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밤을 읽었다. 수억년전에 떠나온 빛이 오늘 우리에게 와 닿았다는 비현실적인 공간감을 이야기하는것이 어떤 의미인가 싶어질때가 있다. 우주에서 보면 티끌보다 작디작은 존재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까. 빛은 시간을 타고 오늘에 이르렀고 오늘의 빛은 시간을 타고 또 어느날인가에 가닿을 것이다.인생의 수많은 순간들이 어떤 우주 속에 떠다니고 있을 수도 있겠다. 겹겹이 쌓인 시간의 우주는 그런 이야기들을 다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그 광할한 우주의 시간이라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를 이야기이다.소설은 지연과 할머니의 만남을 그리면서 자연스레 할머니의 어린시절을 돌아본다. 증조모 이정선 할머니 영옥 엄마 길미선 주인공 지연의 4대에 이르는 이야기이자각 시대의 곁을 지나온 증조모와 새비의 이야기조모와 희자의 이야기같은 여자들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기도하다. 백년을 지나오는 동안 갖가지 고난과 역경이 시시때때로 찾아오는데 역사를 되짚을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벼랑끝의 나라 그안에서 꿋꿋하고 지혜로웠던 백성들의 이면을 읽는 고통이 차례로 펼쳐진다.식민지시절 위안부로 끌려갈 위기를 넘기고 새비아저씨의 징용으로 인한 피폭 광복이후 625와 보도연맹사건 등이 삼천이와 새비의 시간과 맞물리며 헤어짐과 만남을 이어가게한다.특히 새비아주머니가 삼천에게 보내는 편지들이 마음을 먹먹하게 하는데 편지속 삼천아 삼천아 부르는 것만으로도 마치 내가 삼천이가 된듯 새비를 너무 그리워하게 되는 환상을 겪는다.새비는 공산당이라는 누명으로 한순간에 목숨을 잃은 오빠때문에 가족이 몰살할수 있다는 말로 시댁에서도 내쳐진다. 피난 가게 된 대구의 고모댁을 가기전 머무를 곳이 없어 딸과 함께 삼천을 찾아 오는데 남편이 같은 이유로 가족에 위험할 수 있다며 머물수 없게 해 같이 있어 주지 못 함을 평생 후회하게 된다. 그 역시도 새비는 삼천을 이해하며 피난길에 오른다. 백정의 딸이라는 신분의 벽을 없애준 삼천의 동무 새비맛있는걸 맛있게 먹으며 맛있다고 얘기해준 사람이 아무도 없을때 그 말을 건네며 옆에 나란히 앉아준 사람. 누구보다 날 위해서 널 안 굶게 할거야 다짐을 하게 했던 친구. 편지가 이들의 이야기를 현실로 갖고오는 중요한 도구인데글이라는것이 힘이 세다는걸 다시 느끼는 순간었다.백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일이 이렇게 한순간이라니. 편지글은 마법의 주문이 되어 현실의 지연을 증조모곁으로 데려간다. 새비도 살아있고 삼천이 할머니도 영옥이 할머니도 웃으며 공놀이 하는 바닷가. 증조모와 조모 엄마가 살아온 시대와는 또다른 힘듦을 겪고있는 지연이지만 이혼한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엄마와의 관계에서도 삼천이 할머니 영옥할머니의 이야기로 어떤 위로와 힘을 받는 것 같았다. 살아갈 수 있는 힘. 그렇고 그런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최은영의 글에는 마음을 비집고 들어오는 글들이 구석마다 있다. 아무리 못들어오게 해도 읽는순간 빗장을 풀게되는 그런 선함이 배인 글.어쩌면 이러한 모든 글들이 우주에 기억되고 저장되고 있을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읽히지 않고 기억되지 않는다면 누구의 말처럼 그 광할한 우주공간이라는것이 엄청난 낭비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