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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조 사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논그림밭 / 2002년 9월
평점 :
품절
십년 쯤 전이었나. 아트 슈피겔만의 <쥐>를 읽었다. 두 권의 만화로 되어있었는데,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쥐'가 피해자들의 이야기라면, 이제 그 피해자들이 가해자가 된 팔레스타인의 이야기이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역시 형상화는 추상의 한계를 극복하는 힘을 가졌다. 이스라엘의 역사나 유태인의 역사, 팔레스타인 전쟁 등을 책으로 읽었을 때 느꼈던 그들의 삶은, 폭동, 희망없음, 그리고 이스라엘 군인들과의 대치... 뭐 이런 무미건조한 것들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 시종 기분이 께름칙하다. 바로 비오는 날씨와 진흙탕 때문이다. 이런 것을 비평에서는 주제를 드러내기 위한 배경의 역할이라고 할까? 그리고 너무도 어린 나이에 죽음, 고문, 수모, 팔을 부러뜨리기(이것은 가장 잔인한 폭력이다. 죽음보다, 고문보다...), 그리고 돌을 던지고, 다시 고행의 길로...
우리의 80년대가 희망을 향한 투쟁의 시기였다면, 그들의 삶은 하나에서 열까지 비참하고 희망 없는 투쟁의 현실이다. 리얼리즘이 가지는 힘이란 이런 것이다. 눈시울을 붉히지 않고는 읽을 수 없는 만화. 죽고, 또 다치고, 총에 맞고, 죽음마저 죽음으로 승화시킬 수 없는 비통함, 그리고 침묵과 벽.
통곡의 벽.(누구를 위한 통곡의 벽인가.)
그 벽 앞에서 통곡하다가, 흐느낌마저 잦아지다가, 고개를 든 히잡을 쓴 여인의 눈초리에선 독기가, 복수의 광기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후세인만이 그들을 위해 의리를 지킨 멋쟁이라는 말을 읽을 때, 9.11 테러를 보고 환호를 올리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여인의 마음이 바로 김수영의 <풀>이 아니었을까.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져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르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조 사코가 취재하는 내내 하루빨리 그곳을 벗어나길 원했듯이, 나도 사실은 내가 거기에 있지 않음에 안도하고 있다는 걸 난 안다. 그러나, 안사르와 진실을 널리 알리는 일은 가치있는 일이라는 것도 안다.
그곳에는 영원히 평화가 올 수 없음을. 그러나 언젠가는 결론아닌 결론에 다다를 수도 있음을 예감하며 이 무거운 책을 무거운 마음으로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