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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평점 :
ladies and gentleman...이라는 말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우리말로 옮기면, 양반 마님네들... 정도의 계급 사회의 용어였던 탓이다.
한국이야말로 계급 사회가 강하고 오래 지속되었음은 요즘 뉴스, 갑질 운운에서도 증명된다.
조선의 '선비'는 '절개'로 표상된다.
국화나 매화는 선비의 절개를 상징하는 의미의 상관물이었는데,
그래서 서정주가 '내 누님같은 노오란 국화'를 말하자, 웬 누님? 하면서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 것이다.
당연히 모스크바의 '신사'라면,
귀족 문화 만연했던 구 러시아의 문화적 면면을 유지하려 애쓰는 한편,
완전히 변해버린 세상에 대해서도 배신해서는 안 된다.
그가 그토록 인상적이었다고 하는 카사블랑카의
잔을 바로잡는 모습은,
자유를 찾아 서방 세계로 망명하는 모습의 '가짜 신사'와는 배치된다.
마치 조선의 노론들이 일제 강점기에는 천황 폐하의 백작, 자작들이 되었다가,
미군정기와 소련 군정기에는 또 그 앞잡이 노릇을 한 것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물론, 그것은 이 소설의 작가가 미국 자본가 세계의 일원이가 때문이다.
'젠틀맨십'이나 '선비 정신'은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금화 몇 닢 떨궈 주면 굽신거리는 것으로 인간을 판단한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싸구려 정신이다.
호모 사피엔스 종이 저지른 해악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높은 정신 세계 그곳에 '신사도'나 '선비 정신'을 두고 싶다면,
그것은 타인에 대한 배려이자, 세계에 대한 꼿꼿한 자신의 철학을 견지하는 것에 있다.
물론 스탈린의 철권 통치 시절이나 중국의 문화혁명기,
'귀족 - 신사 - 학자' 계층의 몰락은 비극적이었다.
하지만, 그들 계급은 혁명 이외에서는 몰락한 적이 없었다.
한국의 '교육 열풍'의 근원 역시 그들의 승승장구에 있다.
미국 자본가 편인 작가가 러시아 혁명 100년을 이런 소설로 비웃는다면, 좀 씁쓸하다.
극작가인 안톤 체호프는 “1막에서 권총이 나왔다면 3막에서는 그것을 쏘아야 한다."는 플롯의 긴밀함을 강조했다.
작가는 거기 충실하다.
한편 말리 극장에서는 안나 우르바노바가
회색빛 가발을 쓰고서
체호프의 <갈매기>에 이리나 역으로 출현하고 있었다.(648)
그러던 와중에 정전이 되는 사태가 일어난다.
소련 핵 발전의 시발이 되던 시간.
그 회색 가발은 마지막에서 빛을 발한다.
방의 한쪽 구석 2인용 탁자에는
회색빛 머리를 한 호리호리한 몸매의 여인이 기다리고 있었다.(717)
체호프의 '권총론'은 주인공의 탈출 과정에서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다양한 역할을 한다.
그렇지만, 소설의 재미는 논리보다는 감정에 더 치우치는 게 아닐까?
아무리 섬세한 고증을 한다 해도,
아무리 긴밀한 플롯으로 치밀하게 구성되었다 해도,
러시아 사람들의 고통을 반영하지 못하는 '모스크바의 신사'는
미국에서 '신사'로 취급하고 싶어하는 가짜 논리가 너무 개입한 것 아닌가 싶어 씁쓸하다.
그가 책다운 책이라 생각한 '몽테뉴 수상록'과 '안나 카레니나'가 시종 등장하는 부분은 즐겁다.
친구란 모름지기 서로의 능력을 과대평가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217)
이런 대목도 즐겁다.
친구나 부부 사이에 서로를 비판하려 들거나 정확히 평가한다면, 늘 부딪칠 일만 생길 터이니...
우정의 지속 시간은 결코 시간의 흐름에 좌우되는 게 아니다.(524)
그럴 수도 있으나 그런 말에 수긍할 때는 그들의 우정이 고통을 겪으면서도 이어졌을 때 등장하는 것이고,
이런 말을 앞에 두면서
미 대사관의 리처드와 이어지며 망명하는 것을 두고 신사의 도리라 한다면...
억지논리다.
추방은 인류의 탄생만큼이나 오래되었다.
그런데 러시아인들은 국외가 아니라 자국 땅으로 추방하는 개념을 터득한
최초의 민족이었다.(266)
이런 것도 유럽 사람들의 사상이 반영되어있다.
그들의 망명, 추방은 이웃 나라를 전전하는 것이 되기 쉬웠으나,
중국이나 조선 같은 곳에서는 자국 내 추방이
중앙에서 변방으로의 추방으로 작용한 것이다.
하나의 민족으로서
우리 러시아인들은
우리가 창조한 것을 파괴하는 데
기막히게 뛰어난 재주가 있다는 걸 증명해 왔다네.(456)
남의 대륙에 쳐들어가서 원주민 천만 명과 천만 마리의 버팔로를 살육하고
나라를 세운 사람들의 은행국에서 할 말은 아닌 듯 싶다.
오랫동안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농노들의 나라의 혁명을 두고
이런 비아냥을 던지는 것은 건방지고 치졸하다.
언제부터인가 재즈라는 예술 형식이 그의 마음속에 똬리를 틀고 말았다.
재즈는 본질적으로 사교적인 친화력을 가진 듯했다.
약간 방종스러우며 머릿속에 먼저 떠오르는 것부터
즉흥죽으로 얘기하는 경향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유쾌하고 우호적인 성격을 띠었다.
더군다나 재즈는 어디에 있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으며,
얼마간 장인의 자신감과 견습생의 미숙함을 동시에 드러내는 것 같았다.
이런 예술이 유럽에서 유래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워할 사람이 있을까?(344)
미국 문화는 유럽 문화의 아류로 출발했다.
당연히 유럽의 클래식 음악이 주류였으며, 재즈와 흑인 영가들은 완벽보다는 즉흥과 미숙에 가깝다.
귀족 사회가 무너지고 시민 사회가 되면서 바뀌는 문화의 풍토다.
하기야 다른 것을 틀린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문화 우월주의자의 특권이다.
마지막 부분은 '놀라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이런 의미 아니었나 싶다.
--------어색한 곳 몇 군데
그리고 1954년의 모스크바에는
잠깐 정전이 된 동안, 최소 30만 개의 시계가 멈추었고...(647)
내가 살아온 70, 80년대에도 태엽 시계가 대세였는데... 이런 부분은 의아하다.
그리고 작은 오류지만, 132쪽의 라프는 RAPP가 아니라 RAPF가 맞다.
그것이 일본의 NAPF로 건너와 한국의 KAPF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