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물의 연인들
김선우 지음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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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그의 시집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의 사랑 이야기가,

이명처럼 들려오는 귀를 쩡쩡 울리는 '강 살리기'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강 죽이기'에 대한 사고들과

얼키고 설켜 하나의 구조물이 되어 나타난 이야기다.

 

소설을 '허구'라고 한다.

영어의 'fiction'이 지어낸 이야기~란 뜻이라는데,

한자어 '허구'에 담긴 의미가 더 그럴 듯하다.

암튼, 소설은 하나의 '구조물, 구성품'인 것인데, 그 구조물이 얼기설기 엮인 재료는 언어인 것은 같지만,

그 언어들이 지어내는 형상은 작가의 생각에 따라 다르다.

 

김선우의 글들 중 가장 빼어난 것은 시이며, 다음은 수필이다.

그의 소설은... 아쉬움을 가득 안고 있다.

강물 이야기가 너무 작위적으로 구조물에서 두드러져 보이고,

또, 이야기를 얽어매는 데 엉성하다.

'개연성'이 없다고 할 수 있겠다.

 

소설 속 인물들이 정말 내 곁에서 살아 숨쉬는 것처럼 보여야 '형상화'에 성공하고 있는 작품인데,

김선우의 인물들은 어린 시절 만화 속에서 읽으며 느끼던,

내 상상 속의 구조물 속의 인물들처럼 느껴져 다소 실감이 떨어진다.

 

그러나, 이 소설은 나에게 어떤 점에서 아주 의미있는 책이었다.

 

버려진 기억이 있는 사람들은 사랑이 어려워요.

사랑해도 사랑한다 말 못하기 일쑤죠.

버려졌던 사람들은, 뭐 전부 그런 건 아니겠지만,

아무튼 저는, 그래서 더욱더, 동정받는 게 싫어요.

그냥 대등하게 이해해 주는 거, 그거면 충분해요.(223)

 

해울이 한 이 말은 내 소중한 친구가 했던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해울에게 수린이 던진 이 말은 내가 그 친구에게 건넨 이야기이기도 했다.

 

다섯 살짜리였던 수린이,

눈물이 가득 고인 채로, 내게 다가와서, 내 얼굴에 손을 내밀어 내 뺨을 만졌어요.

"아파?"라고 묻더군요.

처음 보는 나를, 안타까워하면서 "아파?"라고 묻는 수린의 마음엔 동정같은 게 없었어요.

아프냐고, 진심으로. 그냥 묻는 거였어요.

아프지 말라고, 진심으로. 단지 그 마음만으로, 절실하고, 따뜻하게...(223)

 

이 페이지를 읽는 것 만으로도, 그 친구와 내가 충분히 공감했던 이야기가 떠올라,

마음이 저리기도 하고 따뜻해지기도 한 부분이었다.

 

 

 

                                   <여주강 이포의 일출>

 

작품에 등장하는 Y강과 은륵사는 '여주강'과 '신륵사'를 떠오르게 하는 지명들이었다.

와이강, 은륵사로 바꾼 것은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토막나고 파헤쳐지고 적출되는 와이강이 유경의 머릿속에서 유린, 구타, 강간, 폭행, 모멸, 증오, 살인 같은 단어들을 마구 끄집어 내고 있다.(129)

 

이런 부분은 소설로 보기엔 지나치게 생경하다. 많이 아쉽다.

 

셀 수도 없이 많은 무언가를 죽이고 다니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살았다.(106)

 

생명을 노래하는 시인 김선우기에 이런 구절이 등장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아무래도 시에서 뜬금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구절들이 소설에서 긴밀하지 못하게 널브러져 있는 걸 보는 일은 아쉽다.

 

모친과 부친의 결혼과 가정폭력, 도피와 살인, 자살... 로 이어지는 유경의 가족력은

물의 연인들이 추구하는 '달콤한 사랑'과 '쓰라린 작별'의 이야기와 덜그럭거리면서 겉도는 느낌이다.

이야기의 매력적인 소재들이 필연성을 갖지 못할 때, 독자는 집중하기 힘들어진다.

 

사랑한다고 여겨 관계를 맺은 어떤 남자에게서도 결코 느끼지 못한 감정이 유경을 뒤흔들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몸 전체가 성감대가 되는 것 같았다.

'꽃이 성기'라는 닳고 닳은 말을 빌리자면 온 몸이 꽃이 되고 있는 느낌.

자신의 온몸이 꽃이 되어 그를 향해 페로몬을 풍기고 있는 듯한 그런 느낌이 전혀 수치스럽지 않았다.(33)

 

이렇게 시작되는 사랑 이야기를 제대로 이끌고 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자기를 버리고 상대방에게 투항하는 마음.

그래서 수치스러움이나 부끄러움 따위 서로 갖춰 챙길 필요 없는 마음 말이다.

 

거긴 더러운데.

세상에! 무슨 소리야, 여기가 왜 더러워?(138)

 

사랑하면, 더러운 것 하나 없다.

그게 사랑이다.

 

사랑에 대하여...

어떤 앎은 그런 식으로도 오는 것이다.

 

 

 

 

이해가 안 갔던 부분~~~

 

242. 조난당하며 깨진 쇄골이 심장을 찌르고 들어간 것... 글쎄, 의학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늑골의 착오지 싶다. 목 부분의 쇄골이 심장을 찌르려면... ㅠㅜ 상상력이 부족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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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12-03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주강과 신륵사를 찾아봐야겠어요. 일줄이 장관이네요. 물의연인들,은 패스하기로 마음 굳힙니다. 글샘님의 리뷰로요. ^^ 이해 안 갔던 부분은 저도 그러네요. 쇄골이 부러지면서 심장을 ᆢ그런 예가 실제 있었을까요?

글샘 2012-12-04 11:46   좋아요 0 | URL
여주엔 세종의 '영릉'이 있구요. 신륵사 주변의 강물에서 오리배 타는 맛이 좋았는데요.
사진 찾아보니 참 엉망으로 파헤치고 있더군요.
이 벌은 누가 받을 건지... 큰일입니다. ㅠㅜ

꼬꼬마 2012-12-04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우작가님 '물의연인들'로 한해 감사하고싶은 분들 성탄절 선물하려고 알라딘 들어왔다가 글샘님 리뷰 보고 몇자 적습니다. 정말이지 문학작품은 독자 나름마다 취향이 다 다른듯~^^ 저는 세번이나 울면서 본 소설이거든요. 근래에 소설 읽으면서 울어본 적이 없어서 당황하고 신기하고 그랬죠. 흡인력 짱짱하고 무엇보다 선우님 시의 느낌이 파닥파닥 살아있으면서 서사 스케일이 넓고 세밀하고 아프고... 저는 유경에게 어찌나 동화되었는지, 유선생이라는 인물이 너무 미워질 정도로...^^ (유선생은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덜그럭거리는 인물이었어요. 이 인물은 분명 미스였다는 생각이 지금도...;;) 시와 수필이야 말할것도 없지만, 개인적으로 선우님의 소설 중에선 첫소설 '나는 춤이다'를 좋아하는데, 이번 작품은 두말할 것 없이 그 이상이었어요. 유경과 연우, 유경과 한지숙, 수린과 해울, 당골네와 무위암까지 인물구도도 정말 좋았구요. 개인적으로는 근래 나온 한국소설들 중 최고 소장 목록에 킵합니다. 알라딘에서 놀땐 글샘님 문학수업을 가끔 눈팅하는데, 저와 너무 다른 감상이라 몇자 적어봅니다~^^

글샘 2012-12-04 21:59   좋아요 0 | URL
저도 김선우 시인의 팬입니다. ^^
뭐, 소설을 보는 감상 관점이야 다를 수도 있는 거구요. ㅋ~
암튼 김선우의 시집이 빨리 나놨음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