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으로 읽는 금강경
김태완 지음 / 고요아침 / 2004년 4월
평점 :
절판


한 일주일을 이 책 하나에 푹 빠져 살았다. 칠백 페이지짜리 책이니깐, 읽기로 들자면 2,3일이면 다 읽을 법도 하지만, 속도를 내는 것만이 독서는 아닌 법이다. 내 맘이 천천히 가라고 시켜서 천천히 읽었을 따름이다.

도서실에서 빌려올 때만 해도, 맘 단단히 먹고, 경전 공부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책을 펴 보니깐, 이건 경전 공부가 아니었다. 금강경 이야기이긴 한데, 강의를 글로 적어 놓은 것이라서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었다.

요즘 아이들이 만화로 고전을 만나는 것만 부러워하던 나로서는, 이런 책을 만나게 된 현대에 살게 된 것이 고맙기만 하다. 예전 불친절하던 스님들에 비하면, 이런 말랑말랑한 책을 만난 건 큰 행운이 아닌가 말이다. 불친절하던 스님들의 '자, 똥막대기다."하던 가르침에 비하면...

그러나, 난 예전의 방식이 그리울 때가 간혹 있다. "이런, 호랑말코 같은 놈들..."하면서 눈을 부라리시던 선생님들 앞에서 덩치 커다란 70명의 머시매들은 기가 푹 죽어서, 거짓말이라도 선생님이 말씀하시면 곧이곧대론 믿던 그 순수의 시절 말이다. 물론 그 폭력과 험악하던 분위기는 증오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 계속 들리고, 경험되는 모든 것을 따라 다니지 마라, 말과 생각을 따라 다니지 마라... 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지만, 내가 살아온 지난 사십 년은 말과 생각을 따라 다녔던 세월이 아니었던가. 남들이 좋다는 것, 남들이 다 바라는 것을 얻기 위해 살았던 삶. 그것이 한 움큼의 가치도 없을지라도, 아둥바둥 아침형 인간이 살아남는다는 생존의 법칙에 얽매인 중생의 삶을...

공부를 바로 하면 금강경을 버려야 한다. 부처님이 계시고 중생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있고 남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곧 남이고, 내가 곧 부처이기 때문에,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금강경을 만나면 금강경을 죽여야 한다.

뗏목은 강을 건너는 방편일 뿐이지, 삶의 목적은 아니듯이, 부처님을 만나는 것이 우리 삶의 목적이 아니라 그것은 방편일 따름이다. 금강경은 그런 역설의 경전이다. 오로지 진실을 받아들여 <참된 나>를 발견하기 위한 수행의 길을 제시하는 이 경전에서는 달을 가리키는 부처님의 손가락만 쳐다보아서는 달을 알 수 없음을 깨우치기 위해 계속 반복된 역설을 제시한다.

몰록의 순간, 계합이 일어나는 돈오(頓悟)를 경험하고 나면 보림(保任)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나같이 흐리멍텅한 정신으로 하루 하루를 겨우 넘기는 중생으로선 감히 넘볼 수 없는 경지다.

그러나, 머리로 받아들이지 말고, 날마다 날마다 듣고 받아들이려고 한다면, 그 순간이 온다는 저자의 말을 믿고 그저, 하루하루 살아 보자...

나를 버려야 나를 만나는 길에서, 참된 나를 만나고자 하는 발걸음을 놓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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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5-03-28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적고 보니, 이 책으로 사백 권의 리뷰를 적었다.
숫자에 집착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지만,
8월이 다 가기 전에 오백 권 리뷰를 적는 걸 작은 목표로 적어 본다.
백오십 일 간, 백 권을 읽는 것은,
그 만큼 정신을 놓고 보내는 날을 경계하기 위함이다.

혜덕화 2005-03-28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난주엔 금강경을 읽으며 보냈는데......
머무는바 없이 마음을 내라는 말씀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풀이했는지, 시간나면 이 책도 읽어보고 싶네요.

파란여우 2005-03-28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백권..저에겐 상상할 수 없는 피안의 이국땅의 기찬 이야깁니다.^^

글샘 2005-03-29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덕화님... 같이 같은 책을 읽으셨다니 고맙습니다. 그저...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는 것. 한 번 읽어 보세요. 좋은 책입이다. 저는 금강경을 처음 만났지만, 이 책을 만난 것을 감사드립니다.
여우님... 오백권... 그 말에 붙잡히시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저는 그저 오백권이라고 썼는데요... 그저 오백권일 뿐이란 건, 전에 혜덕화님께서 그저 삼천배라고 하신 말씀의 표절일 따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