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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없는 사람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397
심보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8월
평점 :
오늘 서울 시장이 나쁜 투표를 실시했지요.
결국 졌으면서도, 25.7%에 머물러 실패했으면서도, 승리했다고 우기더군요.
순수함을 잃은 사람들.
어린 영혼들을 보고 이해하지 못할 뿐더러, 투쟁을 선포하는 사람들이더군요.
그런 안타까운 현실을 만난 날,
이런 시집의 글을 읽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법과 규칙의 말들은 죄의 무릎과 무릎 사이에 놓인 순수함을 보지 못하는군요.
세계의 단단한 철판 위에 이성의 흔적을 새기는 사람들, 물의 말을 모르는 사람들.
그들은 죄악의 틈새에서 잠들고 자라나는 어린 영혼을 보고는, 아이, 불결해, 눈살을 찌푸리기만 하네요.
하지만 물방울로 이루어진 당신의 말은 그 영혼을 투명하게 비춰주는군요.
물방울로 오로지 물방울과 싸우는 당신. 물방울의 정의를 행사하는 당신. 판결과 집행이 아니라 고투와 행복을 증언하는 당신.(시집 뒤표지의 시인의 말)
정말 안타깝게도 법과 규칙을 내세우는 정치가라는 욕심쟁이 사람들은 물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요.
그들에게는 오로지 힘과 숫자만 보이는 모양이죠.
시인에게 <사랑하는 사람>이란 실존의 대상이 아닌 모양입니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하여 이런 희망사항을 품고 있어요.
당신은 말하죠. 인간은 세상의 모든 단어를 발명했어요. 사랑을 제외하고요.
사랑은 인간이 신에게서 빌려온 유일한 단어예요. 그러니 사랑 때문에, 우리는 할 수 없는 것을 하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마랗고, 쓸 수 없는 것을 쓰는 것이죠.
나는 말하죠. 오늘 밤, 당신은 나와 너무 닮아 낯설군요.
당신은 말하죠. 아니, 당신은 너무 낯설어 나를 닮았어요.
그런가요, 그래요. 그럼, 잘 자요, 당신, 내 사랑. (시집 뒤표지)
요즘 김난도라는 작가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인기래요.
오죽하면 한국처럼 책 안 팔리는 나라에서 100만부가 팔렸다네요.
저는 아직 읽어본 일은 없지만, 뭐, 제목만 봐도 88만원 세대의 고통 앞에 충고와 격려를 보내는 글인 모양입니다.
어쩌면 '정의란 무엇인가'를 제대로 읽은 사람도 없이 100만부가 팔린 것과 비슷한 현상인지도 몰라요.
차라리, 이 시집의 뒤표지처럼 '당신, 내 사랑'을 되뇌어줄 수 있는 시집을 읽는 게
훨씬 위로의 말과 포옹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더군요.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에는 너무 아깝다." 이런 영국의 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말로 시작해
"If you don't know where you're going, just go." 이런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 나오는 말로 끝맺는 책이랍니다.
네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다면, 계속 가라니... 이런 무책임한 말이 어딨답니까?
그렇지만, 또 어디로 가는지 몰라도 계속 갈 수밖에 없는 게 삶이기도 한 건 거짓없는 사실이겠지요.
지금 유명한 음악가, 미술가들도 거의 생존시엔 굶주림에 시달릴 정도로 힘들게 살았던 것처럼,
'내일'에 '내 일'은 무엇일지... 알 수 없는 것임엔 동의할 수밖에 없잖아요.
눈앞에 없는 사람.
당신에게 시인은 자꾸 '말'을 던집니다.
눈앞에 없지만, 당신은 '부재'하는 존재는 아니에요.
눈앞에 없으므로, 당신은 더욱 '강렬하게 존재'하는 존재가 아닐까요? 오히려...
그렇지만, 부재한 당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일은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이렇게 '언어'를 노래합니다.
우리가 영혼을 가졌다는 증거는 셀 수 없이 많다.
오늘은 그중 하나만 보여주마.
그리고 내일 또 하나.
그렇게 하루에 하나씩. (말들)
이 시집의 서시격인 첫 시인데, 이 짧은 글이 전문입니다.
오늘은 하나만 보여주고, 그렇게 하루에 하나씩
당신과 나의 영혼의 존재를 밝혀보고 싶다는 의지를 아주 '쎄게' 표출하고 있지요.
그렇지만, 그 의지는 쉽사리 실현될 수는 또 없는 거 아닐까요?
그래서 화자는 명확히 보여주는 대신 질문을 던지는 걸로 눙치고 들려 합니다. 약하게스레...
단어들이여.
내가 그늘을 지나칠 때마다 줍는 어둠 부스러기들이여.
언젠가 나는 평생 모은 그림자 조각들을 반죽해서
커다란 단어 하나를 만들리.
기쁨과 슬픔 사이의 빈 공간에
딱 들어맞는 단어 하나를.
나의 오랜 벗들이여.
하지만 나는 오늘 밤 지상에서 가장 과묵한 단어.
미안하지만 나는 그대들에게서 잠시 멀어지고 싶구나.
나는 이제 잠자리에 누워
내일을 위한 중요한 질문 하나를 구상하리.
영혼을 들어 올리는 손잡이라 불리는
마지막 단어만이 입맞춤의 영광을 누릴 수 있다는
?
로 끝나는 질문 하나를. (나의 친애하는 단어들에게, 부분)
언어란
워낙 인간 존재가 부족한 존재이다 보니,
적확한 표현 하나 얻기 힘든 것이잖아요.
그러니, ?로 끝나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기쁨과 슬픔 사이의 머나먼 거리를 메워줄 단어를 찾아 나서는 셈인 거죠.
그 단어가 하나일까요?
그리고 그 단어가 과연 몇 글자로 확정될 수 있을까요?
물론,
나와 너무 닮은 당신은 그 단어를,
콕 집어서 한 단어로, 혹은 몇 단어 속에 그 정답을 찾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조바심을 내겠지요.
ㅎㅎ 당신은,
나와 너무 닮았기 때문에 저는 독심술이라도 부리는 듯 다 알 수 있답니다.
나는 왔다
태어나기 전부터 들려온
기침 소리와 기타 소리를 따라
환한 오후에 심장을 별처럼 달고 다닌다는
인간에게로, 그런데
여기서 잠깐 질문을 던져 보자.
두 개의 심장을 최단거리로 잇는 것은?
직선? 아니다!
인간과 인간은 도리 없이
도리 없이 끌어안는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인간이기 위하여
사랑하기 위하여
無에서 無로 가는 도중에 있다는
초라한 간이역에 아주 잠깐 머물기 위하여 (지금 여기)
'지금 여기'는 결국 '존재론'적 귀결을 놓칠 수 없지요.
두 개의 심장의 최단거리는 끌어안는 거라네요.
그게 곧 '사랑'으로 채워지는 '무에서 무로가는' 인식의 세계를 뛰어넘은 공간 의식이겠지요.
그러나, 사랑이란 놈,
사랑... 그놈이 과연 실체가 있는 걸까요?
초라한 간이역 사이에 잠깐 머무는 존재인 주제에 말입니다.
나는 너의 손을 움켜잡는다. 나는 느낀다.
너의 손이 내 손안에서 조금씩 야위어가는 것을.
마치 우리가 한 번도 키우지 않았던 그 자그마한 새처럼.
너는 날아갈 것이다.
날아가지 마.
너는 날아갈 것이다. (새, 부분)
눈앞에 없는 당신.
그러나 나와 너무 닮은 당신.
그래서 닮았음을 쉽사리 인정하기도 힘겨운, 낯선 당신.
그러나 또,
너무 낯설어 하여,
그것조차 나와 닮은 당신.
당신,
반가워요.
인간 human과 웃음 humor은 어원이 같다더군요.
당신에 대한 애정을 담아
우스개 인사 하나 덧붙입니다.
이 인사가 뭐냐구요?
반갑수다! 입니다.
심보선 시는 음... 읽기 쉽게 형상화에 성공하고 있는 것들은 아닙니다.
어쩜 형상화를 거부한 개념적 유희를 즐기는 시이기도 합니다.
화자가 의도하는 바가 금세 와 닿지 않지요.
오죽하면 뒤표지의 글을 저렇게 가득 옮겼을까요. ㅎㅎ
장자의 '소요유' 편이 잠시 생각나는 시 한 조각 보여드릴게요.
지금은 머릿속에서 온갖 꽃들이 시드는 오후다
공원 벤치에 홀로 앉아
이상한 말들을 중얼대는 오후다
몇 시인가 시계를 들여다 보니
고요와 소요가 정확히 반으로 나뉘는 시간이다 (이상하게 말하기, 부분)
오후예요.
머릿속에선 온갖 꽃들이 피로에 쩔어 시들어 가나 봅니다.
시계를 보니,
<고요와 소요>가 정확히 반으로 나뉘는 시간이랍니다.
스스로도 '이상하게 말하기'라고 하고 있죠.
고요함...
현재의 고요함을 응시함.
이런 마음과,
소요함...
복잡한 심사를 안고 어슬렁거리며 정처없이 떠돌며 거닒.
이런 마음이 반반인 사람.
바로 당신이죠?
그래요.
나와 너무 닮아서 또 낯선, 바로 당신이죠.
그런가요,
그래요.
그럼,
잘 자요,
당신,
내 사랑.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파워북로거 지원 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