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델라 자서전 -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
넬슨 만델라 지음, 김대중 옮김 / 두레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 우리 모두는, 여기 참석한 우리 모두에게... 새로 태어난 자유에 대한 찬양과 희망을 선사합니다.
너무 오랫동안 지속된 극심한 인간적 재앙의 경험으로부터 벗어나서
모든 인류가 자랑스럽게 여길 사회로 태어나야 합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땅에서 사람에 의한 다른 사람의 탄압이라는 경험이
절대로 절대로 그리고 또 절대로 재현되지 않을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인간 승리 위에 태양은 계속 비칠 것입니다.
자유가 번창하도록 합시다. 아프리카에 신의 은총이 있기를...

만델라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남긴 연설문이다. 아, 얼마나 뜨거운가.

이 책의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공짜로 책을 받았고, 그래서 책을 읽기도 전에 이벤트까지 했건만,
정작 이 책을 읽는 일은 쉽지 않았다.
우선 950쪽이란 분량도 만만하지 않고, 무엇보다 아프리카의 정치,사회적 배경에 대한 내 무지가 이유였다.

그저, 아파르트헤이트를 이겨내고 27년만에 출옥하여 대통령이 되었고, 노벨평화상을 받았다는 정도의 상식적인 지식만으로 아프리카를 만났다.

이 두꺼운 책을 덮고 책에 손을 얹어 본다.
책 속에서 들끓는 함성들이 아직도 쟁쟁하다.
그 함성의 주체는 짓눌려왔던 갈색 피부의 인류이기도 하고, 원혼이기도 하고, 아직도 진행중인 용서의 과정이기도 하다.

만델라의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 Long Walk to Freedom>은 10년 전에도 아태평화재단에서 번역된 일이 있다. 독재에 저항하다 투옥되었다가 죽음을 넘어 노벨상을 타기까지 김대중 대통령은 심정적으로 만델라에게 마음이 많이 갔을 것이다.

만델라의 인생은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그의 의식은 파란만장한 그의 삶을 따라 변화해 갔는데, 투쟁의 장면에서 쉽게 공산주의 혁명에 경도되지 않고 끝까지 민족의 자주성을 견지하는 태도는 인상깊었다. 공산주의의 최대 장점인 세계 동포주의가 역으로 가장 단점이 될 수도 있음을 그는 깨달았던 것일까? 세계 동포주의는 자칫 '부족'을 중시하는 아프리카적 전통과 대립된다면 또다른 피를 부를 것임을 그는 알았을 것이다.

아파르트헤이트의 인종 분리 정책에 저항하면서 비폭력주의에 기대었던 초기와는 달리, 결국 '민족의 창 MK'이란 무장 단체를 결성하여 기소되고 만다.

그 자신이 변호사의 신분이어서 법적으로 상당히 유연하게 대응한 면도 있고,
'이 죄수의 말이 옳다!', '기소 내용의 법적 타당성을 찾지 못했다.'는 판결을 내린 판사들도 신선해 보인다.

진보가 머뭇거리고 퇴보가 뒤따르기 마련인 수감 생활 동안 그는 끝없이 토론하고 스스로를 단련시킨다.
운동은 긴장을 해소시키고, 긴장은 평온의 적이란 그의 의견은 한국 사회에서 장기수 생활을 한 사람들과 상당 부분 통하는 듯 하다.

흑인에 대한 백인의 부당한 지배, 그리고 그 지배를 영속화하려는 인종 차별과의 지난한 싸움 와중에도,
흑인이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놓치지 않는다.
보통 '주적'이 사라지고 나면 '내부의 적', '자신이라는 적'과 싸워야 하는데,
많은 신생 독립 국가들이 여기서 붕괴되기 쉽다.(한국 정치는 아직도 여기서 길을 잃고 헤매는 거나 아닌지...)
만델라는 상당히 유연하면서도 확고한 사유를 보여주는 통찰력이 뛰어난 인물이다.

만델라의 업적 중 가장 탁월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진실과 화해 위원회>가 아니었을까?
forgivness without forgetting.
용서한다. 하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망각하지 않는 용서.
망각에 맞선 기억의 전쟁.을 표방한 진실과 화해 위원회의 활동은 아프리카 적인, 그리고 가장 남아공적인 업적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뉴른베르크의 나치 전범 재판과는 상황이 달랐던 살얼음 같은 현실을 제대로 꿰어 보았으며, 다시는 같은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진실>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용서>와 <화해>는 <진실>이 규명된 뒤라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을 덮으면서 지난 2주간 넘나들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머나먼 동쪽의 나라 한국과 오버랩된다.
로벤 섬의 감옥은 한국의 장기수들의 비참했던 실존과의 투쟁을 떠오르게 했으며,
<진실>에 대한 용서와 화해로 민족을 되찾은 그들과, <진실>을 외면하는 한국 현대사를 겹쳐 보게 하였다.

이 두꺼운 책에서 가장 나를 뜨끔하게 한 한 마디.
교도소에서 생활할 때, 재소자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법무부 장관도, 교도소장도 아닌 바로 자기 동의 간수라는 말.
학교에서 생활할 때, 학생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교육부 장관도, 교육 정책도 아닌 바로 자기 반의 담임이란 말로 내 가슴에 가시가 되어 남았다.

아, 한국에서 현대사를 읽는다는 일은 수많은 <거짓>과 만나는 일이다.
수많은 거짓들이 <진실>과 섞여 썩어가고 있어서, <거짓>이 진실 행세를 하는 일도 많지 않은가.
과거사 진실 규명을 위한 노력이 이제 시작단계에 있지만, <거짓>이 이미 <진실>이 되어버린 시대에, 그리고 과거사의 진실을 규명하려는 철학과 의지가 박약한 정권 아래서 <국민적 화해>와 <용서>의 그날은 아직도 요원하기만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밝지만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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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6-04-17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찬란한 아침 햇살에 거짓의 안개가 걷어지기를..
그러기 위해선 우리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기를..

진주 2006-04-17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 책의 마지막장을 덮은 따끈따끈한 감동이 실린 리뷰네요.
이책 보내자면 서운하시겠어요^^

글샘 2006-04-17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님... 안개라면 아침 햇살에 걷히겠지만, 저놈의 황사는 걷히지도 않고 심해지기만... ㅋㄹ콜록... 네.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 인간을 아는 일... 나 자신을 알라고 하신 선현들의 말씀을 되새길 때입니다.
진주님... 서운하다기보다는 좀 시원한걸요. 어차피 놔둬도 두번 읽긴 힘든 책일 듯.ㅋㅋ 제가 두 번 이상 읽은 책은... 성경책(군대 있을 때 세 번 정도 읽었음), 어린 왕자, 그리고 읽었단 사실을 잊고 두 번 읽은 책 몇 종류... 그렇군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