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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을 훔치다 - 김수남이 만난 한국의 예인들
김수남 지음 / 디새집(열림원)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김수남은 사진 기자다. 그렇지만 이 사진 작가가 찍은 것은 아름다운 풍경도, 아름다운 여인이나 아이들의 모습도 아니다. 그가 찍은 사진에 그렇다고 쭈글쭈글한 주름살이 담긴 민중의 모습이 담긴 것도 아니다.
그의 사진에는 이미 사라져 버린, 그렇지만 아직도 끈끈하게 우리 혈액 속에 존재하는 그 무엇에 대한 생각들이 남아있다.
일본놈들이 작정을 하고 파괴해버린 우리 민속을 사진에 담는 작업을 끈질기게 해 온 사람이다.
일본놈들은 우리의 춤과 노래를 술집 기생들의 그것으로 만들어 버렸고, 우리는 급기야 문화 단절론을 이야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일제와 친미적 성향을 띤 근대와 독재의 억압을 이기고 끈질기게 이어져 온 것들이 조금씩 관심을 되찾고 있다. 한의학이 그렇고(대체 의학이란 이름으로 서양에서도 인기란다.), 판소리가 그렇고, 전통 음악과 무용이 그렇다.
그러나 수천년간 굿을 하고 신내림을 받던 무당들은 엄연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미신 타파란 이름으로 억압받아왔고, 지금도 무시당하며 살기 일쑤다.
그 무당들의 춤사위를 사진으로 찍고 동영상으로 남기며, 그 대사를 채록하고, 책으로 남겼던 이들이 또다시 얼마 남지 않았다.
굿판을 지키던 이들, 판소리의 계승자들, 병신춤으로 유명한 공옥진, 범패, 춤꾼, 가야금 산조, 밀양 양반춤...
80년대 저항 예술의 선두에서 노동 운동과 궤를 같이했던 풍물놀이와 탈춤은, 그야말로 낮은 사회적 지위를 내던지고 해방의 몸짓으로 뛰고 돌고 노래하고 춤추던 민중의 역사 그대로였다.
그 속엔 현대인들이 기립 박수를 보내 마지않는 무용과 체조와 기예(서커스)와 노래, 춤, 재주, 연기가 총화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 예술 속에서는 현대 예술에서 볼 수 없는 신성한 신들의 이야기와 조상들의 현명한 지혜가 <한풀이와 신명 풀이>의 마당으로 내려와 있었던 것이다.
당장의 이익을 위하여 억압했던 옛것을 아직도 현대인들은 소중한 줄 모른다. 그것도 진품명품에나 나와서 몇 억씩 값을 매겨 대어야 좋은 것인 줄 안다. 흑백 사진이 담긴 책으로 만이라도 그 세계를 짚어 낼 수 있는 일은 김수남처럼 땀방울로 역사를 훑으며 다니는 이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는 것이다.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