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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경 김수환 이야기
평화신문 엮음 / 평화방송.평화신문 / 200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런 책들을 만나면, 한편 반가우면서 한편 가슴이 뜨끔하다.
먼젓번에 리영희 선생님의 대화편을 읽으면서,
이제 삶을 정리하는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담담하게 읽은 적이 있는데,
이 책도 마찬가지 심사를 정리한 책인 것 같다.
난 가톨릭 신자도 아니지만, 김수환 추기경의 행적은 내 대학 시절 이후 관심을 두었던 관계로 관심이 많았다.
이 책은 그렇다고 추기경님의 역사에 대한 철학이나 소신을 밝힌 책도 아니다.
그저 담담하게 추기경님의 인생 역정을 구술하신 책이다.
시종 하느님의 뜻을 펼치는 목회자로서의 <나>를 살피시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나라가 어디로 가는지 몰라 답답한 시점에서 꼭 필요한 예언자적 목소리를 냈다."는 평가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종교인은 종교에나 머물지, 왜 정치에 끼어드느냐는 비난에, "종교나 교회는 사회에서 빛과 소금 역할을 다해 주길 바라고 있고, 개기인의 마음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어둠도 밝혀 줌으로써 사회를 도덕과 윤리로 정화시켜 주길 원하고 있다. 사회가 윤리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부정부패로 썩어 가는데도 교회가 수수방관한다면 그것은 직무 유기다. 국민 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정치, 경제가 윤리 도덕의 범주 밖에 있다곤 말할 수 없다."는 대답은 적절하고 정확한 대답이 아닐까? 성직자라고 해서 세상에서 한 걸음 떨어진 하느님 세계만 쳐다보는, 아니 오히려 썩은 정치에 기름을 들이 붓는 근본주의자들에게 반성의 창을 들이대는 한 마디다.
상품은 공장에 들어가 값진 물건이 되어 나오지만, 인간은 공장에 들어가 폐품이 되어 나오던 70년대의 노동 현실을 외면하지 못하고 적극 개입했던 회고담은 인간 김수환의 면모를 잘 볼 수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독재자는 개발이라는 상품으로 국민을 현혹하여 농촌과 노동자를 압살하던 시절, 노동 조합 운동은 곧 빨갱이로 치부되던 위험하던 시절을 살아온 한국인들에게 그분은 큰 버팀목이셨다.
독재자들과의 만남을 통한 스케치는 시대와 역사를 아울러 볼 수 있어 재미있다.
가장 인상적인 사진은, 공주 박모양과 추기경님이 악수하는 장면인데, 그 공주가 현실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는 꼴을 보면 실소를 머금게 된다.
데레사 수녀님과의 추억 중, 이런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하늘에는 별이 많아서 아름답습니다.
들판도 꽃이 많이 필 때 아름답습니다.
인간 세상에도 어린이가 많을 때 아름답습니다.
하늘에 별이 많다고,
들에 꽃이 많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인간은 왜 어린 생명이 우리 삶을 더 어렵게 만든다고 불평하면서 낙태를 합니까?"
가톨릭 최고의 권력인 서울대교구 교구장이자 추기경이셨던 그 분이 살아온 역정은
철부지 청소년 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의 종으로 써 달라는 일념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분의 종소리를 뎅그렁, 뎅그렁 듣는 순간만이라도 조금 정화되는 마음을 얻게 됨을 기뻐하며,
예수님의 목소리 만큼이나 명징한 추기경님의 말씀을 고맙게 듣는다.
조만간 성경을 읽어야 겠단 생각이 많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