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카르페디엠 31
구드룬 파우제방 지음, 이유림 옮김 / 양철북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첫사랑 이야기는 한없이 많지만,

역시 낭만주의 시대, 질풍 노도와 같은 사랑의 감정을 드러내기로는,

투르게네프의 '첫사랑'만한 것이 없다.

그 시대의 사랑 이야기를 지금 읽어 보면,

귀족 문화의 껍데기에 둘러싸인 형식이 버성기곤 하지만,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에서 표현된 블라지미르의 지나이드를 향한 마음만한 절절함도 만나기 힘들다.

 

<투르게네프>의 <첫사랑> 줄거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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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표지부터가 확 끌리는 작품이다. 저 그림속의 여인이 바로 이 작품의 여자 주인공 ’지나이다’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세련되고 우아하고 매력적인 자태에 새침떼기 같은 행동과 어투 때로는 도발적이기도 한 그런 여인.. 만약 이런 여인을 눈앞에서 만난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도 다 큰 성인이 아닌 성인과 소년의 경계에 선 갓 청년기에 접어든 질풍노도의 시기의 16세(우리나이로 18세) 소년이 이런 그녀를 보게된다면 그것은 충격파로 다가 올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 그런 소년의 폭풍우같이 몰아친 사랑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 있으니 바로 잊혀진 러시아의 대문호 ’이반 투르게네프’의 대표작 ’첫사랑’이다. 우선 줄거리를 살펴보면 이렇다. 먼저, 이야기의 서막은 어느 세 남자가 자신의 첫사랑을 이야기 해보자는 제의에 마지막 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 라는 중년 남자가 자신의 첫사랑은 전혀 평범하지 않았다며 젊은 날을 회상하며 시작된다.

여기 어느 부족하지도 충족하지도 않은 한 가족이 주말 교외 농장에서 지내고 있다. 하지만 이들 가족의 관계는 그리 좋지 않다. 특히 부부인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는 소원했고 아들은 두 부모에게 말을 잘 듣는 그런 착한 아들이었다. 특히 이런 아들눈에 비친 아버지는 언제나 침착하고 우아한 모습의 카리스마로 그가 꿈꿔온 이상적 남성상이었다. 그런데, 이런 가족에게 어느날 이웃으로 몰락한 자세킨 공작 부인과 그녀의 딸 ’지나이다’가 옆집에 자리를 잡는다.

하지만 그 공작부인은 소위 교양 머리 하나없이 잡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러나 그녀의 딸은 다르다. 현대식으로 보면 엣지있고 세련됐으며 때로는 우아한 백치미까지 그녀는 한마디로 여신이다. 그래서 그녀를 추종하는 다섯 남자가 그녀 주위를 항상 둘러싸 돌보기도 하고 같이 게임도 하며 놀아주는등 마치 여왕을 모시는 몸종 신하들 같다. 여기 주인공 열여섯 소년 ’볼로댜’가 이런 그녀를 봤으니 그는 그때부터 가열찬 카오스적 사랑에 빠져들고 만다. 자신보다 네살 많은 그녀에게 말이다.

그러나 ’지나이다’는 그 소년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것은 어리게만 보는것도 있지만 그녀는 갓 청년기에 들어선 소년 볼로댜를 때로는 유혹도 하면서 갖고 놀기도 하고 나중에는 ’시동’으로까지 부리는듯 그녀만의 아름답고 오만한 매력의 발산은 계속 이어진다. 위의 추종자들과 함께 말이다. 이런 그림들은 소년의 눈을 통해서 섬세한 심리 묘사적 문체로 전달되고 그런 분위기는 마치 터질것만 같은 소년의 감정선으로 표출이 곳곳이 되었다. 이렇게 한 소년이 한 여인을 통해서 첫사랑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간단한 서사적 구조다.

하지만 그 첫사랑의 그림속에 추종자들이 때로는 적이 되거나 동지로 돌변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바로 아버지가 그의 적이자 동지로 나온다. 그렇다. 바로 여주인공 ’지나이다’는 소년의 아버지와 밀회를 나눈 것이다. 그것을 목도한 소년에게는 충격파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소년은 그런 아버지를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다가온 첫사랑의 셀렘과 열정 이렇게 고통으로 다가온 가슴앓이는 자신이 이상적인 남성상으로 바라본 아버지를 통해서 투영시켰기 때문이다.

이런 그림은 마치 92년작 영화 <데미지>에서 ’제레미 아이언스’가 극중 아들의 연인 ’줄리엣 비노쉬’와 격하게 사랑하는 씬이 생각나는 순간이다. 물론 그것과 여기의 설정은 다르지만 느낌은 많이 닮았다. 그래서 고전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본 작품은 보통 우리가 첫사랑에 갖고 있는 일종의 환상적 그림들 깨끗하고, 신선하고 순수함의 결정체 뿐만 아니라 성인의 사랑으로 대비되는 질투와 욕망, 소유욕과 이기심등 고통과 쾌락이 함께하는 유희적 사랑이자 정염으로도 그려냈다.

그런 첫사랑의 모습은 소년이 극복해 나가는 지적이고 이성적인 성숙 과정으로 그려내며 그 과정에는 소년의 아버지를 동참시켰다. 즉, 소년의 아버지는 바로 자기의 분신이자 남성성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불현듯 찾아온 첫사랑의 알싸한 추억들은 봄날 따스한 아침의 뇌우처럼 임팩트 강하게 남았으니 작가 ’이반 투르게네프’ 자신의 어린시절 전기적 트라우마가 자리잡으며 표출되었고, 그것은 그만의 자유분방한 산문적 필체의 디테일한 심리 묘사등을 통해서 미학적으로 잘 그려내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첫사랑의 고전이 된 작품이었다. 

<텍스터>의 독후감 중에서...

http://bookstory.kr/04_review/review2_board_view.php?id=texter&no=6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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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첫사랑 역시 불같이 온다.

첫사랑은 늘 벼락같이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예기치 않은 관계에서 들이닥친다.

 

독일 소녀 한니네 집에 프랑스 포로가 한 명 배당된다.

그 포로 청년은 음악대학을 다니던 학생 출신으로 한니네 가정에서 심부름을 하며 아이들과 잘 지낸다.

 

하루에 적어도 삼십 분 손가락 체조를 하는 사람도 있다.

손가락을 아주 빨리 움직이는가 하면 어떤 때는 길게 어떤 때는 짧게 굽히기도 한다.

열 손가락 다 따로따로.

그 사람은 피아노 연주자가 되는 게 꿈이기에 손가락의 감각을 잃어버리지 않는 게 아주 중요하다고.(121)

 

그 사람이 바로 파리 출신 대학생 필리프다.

 

전쟁에 나간 한니의 아버지, 오빠는 모두 전사하고,

전쟁이 끝난 후, 한니는 필리프를 간절히 기다리지만...

 

금지되어 더 절실한 포로와의 사랑...

'친관' 친하여 가까워짐... 금지.

 

독일 여자가 프랑스인 전쟁 포로와 사랑에 빠진다면 이는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서 싸우는 독일 남자들에 대한 배반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72)

 

이렇게 독일의 국가주의는 국민에게 침투된다.

그러나 모성애를 지닌 사람들에겐 본질이 보이는 법.

 

"가엾어라. 저런 사람 손아귀에 들어가다니. 자기가 군복을 입고 어깨 위에 무기를 들고 있다고,

제가 맡은 사람들 목숨을 제 맘대로 할 수 있는 양 구는군.

필리프는 아직 아인데, 무슨 범죄자도 아니고.

저 애는 절대 탈출하거나 누구를 한 대 칠 생각도 못 할거야."(89)

 

모성애는 포로를 전쟁터에 나간 자기 자식과 역지사지 할 줄 아는 마음을 열어 준다.

 

"만약 우리 위르겐이 포로가 된다면, 전 누군가가 그 애를 잘 보살펴 줬으면 좋겠어요."(98)

 

한니의 사랑을 표현한 구절이 참 인상적이었다.

 

때때로 한니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전쟁이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을 잊어버린 것 같다고.

그냥 한쪽에 젖혀둔 채 휙 스쳐지나간 것만 같다고. 전쟁 전과 달라진 게 거의 없었다.

이제 식료품이나 신발, 옷감을 원하는 만큼 살 수 없다는 것만 빼면,

'낡은 것으로 새것을 만들라'는 게 하나의 원칙이 되고 이에 따라 바느질과 뜨개질을 열심히 해야하는 것만 빼면,

많은 젊은이들이 곁에 없고 그 가운데 몇몇은 전사한 것만 빼면,

상점과 작업장, 채석장도 줄줄이 문을 닫아야 하는 것만 빼면,

독일군의 연이은 승리에 익숙해져야 하는 것만 빼면,

늘어가는 프랑스인 전쟁 포로들한테 익숙해져야 하는 것만 빼면,

그리고 아빠와 오빠가 없다는 것만 빼면,

하지만 대신 필리프가 있었다.(175)

 

전쟁 중인데도, 심지어 아빠와 오빠가 전쟁터에 나가 있는데도, 달라진 게 거의 없어 보일 만큼,

사랑에 빠진 사람의 눈에는 '그'만 보인다.

 

전쟁 중이어서 생일도 초라하다.

친구를 많이 초대하지 않아도 좋다.

다만, 필리프만 같이 있으면 된다!

 

그래. 이런 마음이 사랑이다.

 

한니는 전쟁이 끝나지 않아 원망하지만,

 

엄마는 젊을 때 시간이 천천히 간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한니한테 전쟁은 끝이 없어 보일 게 분명했지만.(226)

 

이 책을 읽으면서, 속깊은 엄마와 아빠의 모습을 이해하는 기회도 될 듯 깊다.

 

너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내가 얼마나 일찍 눈치챘는지 아니?

사랑은 완전히 가릴 수 없단다.

특히 너처럼 아주 젊은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은 온몸에서 행복을 발산하지.(211)

 

전쟁은 인간의 모든 것을 앗아간다.

그런데도, 전쟁을 통하여 부를 획득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군산복합체로서의 사회구성체를 이루고 사는 나라들을 보면,

삶은 늘 줄타기하는 광대처럼 아슬아슬하고 불안하기 그지없다.

 

전쟁은, 없어야 한다.

이 책의 첫사랑이 웅변하는 바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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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들이 조심해야할 점...

본문의 번역가와 '서문' 또는 '작가의 말'을 손보는 편집자가 다르다 보니, 용어의 통일에서 오류가 생긴다.

 

서문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이란 말을 쓴다.

그렇지만 소설의 처음에선 '2차 세계대전'으로 쓰고 있다. 이게 옳다.

일반인들이야 '2차'와 '제2차'를 같은 걸로 읽을 수 있으나, 편집자들은 안다. 알아야 한다.

1차, 2차는 두 번의 세계대전을 구별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다. '제1차~'로 부른다면, '제3차, 제4차...'도 가능하다.

세계대전, 두 번으로 충분하지 않나?

 

33쪽. 번역가가 여성이라지만, '지구전'의 뜻은 '持久戰' 오래도록 상대편의 동향을 살펴 가며 기다리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적을 지치게 하거나 소모시킬 목적으로 오래 지속하는 작전이다.

 

"어머니, 유난 좀 떨지 마세요. 아마 지구전만 짧게 할 거예요."... 아마 '국지전' 정도를 혼동한 모양이다.

국지전(局地戰) : 전투가 한정된 지역에서만 이루어지는 제한 전쟁의 한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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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2-08-09 0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사랑'이란 단어만 보아도 가슴이 설레입니다. 투르게네프는 '아버지와 아들'을 러시아 지성사 시간에 읽은게 기억이 나요. 이 책도 꼭 읽어보고 싶어서 보관함에 담아두었습니다.

글샘 2012-08-09 08:58   좋아요 0 | URL
맞아요. 첫사랑... 이런 드라마나 책은 늘 마음을 움직이죠.
러시아 지성사... 멋진 과목인걸요? 이름은...

transient-guest 2012-08-10 01:15   좋아요 0 | URL
'Russian Intellectual History'였던 것으로 3학기로 I, II, III으로 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USCS에서 Jonathan Beecher교수님 - 아직도 재직중이세요 - 이 강의하셨던 나름 '고급'과정입니다. 제가 유럽사 전공이었거든요. 이분의 'European Intellectual History'도 3학기 과정으로 들었는데, 그 덕에 문학에는 거의 취미가 없던 제가 문학책을 읽게 되었더랬죠.ㅋㅋ

글샘 2012-08-10 07:15   좋아요 0 | URL
아~ 유럽사 전공... 그런 걸 하셨군요. ^^
맞아요. 역사-철학-문학은 같은 말을 다르게 하는 방법이고,
서로 부족한 걸 제 나름의 언어로 말하는 거니까,
같이 공부해 줘야 하죠. ^^ 그렇네요...

페크pek0501 2012-08-09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으로 흔적을 남기고 간다는...ㅋ

글샘 2012-08-09 16:30   좋아요 0 | URL
^^

2012-08-09 15: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09 16: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무개 2012-08-09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투루게네프의 첫사랑은 보관함에서 고온숙성발효되가고 있었는데
이참에 쫌 꺼내봐야 겠네요 ^^


글샘 2012-08-09 16:56   좋아요 0 | URL
투르게네프 이런 책은 도서관에 다 있을 텐데요? ^^
줄거리보다 그 두근거리는 마음의 묘사가 멋진 소설~

2012-08-09 2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10 0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