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파란 세이버 1 - 날고 싶은 소년의 자전거 성장 드라마
박흥용 글.그림 / 바다출판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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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태를 겪는 곤충들만 애벌레에서 성충이 되기까지 번데기를 겪는 건 아니다.

인간도 온갖 보호를 겪는 어린아이에서 성인이 되기까지 많은 도전과 난관을 나름 통과하게 되어있다.

그런 통과 의식을 통하여, 사회에 적응하기도 하고,

때로는 저항하기도 하며, 좌절하기도 하고, 순응하게도 되는 것이다.

 

윤오영의 '양잠설'에는 누에가 구각을 탈피하고 자라가는 과정을 잘 묘사하고 있다.

윤오영은 글쓰기의 성장을 양잠에 비유하려 든 이야기지만,

이 멋진 만화를 읽으면서 내내, 내 머릿속에선 양잠설의 그 '비오는 소리'가 그치지 않고 들렸다.

 

 <윤오영, 양잠설 첫 부분>

 

어느 촌 농가에서 하루 저녁 잔 적이 있었다. 달은 훤히 밝은데, 어디서 비오는 소리가 들린다.

주인더러 물었더니 옆 방에서 누에가 풀 먹는 소리였었다.

여러 누에가 어석어석 다투어서 풀잎 먹는 소리가 마치 비오는 소리 같았다.

식욕이 왕성한 까닭이었다. 이때 뽕을 충분히 공급해 주어야 한다.

 

며칠을 먹고 나면 누에 체내에 지방질이 충만해서 피부가 긴장되고 윤택하며 엿빛을 띠게 된다. 그때부터 식욕이 감퇴된다.

이것을 최안기(催眼期)라고 한다.

그러다가 아주 단식을 해버린다. 그러고는 실을 토해서 제 몸을 고정시키고 고개만 들고 잔다.

이것을 누에가 한잠 잔다고 한다.

얼마 후에 탈피를 하고 고개를 든다. 이것을 기잠(起蠶)[1]이라고 한다.

이때에 누에의 체질은 극도로 쇠약해서 보호에 특별히 주의를 해야 한다.

다시 뽕을 먹기 시작한다. 초잠 때와 같다. 똑같은 과정을 되풀이해서 최안, 탈피, 기잠이 된다.

이것을 일령 이령(一齡二齡) 혹은 한잠 두잠 잤다고 한다.

오령이 되면 집을 짓고 집 속에 들어 앉는다.

성가(成家)된 것을 고치라고 한다.

이것이 공판장(共販場)에 가서 특등, 일등, 이등, 삼등, 등외품으로 평가된다.

[1] 기잠(起蠶) : 외피를 갓 벗은 누에 새끼.

 

"그 사람 재주는 비상한데, 밑천이 없어서."
뽕을 덜 먹었다는 말이다. 독서의 부족을 말함이다.

"그 사람 아는 것은 많은데, 재주가 모자라."
잠을 덜 잤다는 말이다. 사색의 부족과 비판 정리가 안 된 것을 말한다.

"그 사람 읽기는 많이 읽었는데, 어딘가 부족해."
뽕을 한 번만 먹었다는 말이다. 독서기가 일회에 그쳤다는 이야기다.

"학식과 재질이 다 충분한데 그릇이 작아."
사령(四齡)까지 가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그 사람 아직 글 때를 못 벗은 것 같애."
오령기(五齡期)를 못 채웠다는 말이다. 자기를 세우지 못한 것이다.

"그 사람 참 꾸준한 노력이야, 대 원로지. 그런데 별 수 없을 것 같아."
병든 누에다. 집 못 짓는 쭈구렁 방송이다.

"그 사람이야 대가(大家)지, 훌륭한 문장인데, 경지가 높지 못해."
고치를 못 지었다는 말이다. 일가(一家)를 완성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양잠가에게서 문장론을 배웠다.

 

성장 과정에서 어느 시기엔가 빈 칸 내지 성긴 칸이 있으면, 반드시 그 결과가 엉성하게 드러난다.

그런 것을 탐구한 자가 프로이트이며, 융 같은 사람들이다. 개인적 문제인지, 공동체의 문제인지를 차별두고는...

 

그렇지만, 또 생각해 보면,

아프지 않고 성장하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더군다나 꿈을 가진 어린 시절, 성장하면서 그 꿈이 자기에게서 멀어져만 가는 경험을 하게되는 쌕쌕이의 이야기는,

자전거의 페달을 밟는 정직한 육체 운동의 '힘'과,

끌어주고 지지해주는 선배와 친구의 '힘'과,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 같은 거리감을 이겨내는 의지의 '힘'과,

때론 자기가 선 자리에서 나름의 지혜를 모색해야 한다는 지혜의 '힘'이 성장기에 어떻게 땀방울로 열매맺는지를 들려준다.

 

자전거라는 흔치 않는 소재를 탐구하는 일도 재미있고,

인류가 만들어온 '오래된 미래'로서 인간의 에너지를 원동력으로 씽씽 바람을 가르며 달릴 수 있는 자전거의 매력을

가슴이 아슴아슴한 사랑 이야기와 함께 그려내는

성장 만화의 백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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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2-11-16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참 재미있게 봤는데요. 쌕쌕이...ㅎㅎ

글샘 2012-11-18 21:06   좋아요 0 | URL
재밌죠. 그림도 이쁘구요. ㅋ~

페크pek0501 2012-11-18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사람 참 꾸준한 노력이야, 대 원로지. 그런데 별 수 없을 것 같아."
병든 누에다. 집 못 짓는 쭈구렁 방송이다.

- 하하하 웃습니다. ^^ 영양가 있는 리뷰를 잘 보고 갑니다.

글샘 2012-11-18 21:07   좋아요 0 | URL
리뷰가 영양가 있는 게 아니라, 윤오영 선생님 수필이 영양 만점이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