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 구운몽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
최인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힘들던 대학 시절,

하숙집에서 고시공부하는 법대 형이랑 친했다.

그 형은 천재 스타일인데, 뭐 관심이 다양한 편은 아니었다.

가끔 내 방에 와서 놀다 가곤 했는데, 담배를 한두 대 피우곤,

이 책, <광장>을 빌려가며, 날 '운동권'으로 부르곤 했다.

 

사회과학 서적을 읽었을 뿐이지, 딱히 조직에 속한 운동권은 아니었던 나는,

그 말이 듣기 좋진 않았다.

그 선배는 지금 고시를 패스해서 사법기관 어딘가에 근무중이다.

과연, 그 선배는 지금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난 광장을 만날 때마다,

서울 법대를 나와서 최고의 엘리트 코스인 사시를 패스한 그 선배가

읽었던 광장은 어떤 소설이었을지가 몹시 궁금하다.

 

죽기 전에 한번 만날 기회가 있기도 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때 한번 물어볼 거다.

 

선배에게 '광장'은 무엇이었고,

선배가 지금 선 자리는 어디냐고...

 

정치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1960년은 학생들의 해이었지만,

소설사적 측면에서 보자면 그것은 ‘광장’의 해였다고 할 수 있다.

장용학의 지나치게 고압적인 관념어들과

손창섭 류의 밑바닥의 삶,

그렇지 않으면 초기 김동리의 토속적인 세계에 식상하고 있던 나에게,

그것은 지적으로 충분히 세련된 문체로,

이데올로기와 사랑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김현의 해설, ‘사랑의 재확인’ 중)

 

이정도면, 광장의 리뷰로는 더 쓸 말이 없다.

그렇지만, 이 소설은 서정시보다 더 진한 감정적 결을 드러낸 문장들로 가득해서,

적어두고 싶은 감정이 가득 들었다.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


바다는 그 쪽에서 활짝 펴진, 눈부신, 빛의 부채다.

 

 

펼쳐진 부채가 있다. 부채의 끝 넓은 테두리 쪽을, 철학과  이명준이 걸어간다.

다음에, 부채의 안쪽 좀더 좁은 너비에, 바다가 보이는 분지가 있다.

그의 삶의 터는 부채꼴, 넓은 데서 점점 안으로 오므라들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은혜와 안고 뒹굴던 동굴이 그 부채꼴 위에 있다.

그는 지금, 부채의 사북자리에 서 있다. 삶의 광장은 좁아지다 못해 끝내 그의 두 발바닥이 차지하는 넓이가 되고 말았다.

부채꼴 사북까지 뒷걸음질친 그는 지금 핑그르 뒤로 돌아선다.

제정신이 든 눈에 비친 푸른 광장이 거기 있다.


이 소설의 시작에서, 바다가 부챗살처럼 눈부시게 펼쳐진다.

이 소설의 대미 역시, 부채와 바다의 은유로 마물려진다.

수미상관 기법이라도 운용하듯, 그렇게 소설을 쓴다.

그리고 지식인의 한숨이 회색인의 시대를 가득 메운다.

 

책장을 대하면 흐뭇하고 든든한 것 같았다.

알몸뚱이를 감싸는 갑옷이나 혹은 살갗 같기도 하다.

한 권씩 늘어갈 적마다 몸 속에 깨끗한 세포가 한 방씩 늘어가는 듯한,

자기와 책 사이에 걸친 살아 있는 어울림을 몸으로 느낀 무렵이 잇다.


“사는 것처럼 사는 법이 좀 없을까요?”

“자넨 아직 패를 많이 가지고 있지 않나?”

“패라니요?”

“왜, 미스를 할 때마다 패 하나씩 빼앗기는 놀이 있잖아. 자넨 아직 한 판도 안 했단 말일세. 아니 내가 잘못 알았나?”

“아닙니다. 아직 한 번도 미스가 없지요.”

“그러니 되지 않았나? 큰소린 치지만 내 손엔 남은 패가 사실은 한 장도 없어. 어쩌면 도대체 나한텐 패가 꼭 한 장 뿐이었는지도 모르지.”


예감이란 말이 있다. 자기가 애쓰지 않는데도, 어떤 일이 다가옴을 살갗으로 느기는 걸 예감이라 부른다.

자기 삶이 어떤 나무에서 익을대로 읽은 끝에,

곱다랗게 자리잡고 있던 가지에서 뚝 떨어지기 앞선 얼마 동안,

새로운 움직임을 마련하는 숨결이,

아무래도 본인에게 새어나게 마련.

두터운 벽을 가진 방안에서 주고받는 말소리가 듣는 사람에게 안타까움을 주는 게 사실이라면,

문득 귀찮아져서 엿듣기를 그만두는 마음도 있을 수 있다.


이 소설의 두 가닥은,

하나는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이념과 체제다.

작가는 사랑에 대하여 끝없이 천착하면서도 그 허무함에 도리질친다.

 

사람이 사람을 안다고 말할 때,

그건 얼마나 큰 잘못인가.

사람이 알 수 있는 건 자기뿐,

속았다 하고 떼었다 할 때,

꾸어주지도 않은 돈을 갚으라고 조르는 억지가 아닐까.

‘사랑’이라는 말 속에, 사람은 그랬으면 하는 바람의 모든 걸 집어넣는다.

그런, 잘못과 헛된 바람과 헛믿음으로 가득찬 말이 바로 사랑이다.

 

 

죽기 전에 부지런히 만나요, 네?


아, 소설에서 이런 구절을 만나다니.

죽기 전에 부지런히 만나요, 네?

그래. 이런 마음이 사랑이다.

어차피 유한한 인생.

부지런히 나눠야 사랑이다.

 

그의 정치관, 체제에 대한 고민이 이 소설의 큰 고백인 바,

그의 고민이 적나라한 부분이 '인민의 역할'론이다.

읽을 때마다 가슴이 저린다.

 

인민이라구요? 인민이 어디있습니까?

자기 정권을 세운 기쁨으로 넘치는 웃음을 얼굴에 지닌 그런 인민이 어디있습니까?

바스티유를 부수던 날의 프랑스 인민처럼 셔츠를 찢어서 공화국 만세를 부르던 인민이...

그때 프랑스 인민들의 가슴에서 끓던 피,

그 붉은 심장의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 붉은 심장의 설레임 그것이야말로, 모든 것입니다.

우리 가슴속에서 불타올라야 할 자랑스러운 정열, 그것이 문젭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slmo 2012-03-30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어떨까요?
죽기전에 부지런히 사랑하세요, 네?^^

글샘 2012-03-31 15:05   좋아요 0 | URL
그것도 좋네요. ^^
광장을 정말 여러 번 읽었는데, 이번엔 저 구절이 보이데요.

페크pek0501 2012-03-30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에 읽은 책을 만나니 반갑네요.
"사람이 알 수 있는 건 자기뿐," - 저는 자기도 모르는 게 인간이라고 봐요.ㅋ
잘 정리된 글, 잘 읽고 갑니다. ㅋ


글샘 2012-03-31 15:06   좋아요 0 | URL
잘 정리된... 은 아니구요. ㅎㅎ
좀 오만한 시절의 최인훈이죠. 자기를 알 수 있다고 여기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