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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8년 4월
평점 :
추사체로 알고 있던 완당 김정희의 일대기이자,
그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십여 년 전에 완당 평전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지만,
청나라 학자들과의 교류가 기억에 남는다.
이제 새로 펴낸 추사 김정희를 읽자니,
그 시대를 다시 돌아보게 되고,
북학(맹자에 나오는 표현으로 이상보다는 현실, 관념보다 사실을 중시하는 일)의 시대,
공맹이 한물 간 시대의 지식인 노마드로서의 김정희를 만나게 된다.
정조 사후의 순조, 헌종 시절을 거치면서 제주도에 위리안치되었다 용산(강상)으로 겨우 돌아오고,
노년에는 다시 함경도로 귀양을 갔더라는 사실은 시절의 혹독함을 느끼게 한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글씨는 '유재'의 두 글자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8/0712/pimg_7243001831953683.png)
기교를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조화로움으로 돌아가게 하고,
녹봉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조정으로 돌아가게 하고,
재물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백성에게 돌아가게 하고,
내 복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자손에게 돌아가게 하라.(340)
뭔가 예술과 삶이 하나의 도의 경지를 품은 인격을 느끼게 된다.
추사의 재능은 감상이 가장 뛰어났고,
글시가 그 다음이며, 시문이 또 그 다음.(495)
감상은 미술품 감식,
금강안 혹리수.
서화 감상하는 데는 금강역사 같은 눈과
혹독한 세리 같은 손끝이 있어야 그 진가를 다 가려낼 수...(496)
금강안 혹리수... 멋지고 날카로운 말이다.
즐거운 독서를 하면서, 못내 눈에 밟히는 해석이 몇 군데 있었는데,
소소한 작품이야 내가 다 번역할 능력이 안 되지만,
유명하고 굵직한 작품들이라 부족한 점이 눈에 띈다.
한시 번역은 전적으로 정민 교수의 도움으로...(580)
보통 부족한 점은 자기의 소치로 여기던데, 틀리거나 어색한 부분은 전적으로 정민 교수 탓인 걸까?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8/0712/pimg_7243001831953684.jpg)
호고연경으로 불리는 아주 유명한 작품이다.
옛것 좋아 때때로 깨진 빗돌 찾았고,
경전 연구 여러 날에 쉴 때는 시 읊었지(199)
이렇게 번역되어 있는데, 전혀 대구에 어울리지 않는다.
두번째 구절은 <경전 연구 여러 날에 시도 읊지 못하네>가 어울린다.
쉴 때 시를 읊는 것과 비석을 찾는 것은 대구가 되지 않는다.
비석 찾고 경전연구 한다고 시도 못 읊는다는 즐거운 비명인 셈이다.
이런 어색한 구절은 유명한 '다반향초'에서도 등장한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8/0712/pimg_7243001831953686.jpg)
고요히 앉은 곳, 차를 마시다가 향을 처음 사르고
오묘한 작용 일 때, 물 흐르고 꽃이 핀다.(394)
도대체 뭐하자는 건지 마음에 떠오르지 않는다.
부족한 해석을 넘어 틀린 풀이다.
다반향초는... 차를 절반 마셔도 향은 처음처럼 남는단 의미다.
술이름 <처음처럼>의 원조라 할 만하다.
고요히 앉은 곳, 차 반잔을 마셔도 향기는 그대로이고,
묘하게 음미하면, 입안에 물 흐르고 꽃이 피네...
이런 해석이 더 가깝겠다.
차를 마시는 일의 향기로움을 입 안에 꽃이 피는 것에 비유한 셈이다.
다반향초는 '오랫동안 변치 않음'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께 다반향초 하소서... 하는 덕담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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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제목을 <장강 서세>라고 적었다.(520)
장강 일만 리가 화법 속에 다 들었고
글씨 기세 외론 솔의 한 가지와 꼭 같구나.
정민 선생의 번역 이야기에 글에 충실하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화법은 장강만리가 있고
서세는 외론 솔한가지 같다... 순서를 바꾸는 일도 읽기에 불편하다.
맞춤법 고칠 곳... 513쪽.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8/0712/pimg_7243001831953702.jpg)
논어에서 사야는 올곧은 군자의 모습을 일컬은 표현으로,
'세련됨과 거침'이라는 뜻이다.... '거칠다'의 명사형은 '거칢'으로 써야 옳다.
'거침'은 중간에 어디를 거쳐서 온다고 할 때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