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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짓는 발걸음 - 틱낫한의 걷기 명상
틱낫한 지음, 권도희 옮김 / 열림원 / 2003년 3월
평점 :
품절
명상이라 하면, 대부분의 책에서 식구들이 일어나기 전의 고요한 시간에, 혼자 조용한 장소에 앉아 일정 시간 마음을 가다듬는 것을 의미하는데, 틱낫한 스님의 경우 걷기 명상에 의미를 많이 두시는 것 같다.
걷는 다는 것은, 인간이 별 의미없이 하루에도 수천에서 만보 이상을 행하는 단순 동작이지만, 그것을 수행에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목적지가 삼분 걸리는 거리라면 십분 일찍 가서 넉넉한 걷기 수행을 하라는 것이다. 마음의 평화란 자신이 인식하고 있을 때만 찾아올 수 있는 것.
내가 아프면 손끝 조금 갈라진 것으로도, 코막힘으로도, 가벼운 배탈 정도로도 멀쩡한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다. 내 몸의 순환을 각성하지 못하고, 그저 세상 살기가 힘들다고만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기 쉬운 게 나라는 인간이다. 그러나, 내 몸을 곰곰 생각하면서 호흡에 임하면, 내 몸 어디에도 상처가 없음이, 자유자재로 호흡할 수 있음에, 배고플 정도로 위장이 튼튼함에 감사를 느끼게 된다.
마음을 꽃처럼 아름답게, 산처럼 진중하게, 물처럼 자유자재하게 호흡과 더불어 가꾸어 나가는 법을 걷기 명상과 함께 실천하는 것은 시끄러운 뮤직박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헬스클럽에서 런닝머신을 돌려대는 것과는 다른 의미를 가질 것이다. 물론 건강을 위해 활력이 넘치는 음악을 들으며 흠뻑 땀을 흘리는 것도 건강에 좋은 것이겠지만, 신체와 정신은 떨어진 별개가 아니기 때문에, 걷기 명상의 의미도 나름대로 큰 뜻을 지닐 수 있다.
가장 살기 좋은 나라라는 프랑스에 정신과 의사가 가장 많다는 아이러니처럼, 스님은 프랑스에서 자두 마을을 운영하고 있다. 자두 마을에 줄을 서서 죽 걷고있는 서양인들을 보면, 한편 배부른 고민인 듯도 싶지만, 그렇게 무더기지어서 무슨 명상이 될까 싶기도 하다. 하긴 우리처럼 죽자사자 산에 오르는 등산 인구가 많은 나라도 찾아보기 쉽지는 않을 터이지만... 스님의 의도대로 천천히, 기쁘게, 편안하게 걷는 걸음에서 화를 다스리고, 자신의 존재를 늘 감사하게 긍정하는 방법은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나에게 핑계를 불식시키는 한편으론 두려운 깨우침이기도 하다.
몸에 나쁘다는 고기를 잔뜩 먹고, 몸에 나쁘다는 술을 잔뜩 마시고, 몸에 나쁘다는 남의 욕을 잔뜩 하고, 몸에 나쁘다는 소유욕으로 철철 넘치는 모자라는 나에게, 걸음의 의미는 쉽지만 쉽지 않다.
삶의 역사적 차원(생과 사, 시작과 끝 등)과 궁극적 차원(이 모든 것들이 그저 관념에 지나지 않음을 명백히 알게 되는 차원)이 있음을 깨닫는 경지까지 다다르진 못하더라도, 내 눈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음을, 자유로이 숨쉬고 있음을, 수족을 자유로이 놀리고, 병들지 않은 육신임을 순간순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신 스님께 감사드린다.
이 책은 간단간단한 지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져서, 걷기 명상을 실천하고자 할 때, 가벼이 접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책에 비해서, 걷기 명상을 하는 다양한 자세와 방향들을 제시하고 있어서, 미소짓는 발걸음의 도반이 될 만한 책이라 할 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