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른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다
박에스더 지음 / 쌤앤파커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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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도 족보가 있다.

나는 ‘경주 정씨’ ‘00공파’ ‘00대손’임을 외우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집 족보가 가짜임을 나는 알고 있다.


조선은 망했지만, 조선인이 살고 있는 나라, 그게 한국인들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한국이란 사회의 권위주의, 남성우월주의, 남성중심 성문화, 가족중심주의는 조선조 유교적 질서가 그대로 살아남아 있다.

아직도 '상놈의 자식', '근본이 없는 집 자식'이 욕일 수 있는 사회다.


박에스더는 그 남성적 질서가 가장 강한 방송국 기자 생활을 하면서 온갖 물음표를 달고 살아왔다.

그래서 그 물음표의 시원이 어딘지를 처절하게 묻고 있다.


이 책의 꼭지들을 읽으면서 수십 번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저자의 역사 공부가 좀더 깊었더라면,

그래서 박노자만큼은 아니더라도, 그 사태들을 낳았을 원인들을 좀더 역사적 배경에서 찾아내고,

강제했던 역사적 배경에 조선의 ‘성리학적 종법 사회 질서’가 있었음을 강조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세계에서 가장 아이를 적게 낳는 이유도 거기서 연유할 수 있고,

자기 아이를 위하여 가장 많은 학원 시간을 투입하고, 심지어 인생을 다 거는 엄마와,

결혼 하고도 자식을 위하여 집을 사주는 등의 투자를 하는 이상한 부모가 사는 나라.

그래서 남의 식구를 입양하는 일은 생각하기도 힘든 나라.


그 근원이 어디 있는지 밝히는 일은 중요한 일이다.


당신의 집안이 ‘양반 가문’이었음을 자랑하지 말라.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입으로 ‘근본 있는 집안’, ‘뼈대 있는 집안’의 무의미함를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삼종지도’와 ‘현모양처’의 멍청한 여인상을 배척할 줄도 알아야 한다.


신사임당은 한량 남편 지도에 실패하고,

첫째 아들 역시 한량 스탈이라 실패하고,

차남 율곡의 교육에 올인하여 5만원권 초상으로 등극하시었다.

어찌보면 21세기 강남 엄마의 표본이시니 5만원권 초상으로 적합할는지 모를 일이지만 아무튼 슬픈 일이다.


역사적으로 부패한 왕조가

식민지 경험과 동서 냉전의 경험 속에서

세계 역사상 가장 ‘광장과 밀실’이 발달한 두 나라로 쪼개져 버린 역사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

그리고 가장 빠른 속도로 발전했지만,

그래서 가장 급격한 기울기로 마음의 울렁증이 생겨버린

빈부격차와 양극화의 양극단에서 느껴지는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의 불안감.

국가는 국민을 팽개치고 각개 약진만으로 버티어지는 국가 시스템에서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


한국의 어떤 세대는 조선왕조부터 식민지, 전쟁, 독재기를 거치며 살아온 그야말로 살아있는 화석이 되어버린 역사의 피조물인 것이다.

그 역사 속에서 '거짓 날조된 역사'는 가르쳐졌지만,

아직도 권력에 앉은 자는 '한국 근,현대사' 폐지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애쓰는 낮은 수준의 역사 인식을 가진 가엾은 나라다.

(결국 뉴라이트 정권은 2009 개정 교육과정을 통하여 '한국근현대사' 과목을 폐지하고 '동아시아사'라는 애매한 과목을 신설했다.)


그 역사의 추체험들이 날줄과 씨줄로 얼키고 설켜 만든 것이 대한민국 사람들이란 모습의 단편들일 것이다.

한 권의 책으로 ‘다른 대한민국’을 요구하는 것은 박에스더의 치기어린 용기였을 것이다.


이런 문제 의식을 가진 사람은 많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진지하게 논의되는 자리는 많지 않다.

박에스더의 문제제기와 함께 살고 싶은 대한민국, 미래의 비전이 숨쉬는 함께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로서의 한국의 도래를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근본없는 자식, 상놈의 자식임을 드러내놓고 자임하는 것이다.

 

 

시인 이영광은 이 주옥같은(? 빨리읽기) 대한민국을 이렇게 시로 썼다.

통,쾌,하,게,도...

 

대(大)

 

대한민국이여, 대가리에 쓴 그 대(大)자는

음경확대수술 후유증 앓는 곪은 귀두 같구나

커질 수만 있다면 문드러져도 좋아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아

반쯤 얼어터진 봄이 다 가도록

사람 죽여 원혼 만들고

전쟁과는 전쟁할 줄 모르는 공포의

대한민국이여, 함께는 사실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

그것이 절망이겠지

무수히 적을 물리쳐도 예부터

전쟁을 무찌른 용사는 없었는데

대한민국이여, 겨우겨우 키운 좆 움켜쥐고

사창가로 쳐들어가는 취한 수컷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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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3-06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마지막 줄이 멋지군요.ㅋ
신사임당에 대한 해석이 재밌어서 웃음이 나왔어요.
저는 박노자의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를 샀는데, 얼른 읽어야겠어요.
글샘님처럼 리뷰를 쓰고 싶은 충동이 확 일어나는군요. ㅋ

글샘 2012-03-07 01:07   좋아요 0 | URL
저처럼... 리뷰를 쓰다뇨? ㅋㅋ
기대하겠습니다. ㅍㅎㅎㅎ

saint236 2012-03-06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쌤앤 파커스에서 저런 책도 나오는군요. 전 자기계발서만 나오는 줄 알았습니다.

글샘 2012-03-07 01:0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계발서인줄 알았는데, 뜻밖의 사회비판서더라구요.
박에스더의 문장은 가파른 건조체인데, 마음은 뜨거운 용광로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