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트 하우스 민음사 모던 클래식 50
니콜 크라우스 지음, 김현우 옮김 / 민음사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니콜 크라우스에 대해 읽노라니 남편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의 작가 조너선 샤프란 포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작가의 남편의 소설을 읽은 것이 작가의 글에 대한 선입견이 전혀 될 수 없을 정도로,
그의 글에는 쉽게 빠져들게 하는 마력이 있다. 

어쩜 마르케스의 '백 년의 고독'의 말빨에 쏠려 들어가는 느낌을 갖게까지 하는 글이었다.
이 소설 속에선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 사람들의 이야기는 또 몇 장의 상황을 만드는데,
마치 그 상황은 사진의 배경에 담긴 사람의 이야기가 연쇄적으로 전경으로 떠오르는 것처럼,
야릇한 아찔함을 맛보게 한다. 

그 연결 고리들의 가운데엔 '책상'이 있다.
열아홉 개의 크고 작은 서랍이 달린 육중한 책상.
이 책상을 사용하던 사람과, 그 책상을 요구하던 사람과, 그 책상을 줘버린 사람과, 그 책상을 가졌던 여자의 남편과...
그 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사연으로 가느다란 줄을 통해 엮이게 되는데,
그 줄들이 소설 밖으로 펼쳐진다면 끝없는 유대인들의 그물망으로 짜여지게 될 것인 바. 

이 작은 책상이란 포인트에서 시작하여 몇 고리를 거쳤을 뿐인데도,
유대인들의 기억속에 흑백사진으로 각기 다르게 인화되었을 '기억'의 문제에 대하여,
그 '그레이트 하우스' 위의 삶들의 궤적에 대하여 작가는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방식을 채택한다. 

그 이야기는 친구의, 그리고 제 아비의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 소설의 중심 이야기로 쓰기도 하는 '화법'으로 채택되기도 하여 읽는 사람에게 낭창낭창한 목소리로 수다떨기 좋아하는 화자와 마주앉은 느낌마저 들게 하는 것이다. 

   
 

작가란 자신의 작품이 가지고 올 결과를 두려워하면 안 된다고 믿었어요.
세속적인 비난이나 현실감 따위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작가는 회계사가 아니라고요.
뿐만 아니라 도덕적 잣대 같은 우스꽝스럽고 잘못된 기준을 따를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작품 속에서 작가는 그 어떤 법칙의 제약도 받지 않는 거라고 믿었죠.
하지만 삶에서는요, 작가라고 그렇게 자유롭지는 못했어요.(45) 

 
   

작가의 화법에 대하여 자유롭지 못했음을 이야기의 첫부분에 제시하는 것은
작가가 이 소설을 왜 쓰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두 번째 화자의 목소리에서 작가가 이 소설을 어떻게 쓸 것이며,
작가에게 이 소설의 화법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들려준다. 

   
 

무슨 이야기를 쓸 건데?
내가 되물었지.
너는, 넷, 여섯, 혹은 여덟 명의 인물이 뒤얽힌 이야기라고 했다.
인물들이 있는 방은 모두 전극봉과 전선을 통해 커다란 상어 한 마리와 연결되어 있다고.
매일 밤 조명이 환한 물탱크에 갇힌 상어가 그 사람들의 꿈을 대신 꾼다는 이야기.
아니, 그냥 꿈이 아니라 악몽이었지.
견디기가 너무 어려운 일들.
그래서 인물들이 잠이 들면 그 끔찍한 일들은 전선을 타고 빠져나와 무시무시한 물고기에게 흘러가는 거라고.
흉터투성이 상어는 그 비극들을 모두 견딜 수 있을 테니까.
네가 이야기를 마친 후 나는 한참 침묵이 흐르게 내버려둔 다음, 물었다.
그 사람들은 누구냐고.
그냥 사람들요.(69) 

그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냐고?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그 모든 일들.
수백만 마디의 말과 끝이 나지 않던 대화들, 지칠 줄 모르고 했던 의논들,
전화 통화, 설명, 괴롭힘, 설득, 난처함, 반복들, 그리고 이어진 오랜 시간의 침묵이 있었는데,
어디서부터 할까?(70)

 
   

인간들은 그물처럼 얽혀 대화를 나눈다.
그러나 그들의 대화, 의논, 통화, 설명, 괴롭힘, 설득...
이것들은 늘 난처함, 반복, 침묵의 기억으로 이어진다.
결국, 그래서,
기억에 남는 것들은 늘 색이 바래고 감은 낯설고 뒤틀리고 비틀어진 것들의 조합인 거나 아닌지... 

   
  글을 썼다가 지우고 하는 일.
그런 것도 직업이라는 거냐?
아니, 삶입니다.
이런, 삶이라니!
너는 네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냐?
너 자신만의 영웅?
너는 너 자신 속으로 숨어 버렸지, 작은 거북이처럼 목을 잔뜩 움츠린 채,
말해봐라, 정말 궁금해서 그런다. 너처럼 지내는 기분은 어떤 거냐? (73)
 
   

자신의 삶에 대하여, 글을 썼다가 지우고 하는 일을 하는 삶에 대하여,
그리고 작은 거북이처럼 목을 잔뜩 움츠린 채 제 자신 속으로 숨어버린 작가의 삶에 대하여,
작가는 객관적으로 묻는다. 답은?
글쎄, 작가에게 답은 수영 구멍 속에서 찾으려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내는 내게 수수께끼였다.
하지만 나는 그녀 안에서 찾은 그 작은 섬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거기서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아내의 중심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상실이 있었다.
... 아니, 나는 아내가 자신의 깊은 속에 무엇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서서히 몇몇 발판들을 발견했다. 
... 아내는 자신의 슬픔 때문에 괴로워했지만, 그걸 숨기려고, 점점 더 작게 쪼개서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에 흩어 놓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나는 종종  그것들을 찾아 맞춰 보려고 애썼다.
... 어떤 면에서,
아내는 타인에게 알려지는 것을 근본적으로 싫어했다.
혹은 그걸 원하면서도 견디지 못했다.
타인에게 알려지는 것은 자신의 자유를 해치는 것이었다. (111-113) 
 
   

이 소설의 모든 화자들은 각기 다른 사진틀 속에 박혀있지만,
화법을 따르노라면 모든 화자들은 작가의 말하기에 대한 생각을 반영하고 있어 보인다.
그건 바로 그레이트 하우스 위에 지어진 집들이기에
외롭게 쓸쓸한 음악을 들으며 독립되어 있어 보이지만,
<어느 씌어진 글>의 다음, 을 알 수 없는 것은 '무한대'를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작가에겐 자신의 글이 낯설었던 것일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나를 버린 후 모든 기억들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떠오르는 거(149)   
   

기억에 대하여 작가는 이렇게 적었다. 

   
  영국의 고슴도치들은 모두 어떻게 된 걸까?
어릴 때는 어디를 가도 쉽게 볼 수 있었는데,
그 많은 고슴도치를 모두 죽여 버린 건 뭐였을까?
커다란 눈에 어울리지 않게 시력은 형편없는 그 사랑스러운 야행성 동물.
여우는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고슴도치는 큰 것 한 가지만 알고 있다고 했는데
그런데 그게 뭐였을까?(149)
 
   

보잘것 없지만, 사랑스러운,
흔히 볼 수 있던,
지금은 기억속에 남았지만,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그런 기억들은 불현듯 의지와 상관없이 떠오르곤 한다.
고통스럽게도... 

   
  멈추지 않던 불안과 어떤 불행에 대한 인식이 꿈의 가장자리를 소살스럽게 맴돌고...
잠을 자는 시간 동안 한데 모여서 점점 더 커지던 그 불안이,
눈을 뜨는 바로 그 순간 의식으로 넘어와 미칠듯 두려웠네요...
제가 닿을 수 없는 곳에서 어떤 질문이 끈질기게 대답을 요구하고 있었는데,
그게 무슨 질문이었을까요?
질문이 저를 계속 눌렀고, 잡으려 하면 달아났어요.
... 여전히 질문은 사라지지 않았고,
제 정신은 마치 이가 빠진 자리를 더듬는 혀처럼 그 질문 언저리를 맴돌았죠.
아프지만, 알고 싶었어요...
그 급박한 질문들이 다시 나타나고,
그게 무엇인지, 무엇인지 궁금하던 중에,
갑작스러운 메스꺼움과 함께 어느 순간 표면으로 떠올랐네요.
내가 잘못 생각한 거면 어떡하지? (275)
 
   

자신의 사고 과정을 이렇게 명징하게 적으려 드는 작가를 만나는 일은 행운이 아닐까?
그러나, 그 행운에 답하는 작가의 멘트는 어쩌면, 심하게 메스껍다.
내가 잘못 생각한 거면 어떡하냐니... 

작가가 따라가는 이야기의 궤적은 기억들의 편린에 맞물린 고리들의 퍼즐을 교묘하게 결합시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거대한 집의 아주 작은 부분들일 수밖에 없다. 

   
 

이제 모든 유대인의 영혼은 불타버린 그 큰 집에 서 있는 것.
너무나 큰 집이어서 우리 각각은 아주 작은 부분밖에 떠올릴 수가 없다.
벽지의 무늬나 문의 손잡이, 거실을 가로지르는 빛 같은 것들.
하지만 모든 유대인들의 기억이 하나로 모이면, 그 집은 다시 세워지는 것. 

어쩌면 완성되는 건 그 집에 대한 기억일 뿐이겠지만,
너무 완벽한 그 기억은, 본직적으로는, 원래의 집 자체가 되겠죠.
메시아라는 단어가 뜻하는 것도 그런 데 아닐까요.
유대인들의 무한한 기억을 완벽하게 하나로 모은 그런 거.
다음 세상에서는, 기억에 대한 기억 속에 우리 모두 함께 지낼 수 있겠지,
하지만 그건 우리에게 준비된 세상은 아니야.
너나 나를 위한 세상은 아니겠지.
우리는, 우리 각자는, 그저 기억의 조각을 지키기 위해 사는 거여.
영원한 후회와 한때 존재했음을 알고 있는 어떤 곳에 대한 갈망에 빠진 채, 그곳의 열쇠 구멍에 대한 기억, 바닥의 타일과, 열린 문 아래 닳아버린 문지방에 대한 기억을 지키기 위해.(385) 

 
   

여자와 여인과 연인,
아들과 아버지와
노인과 젊은이와,
아내와 남편이 들려주는 직조물에서 반짝이는 구슬들은
서로 비추고 비추임을 반복하면서 삶을 기술하는 방식을 들려준다. 

신비로움을 간직한 열아홉의 서랍을 가진 육중한 책상.
그리고 열어 보이지 않는 그 열아홉의 서랍들을 상상하면서 독자를 삶의 의미를 반추하게 하는
<의식>의 바다로 안내하는 니콜 크라우스의 멋진 소설을 읽고는,
옛도시의 돌벽담들로 이어진 미로같은 골목길들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거기서 싱긋이 웃어주는 어린애나 젊은이에게 홀려 길을 잃더라도 기꺼이 그 미로 속으로 뛰어들고 싶어하는 독자라면,
니콜 크라우스의 화법 속에로 풍덩, 뛰어드는 것도 즐거운 일일 거란 생각이 든다. 

"소설은 길을 따라 산책하는 거울"이란 말을 스탕달이 좋아했다던데,
니콜 크라우스의 거울에 홀려 산책과 유영을 즐기노라면 언제인가 발바닥에 닿을지도 모르는 그레이트 하우스가 슬쩍 느껴지기도 할지 모르니 말이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파워북로거 지원 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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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8-11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용구들이 너무 아롱져서, 이 책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 부분만 인용해주셔서 그런지 몰라도.. 마음에 제대로 다가오는 글귀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글샘님께서 올려주신 이미지와 굉장히 비슷하네요.

조근조근하지만, 사랑스럽고 또한 심연과 같이 깊이를 볼 수 없는 어떤 것들... 그런게 그리워지는 날입니다.

글샘 2011-08-12 02:39   좋아요 0 | URL
재미있어요. 제 책을 선물로 드리고 싶지만... 몇 페이지가 인쇄되지 않은 파본이라는... ㅠㅜ

sslmo 2011-08-12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 도시의 끝에서 끝이 시작되는 미로같은 마을길을 느껴보고 싶어서...
전 장르소설 몇 권 밀어두고 오늘 시작했어요.

글샘 2011-08-21 13:40   좋아요 0 | URL
장르소설처럼 박진감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얼키고 설키게 하는 라인이 있긴 하지만, 그건 뭐 스릴러완 다르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