다.잊혀질수 없는 문제, 잊혀지면 안되는 문제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할 수 있는 일이 있긴 한가?그녀들의 목소리가 세상에 알려지고 사과를 받아내고 배상을 받고 강간의 두려움이 조금이라도 옅어지게하는세계 모든 시민의 응원이 닿기를 바란다.
우연찮게 같이 읽고있는 책들이 다른 이야기이기는 하나같은 이야기를 하는 책이기도해서 신기하다.
아 진짜 욕바가지를 갖다 엎어주고 싶다.
버마 정부는 이런 보고들을 ‘가짜 강간‘이라 일축했다. 라카인의 국경관리 장관인 폰 틴트 Phone Tint 대령은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이 여성들은 강간당했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의 외모를보세요. 강간당할 만큼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세요?"
밝은 밤을 읽었다. 수억년전에 떠나온 빛이 오늘 우리에게 와 닿았다는 비현실적인 공간감을 이야기하는것이 어떤 의미인가 싶어질때가 있다. 우주에서 보면 티끌보다 작디작은 존재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까. 빛은 시간을 타고 오늘에 이르렀고 오늘의 빛은 시간을 타고 또 어느날인가에 가닿을 것이다.인생의 수많은 순간들이 어떤 우주 속에 떠다니고 있을 수도 있겠다. 겹겹이 쌓인 시간의 우주는 그런 이야기들을 다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그 광할한 우주의 시간이라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를 이야기이다.소설은 지연과 할머니의 만남을 그리면서 자연스레 할머니의 어린시절을 돌아본다. 증조모 이정선 할머니 영옥 엄마 길미선 주인공 지연의 4대에 이르는 이야기이자각 시대의 곁을 지나온 증조모와 새비의 이야기조모와 희자의 이야기같은 여자들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기도하다. 백년을 지나오는 동안 갖가지 고난과 역경이 시시때때로 찾아오는데 역사를 되짚을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벼랑끝의 나라 그안에서 꿋꿋하고 지혜로웠던 백성들의 이면을 읽는 고통이 차례로 펼쳐진다.식민지시절 위안부로 끌려갈 위기를 넘기고 새비아저씨의 징용으로 인한 피폭 광복이후 625와 보도연맹사건 등이 삼천이와 새비의 시간과 맞물리며 헤어짐과 만남을 이어가게한다.특히 새비아주머니가 삼천에게 보내는 편지들이 마음을 먹먹하게 하는데 편지속 삼천아 삼천아 부르는 것만으로도 마치 내가 삼천이가 된듯 새비를 너무 그리워하게 되는 환상을 겪는다.새비는 공산당이라는 누명으로 한순간에 목숨을 잃은 오빠때문에 가족이 몰살할수 있다는 말로 시댁에서도 내쳐진다. 피난 가게 된 대구의 고모댁을 가기전 머무를 곳이 없어 딸과 함께 삼천을 찾아 오는데 남편이 같은 이유로 가족에 위험할 수 있다며 머물수 없게 해 같이 있어 주지 못 함을 평생 후회하게 된다. 그 역시도 새비는 삼천을 이해하며 피난길에 오른다. 백정의 딸이라는 신분의 벽을 없애준 삼천의 동무 새비맛있는걸 맛있게 먹으며 맛있다고 얘기해준 사람이 아무도 없을때 그 말을 건네며 옆에 나란히 앉아준 사람. 누구보다 날 위해서 널 안 굶게 할거야 다짐을 하게 했던 친구. 편지가 이들의 이야기를 현실로 갖고오는 중요한 도구인데글이라는것이 힘이 세다는걸 다시 느끼는 순간었다.백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일이 이렇게 한순간이라니. 편지글은 마법의 주문이 되어 현실의 지연을 증조모곁으로 데려간다. 새비도 살아있고 삼천이 할머니도 영옥이 할머니도 웃으며 공놀이 하는 바닷가. 증조모와 조모 엄마가 살아온 시대와는 또다른 힘듦을 겪고있는 지연이지만 이혼한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엄마와의 관계에서도 삼천이 할머니 영옥할머니의 이야기로 어떤 위로와 힘을 받는 것 같았다. 살아갈 수 있는 힘. 그렇고 그런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최은영의 글에는 마음을 비집고 들어오는 글들이 구석마다 있다. 아무리 못들어오게 해도 읽는순간 빗장을 풀게되는 그런 선함이 배인 글.어쩌면 이러한 모든 글들이 우주에 기억되고 저장되고 있을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읽히지 않고 기억되지 않는다면 누구의 말처럼 그 광할한 우주공간이라는것이 엄청난 낭비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