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 눈높이 어린이 문고 68
박재형 지음, 조민경 그림 / 대교출판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아이들은 다 천사로 태어나고, 모두 천재를 가지고 있다. 내가 보기엔 그렇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천사이며 천재인 아이들을 삐뚜름하게 만들기도 하고, 바보스럽게 느끼게 하기도 한다.

이 책에는 낮은 곳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열 편의 단편들이 한결같이 낮은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아이들의 시각에서 바라본 낮은 키, 큰 감동의 이야기들이다.

신장을 아들에게 기증하기 위해 외국에서 열심히 돈을 벌어온 아버지의 이야기, 미운 아빠.

어머니가 문을 잠그고 일하러 나간 사이, 촛불을 켜 놓고 잠이 들었다 참사를 입은 아이들이 나비가 된, 날개를 단 아이들.

먹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쉽게 얻을 수 있는, 그래서 뚱보가 되어버린 아이에게 이웃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는 아버지의 이야기, 초코파이.

난쟁이인 아버지가 부끄러웠던 아이, 그러나 그 난쟁이 아버지는 모두가 외면하는 환자를 병원으로 옮겨준 큰 아버지였던, 난쟁이네 집.

일하는 어머니, 일하는 아버지, 그리고 해체된 가정의 아이들이 겪는 소외감을 우정으로 극복해가는 이야기, 짜장면.

돈을 많이 벌어서, 나중에 더 부자가 되면 행복해 지려던 화가의 욕망이 빚은 슬픔을 그린 동화, 어머니의 초상화.

집값이 떨어진다고 이웃을 선동해서 장애자 시설을 막은 님비의 대명사였던 아주머니. 그녀의 남편이 장애자가 되어버리는, 이웃집 아주머니.

가난을 못 이겨, 도저히 기를 처지가 안 되자 해외로 입양시킨 딸이 찾아와서 만난 어머니, 그리고 벽에서 바라보던 어린 자기의 사진, 이유 있는 버림 이야기. 빛 바랜 사진 한 장.

노인을 불필요하게 여기는 사회에서 지혜를 보여준 할아버지의 이야기. 제주도 말의 맛을 잘 살려 쓴 제주도 이야기, 마지막 항해.

경제적 불황의 여파로 노숙자가 되어버린 아버지와 아버지를 기다리는 아들의 만남을 그린, 춤추는 해님.

모두 행복한 사람들 보다는 소외받는 사람들이 주인공이고, 우리가 왜 소외받는 사람들에게 따스한 시선을 보내야 하는지를 은연중에 가르치는 동화들이라고 할 수 있다. 갖고 싶은 것은 금세 살 수 있고, 먹고 싶은 것은 전화 한 통이면 아파트 문간까지 배달해주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꼭 읽혀주어야 할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

다행히 아들이 권해준 책이어서, 아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아들 녀석의 학교에서 치르는 독서 골든벨이란 행사는 아들과 나에게 많은 교감을 주게 한 기회가 되었다. 더군다나 이렇게 좋은 책을 읽게 된 기회를 가진 것도 고마운 일이고.

타워팰리스 어느 배달부는 자장면시킨 초등학생이 만원권을 내밀고, "잔돈은 됐어요."라고 했단다. 어느 여고생은 피자 몇 판 시켜먹고 십만원권 수표를 내밀면서 또 그 말을 했단다. 평범한 우리 아이들은 이해할 수는 있지만, 구사할 수는 없는 그 표현을 말이다. 이런 세상일수록 이렇게 좋은 책이 필요한 것이다.

저자인 박재형 선생님의 건투를 빈다.

*짜장면이 속음인데 현행 외래어 표기법에는 쌍지읒을 적지 않도록 하고 있다. 빠리를 파리로 적듯이. 그래서 짜장면을 외래어로 보아 자장면으로 적는다. 그러면 자파게티, 자장박사, 자자로니... 이런 게 옳다고 해야한다. 현실을 외면한 국어 규정은 낡은 학자들의 낡은 뇌에서 나온 거라서 늘 생각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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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4-11-23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장면..짜장면..아주 의미가 달라 집니다. 만원권 내민 잔돈 필요 없는 초등학생하고 만원이면 엄청 큰 돈인 줄 아는 초등학교 학생의 차이정도로요..상상이 어째 그렇죠?^^

하얀마녀 2004-11-23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파게티, 자장박사, 자자로니... 그 학자들에게 좀 보여줬으면 좋겠군요. 그런데 피자 몇판이면 십만원 되지 않을까요? 혹시 십만원 넘어서 그렇게 말했을라나요? ^^

글샘 2004-11-23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반갑습니다. 자장면 하면 별로 맛이 없어 보이죠? 짜장면이 걸쭉하니 맛있어 보이구요. 잔돈은 됐어요 하는 초딩은 아마 자장면을 먹을지도 모르지요.^^

마녀님.. 학자들에겐 안 보여주는 게 상수랍니다. 뭔가 자기들 밥그릇 위협한다 싶으면 심하게 노하거든요. 저는 학자들을 혐오한답니다. 참, 저 여고생들은 4만원 정도 시켜 먹고 잔돈이 됐더래요. 그래서 타워팰리스 주변의 배달부들은 아무나 할 수 없다네요... 믿거나 말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