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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 재습격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창해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신혼부부, 살림이 서툴다 보니 밤늦게 야식 거리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다 옛날 이야기가 나왔는데, 부부는 차를 몰고 빵가게를 습격하러 간다.
빵가게는 다 문을 닫은 늦은 시각,
맥도날드를 털어 빅맥을 30개 빼앗는다.
그동안 매장 안의 손님 둘은 늘어지게 자고 있다.
하루키의 문장에서는 진지함도 가볍게 묻어난다.
삶은 무진장 짜증나고 무겁고 지루하고 육중한 무게로 인생을 짓누른다.
어디로 피해도 그 짜증나고 지루한 육중함은 미리 거기서 대기하고 있었단 듯 인생을 짓누르게 마련인데,
그런 순간에 하루키의 글은 경쾌함으로 육중함을 이긴다.
코끼리와 사육사가 점차 줄어들다가 소멸되어버린 사건에 대하여 진지한 체 이야기하는 소설도 그렇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컵라면을 하나 끓여 먹고 있었는데,
코끼리가 소멸되는 대목을 읽으면서 하나를 더 끓여 먹게 되었다.
라면을 먹으면서 책을 읽는 일은 좀처럼 드문데, 코끼리가 라면을 먹은 모양이다.
삶이란 게 이해할 수 없는 국면으로도 충분히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걸 하루키는 '태엽 감는 새'처럼 판타지로 풀어내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의 집때문에 생기게 된 막다른 골목길.
거기로 사라진 고양이과 고양이를 찾다가 만나게 된 소녀.
어느 날 문득,
길을 잃게 되는 것이 삶인데,
거기서 만나는 사람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햇살을 쬐는 일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것이다.
삶을 정면으로 맞서 부딪쳐 나가는 치열함은 하루키에게 없다.
그러나 그의 글에서 슬몃슬몃 비켜나가는 위트는 삶에 대한 또하나의 자세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스스로의 삶에서는 마라톤을 통하여 치열한 숨쉬기를 반복하는 작가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삶의 자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