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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 알리,죽지마 - 이라크 전쟁의 기록
오수연 지음 / 향연 / 2004년 3월
평점 :
Thank you, I'm sorry. 이 두 마디는 어느 나라 언어에나 등장한다고 하고, 또 이 말들처럼 다른 상황에서 쓰일 수 있는 말도 없다고 한다.
인샬라... 이 말도 마찬가지일게다. 인사이면서도 축복이기도 하고, 여러 상황에 두루 쓰이는 말... 그 뜻은 신이 허락하신다면... 이런 뜻이란다.
기름을 입으로 빨아 넣어서 주유를 하는 남자들, 그 정도로 기름의 축복을 받은 열사의 나라, 이라크.
그 기름의 축복 뒤에 흐르는 강대국의 욕심에 의해 폐허가 되어 버린 나라, 이라크.
그 나라를 취재하러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파견한 오수연이란 작가가 남긴 기록이다.
전쟁을 직접 취재하거나 평화활동을 하지는 못했고, 전쟁중에는 이스라엘에 핍박받는 팔레스타인을 돌아 보았고, 종전 이후 이라크의 파괴상을 보게 되었다.
전쟁은 결국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었다.
우리가 아라비안 나이트에서나 듣던 바그다드와 오아시스의 이야기들. 그 신비스런 요술 램프가 등장하던 알라딘의 터전도 바로 이곳 아니었던가.
사담 후세인의 폭력적인 독재 세력을 미군이 궤멸시킨 지금, 이제 그들은 세계 최강대국 미국과 맞서야 한다. 미국의 국익을 위한 전투에서, 1차적인 적을 몰아낸 그들은 이제 본격적으로 2차적인 적과 대결 구도로 맞서 있는 것이다.
그 폭력과 비참한 현장에서, 우리 나라는, <우리의 국익>이란 증명되지 않은 이름으로 <파병>을 결정했다. 그 우리의 국익은 결국 가진자들의 이익일 따름이지, 결코 우리 나라 모든 사람 하나하나에게 이익이 될 것이 아님은 불 보듯 뻔한 일인데, 우리 나라의 이름으로 최고의 지원군을 보냈다. 쪽팔리는 <우리 나라>다.
우리 나라가 '이란'에게 꼭 이겨야만 했을까? 난 어제 축구를 보면서 많이 불안했다.
물론 우리 축구가 남들에게 매번 박살 나는 것이 통쾌한 것도 아니다. 우리 축구가 패스가 잘 연결되고 골도 잘 터지면 보는 재미가 난다.
그런데, 우리는 마치 <성전>을 치르는 듯이 이란이라는 <적군>을 상대로 <총력전>을 벌이는 <군대>처럼 보였다. <전투>에 이기기 위해서는 그 <사령관>이 외국인이어도 상관 없이 말이다. 이란을 <정벌>한 다음 유럽으로 <원정>을 떠나는 사람들이 스포츠 선수인가, 군인인가...
우리 나라 스포츠 신문의 용어는 너무 <전쟁광적>이다. <이란>호가 <침몰> 내지는 <격추>되고, <대한민국>호는 <승전보>를 알린다.
하필이면 이란이라는 나라와 축구하는 경기를 지켜보면서, 나는 미군과 똑같은 군복을 입고 <자이툰>인지 <우익툰>인지 하는 군인들을 꾸역꾸역 서역으로 져다 나르는 <대한 민국>이란 피폐한 나라에서 <독립>하고 싶은 생각이 자꾸 든다.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전쟁 이후의 모습들이 기록된 책이다. 군대를 따라다닌 기록이 아니므로 종군 기자라고 할 수는 없고,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쓰여진 책이다.
세계는 하나로 이어져 있다. 남을 이기는 나, 너희 나라를 죽이는 우리 나라를 만들어서는 꿈틀거리는 지구의 용서를 받지 못할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