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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 ㅣ 창비시선 404
이정록 지음 / 창비 / 2016년 11월
평점 :
만담은 웅변도 강연도 아니고 말장난은 더더욱 아니올시다.
만담에는 사람의 가슴을 찌를 만한 그 어떤 진실이 필요한 거외다.
사람이 왜 사느냐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지가 문제로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왜'라는 것을 아예 없애버려야 하는 거외다.
왜를 위해 살 수 없다.
왜를 위해 이름과 성을 팔 수 없다.
왜, 하면 부르르 주먹 그러쥔지 참 오래구나.
왜란, 없다, 없어야 한다.
나의 이름은 본래 불출이가 아니외다.
왜 불출이라고 개명했느냐
네놈들 세상인 줄 알았더라면 태어나지 않을 걸.
즉, 네놈들 세상엔 나가지 않겠다고 한 데서
아니불 자와 날 출 자를 쓴 거외다.(신불출, 부분)
말하는 사람이 드물던 시절.
조선시대에는 말이 성하던 시절이 아니었다.
그저 네네~ 하는 숭배만이 살 길이었다.
성리학적 질서가 그러했다.
그러다가 일제가 쳐들어오자,
일제에 네네~하는 자들만이 살아 남았다.
바로 '왜'의 시대가 온 것이다.
이제 초등학생들도,
광장에 나와서 만담을 한다. 내가 이러려고 말하기를 배웠나 자괴감 들고~
중고생도 풍자에 도가 텄다.
그만큼 민도는 높아졌으나,
<네놈돌 세상인 줄 알았더라면 태어나지 않을 걸> 하는 한탄은 여전한 듯 싶다.
풍자는 세상사 참 비루하고 더러운 것을,
약자가 한칼에 어쩔 수 없어,
쓴웃음을 담아 우스개로 한을 푼 것이다.
위암 말기 판정 쑥골댁 아주머니.
꽃 무늬 바가지로 햇빛을 가리고,
플라스틱 바가지는 왜 샀대요?
토할때 쓸라고
변기에다 토하면...
똥통에 코박고 있다가 죽을 순 없잖여.
소나기 쏟아지자
꽃무늬 바가지 뒤집어쓰고
추녀 밑으로
그인간 술만 먹으면 변기에 토했잖녀.
아저씨 보고 싶죠. 금실 좋았잖아요.
암만, 변기에 머리 박고 토하는 것까지 찰떡궁합이지.
멈칫거리는 사이
앞산 마루, 그 인간의 무덤도
초록 물바가지를 쓰고...(궁합, 부분)
웃음이 나는데, 슬프다.
시속의 말로 웃프다.
푸른 지붕의 푸른 알약이 해외의 유머로 풍자될 때,
국정 교과서까지 등장해서 속을 뒤집어 놓는다.
이틈에 개헌론이라는 둥, 탄핵의 말미를 꼬리잡는 더러운 것들이 구역질난다.
지가 사자띠유.
사자띠도 있남?
저승사자 말유.
근데 두 팔 다 같은 날 태어났는데 왜 자꾸 왼팔만 저리댜?
왼팔에 부처를 모신 거쥬,
뭔말?
저리다면서유, 이제 절도 한채 모셨구만유, 담엔 승복입고 올게유,
예쁘게 하고 와, 자네가 내 마지막 남자니께.(~~ 독한 농담, 부분)
이정록 시를 처음 만났을 땐,
삶의 이치를 담은 이야기들을 채록한 신선함이 있었다면,
이제 슬픈 비꼬기들이 보인다.
전문가가 되노라면,
진지함을 좀 퍼내고
유머와 가벼운 농담과
실없는 주절거림 속에서 한없이 깊은 한을 품어내야 한다는데,
나는 아직도 너무 진지하고,
한에 파묻혀 가슴이 터지려고 하는 나날임을 보면,
아직 한없이 어린가보다.
그나저나 사자는 어디 갔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