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올해도 5월이 다 가고 있다.
곧 유월이 오는데 날이 왜 이렇게 추운지 모르겠구나.
하복을 입어야 할 날이 다 됐는데, 감기 조심하렴.
아이들이 두통약 찾으러 교무실에 많이 오더라 

오늘부터는 조선 시대의 대표 장르인 시조를 좀 살펴 보자.
시조는 짧은 속에서 다양한 주제와 표현 방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시험에도 내기 좋은 분야이니만큼 읽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전에 가사 작품으로 정철의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살펴 보았고,
시조로는 이황의 <도산 십이곡>을 읽은 적이 있지. 
오늘은 시조하면 생각나는 시조의 달인, 윤선도의 '만흥'이란 시를 읽어 보자.
'만흥(漫興)'이란 말은 '저절로 일어나는 흥취'란 뜻이란다.
'만'자가 '넘쳐흐를 만'이니 자연을 감상하는 넘쳐흐르는 흥겨운 기분이란 뜻으로 보면 되겠다. 
(게으를 만 慢자가 아닙니다. ^^)

소학 언해 같은 데서도 잘 드러나듯,
조선 양반들의 삶의 목적은 무엇보다 <입신 양명>이었단다. 
몸을 상하오지 아니함이 효도의 <비롯함>이요,
입신하고 양명함이 효도의 <마침>이라는 글이 소학에 들어 있지. 

출세하고 이름을 떨쳐 이로써 부모의 이름을 현저하게 함이 효도라고 가르치지만,
그제나 이제나 정치란 것은 권력을 밀고 당기는 일이라,
한번 성하면 한번 쇠하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임금의 사랑을 가득 받을 때도 있으면,
임금에게서 멀어져 모함을 당하는 때도 있는 법. 

임금에게서 가까이 있을 때는 충성을 다하면 되지만,
귀양이라도 갔을 때는 <충신 연주지사>를 부르며 임금에 대한 사랑을 읊어대야 하는 것이었지.
그렇다고 귀양지에서 맨날 서울로 목을 빼고 학수고대하며 임금의 총애를 기다릴 수만은 없는 법.
폼을 잡으려면,
<안빈낙도 : 비록 가난해도 즐기는 도>
<안분지족 : 분수에 만족할 줄 아는 자세>
<강호한정 : 자연에서 한가롭게 노니는 태도>
<자연친화 : 자연과 가까이 지내며 즐기는 모습>
<물아일체 : 자연과 하나가 되는 상태> 
이런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 양반의 바람직한 태도라고 여겼단다. 

이런 측면에서 보길도로 귀양갔던 윤선도의 마음이 담긴 시들을 한번 살펴 보자꾸나. 
이 시는 작가가 보길도로 유배되었다가 풀려나서 해남의 금쇄동에 은거할 때 지은 총 6수의 연시조이다.
이 시 역시 자연에 묻혀 살면서 분수에 맞는 즐거움을 누리는 유유자적한 경지를 노래한 것이지.
우선 한 수 한 수 살펴보자꾸나.

[가]

산슈간 바회아래 띠집을 짓노라하니
그 몰론 남들은 웃는다 한다마는
어리고 햐암의 뜻에는 내 분인가 하노라 

[해석] 자연 속에서 바위 아래 띠집을 짓고자 하니 
          그 뜻을 모르는 남들은 비웃기도 한다마는 
          어리석고 시골뜨기인 내 생각으로는 그것이 바로 나의 분수인가 생각하노라

山水는 자연이지. 그 바위 아래 초가집도 아닌 띠집을 지었어.
초가지붕은 볏짚을 쓰는데, 띠지붕은 강가의 갈대같은 걸 쓰니 더 낮은 품질의 평민 주택이겠다.
양반이 시골 궁벽한 곳에 초가를 짓고 사니 남들은 비웃겠지마는
어리석은 촌놈인 내 뜻에는 내 분수에 맞다고 생각한다는 이야기야.
한자로 나타내면 '안분지족'이 되겠지. 계속 보자. 

 

[나]

보리밥 풋나믈을 알마초 머근 後에
바횟긋 믈가의 슬카지 노니노라
그나믄 녀나믄일이야 부럴줄이 이시랴

[해석] 보리밥과 풋나물을 알맞게 먹은 후에 
          바위 끝 물가에 가서 실컷 노닌다. 
          그 밖의 다른 일은 부러울 줄이 있으랴.

이제 가난한 생활이 드러난단다. 안빈낙도지.
보리밥에 풋나물일망정 알맞게 먹고,
바위 끝 물가에 나앉아 실컷 노닌다.
그러면 '그 남은 여 남은 일'은 부러워할 것이 더이상 없다는 이야기지.
'그 남은 여 남은 일'은 '그 밖의 다른 일들'을 가리키는 말로 '출세' 같은 속세의 미련을 가리키는 말이란다.
그치만, 정말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말조차 할 필요 없을 텐데...
쬐끔은 관심이 있어 보이지? 

바위 끝에 앉아서 무얼 할까?
옛날 선비들의 그림 중, '고사관수도'란 그림이 있단다.
'고사', 곧 뛰어난 선비가, '관수' 물을 바라보는 그림이지.
<노자>라는 책에 <상선약수 上善若水>라는 말이 있지.
'가장 훌륭한 것은 물과 같다'는 말.

물은 높은 곳에 올라가려고 굳이 애쓰지 않고,
낮은 곳에 편편하게 고여있기 좋아하지.
평등하게 있지만, 앞을 가로막는 넘이 있으면 과감하게 뛰어넘고,
그래도 심하게 가로막으면 둑을 확 무너뜨려 버린단다.
유유히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는 선비는 그 물의 성정을 배우려 했는지도 몰라. 

아래 그림은 강희안의 <고사관수도>란다.
          



[다]

잔들고 혼자안자 먼뫼흘 바라보니
그리던 님이오다 반가옴이 이리하랴
말삼도 우움도 아녀도 몯내 됴하하노라

[해석] 술잔을 채워들고 혼자 앉아 먼 산을 바라보니 
       그리워하던 임이 온다 한들 반가움이 이보다 더하랴. 
       말도 하지 않고 웃지도 않지만, 산을 즐기는 것을 마냥 좋아하노라.  

혼자서 술잔 들고 먼 산을 바라보고 있어.
자연 친화지.
근데, 그리워하던 님이 온다고 해도 이렇게 반가울까? 이랬지.
누가 더 좋은 거야?
그렇지. 자연이 더 좋은 거지.
근데, 여기서 <그리던 님>은 결코 <임금>이 아니란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이 온대도 자연이 더 좋다... 이런 거지, 임금보다 낫다... 헐~
왕조 시대엔 결코 등장할 수 없는 표현이겠지?  

이 시조의 종장에 자연을 좋아하는 이유가 등장한단다.
<말씀도 웃음도 않>기 때문에 못내(어쩔 수 없이) 좋아한다는구나.
인간은 왜 <아부의 말>과 <아부의 표정>을 짓곤 하잖아.
그것은 곳 같은 편인 척 하던 사람들이 언젠가는 적이 되곤 하는 인간사를 비판하는 뜻도 담겼겠다.
자연은 친한 체 하지 않아도, 언제나 변치않고 그곳에 있으니 사랑할 만 하다는 것이지.
상대적으로 인간은 얼마나 얄팍하게 변하는 존재인가... 이런 반성도 들었고.  

 

[라]

누고셔 三公도곤 낫다하더니 萬乘(만승)이 이만하랴
이제로 헤어든 巢父許由(소부허유)ㅣ 냑돗더라
아마도 林泉閑興(임천한흥)을 비길곳이 업세라

[해석] 누가 말하길 전원 생활이 정승 노릇 하는 것보다 낫다 하더니 만승을 지닌 천자인들 이만하랴
         이제 헤아려 보니 소부와 허유가 약았더라. 
         아마도 자연 속에서 노니는 한가로움은 비할 곳이 없어라. 

누군가가 삼정승보다 낫다고 했어.
무엇을?
자연 속에서 안빈낙도 하는 생활이지. 

간혹 <귀거래 歸去來>라는 말도 있는데,
벼슬을 사양하고 시골에 낙향하여 평안한 삶을 사는 태도를 뜻해.
그런 내용을 글로 쓴 것을 <귀거래사>라고 하지.
버드 나무를 다섯 그루 심었다는 오류(五柳) 선생 도연명의 귀거래사가 유명하단다. 

화자는 좀더 뻥쳐서 황제보다 안빈낙도가 좋대.
이제 생각해 보니 중국의 고사 속의 은사(隱士)들로 유명한 인물 '소부, 허유'가 약았던 인물들 같대.
아마도 자연을 즐기는 강호한정보다 나은 것은 세상에 없을 거라네. 

자연을 즐기는 마음이야 참으로 행복했겠지만,
왠지 씁쓸한 맛이 담긴 것 같기도 하구나.
버림받은 자가 스스로 위로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마]

내셩이 게으르더니 하날히 아라실샤
人間萬事(인간만사) 한 일도 아니맛뎌
다만당 다토리업슨 江山을 딕회라 하시도다

[해석] 내 본성이 본래 게으름을 하늘이 아셨던지 
        인간 세상 수많은 일 중에서 어느 것 하나도 맡기지 않고 
        다만 서로 차지하려 다투지 않는 강산을 지켜라 하시었구나. 

여기 와서는 자신에게 어떻게 이런 복이 떨어졌나, 행복해하는 거지.
나는 게으른데, 하느님이 그걸 아시고, 세상의 아무 일도 맡기지 않으신 거야.
다만 다툴 사람이 없는 자연을 지키라 하셨으니, 화자는 그저 자연을 즐길 뿐이지.
캬, 안빈낙도, 안분지족, 자연친화의 감정이 확 밀려오지? 

그렇지만...
사대부는 100% 안분지족을 꿈꿀 수 없단다.
자연에 묻혀있을 때는 선비(士)지만,
입신 출세하여 임금을 보필하면 대부(大夫)가 되는 것이 '사대부'니 말이지.
언제든 <당신이 부르면 달려갈거야, 무조건 무조건이야>할 준비가 되어있단 말을 덧붙여야 안분지족이 완성된단다.

[바]

江山이 됴타한들 내分으로 누얻나냐
님군 恩惠 이제더옥 아노이다
아므리 갑고쟈 하야도 해올일이 업세라.

[해석] 자연을 즐기는 생활이 좋다 하나 보잘 것 없는 나의 분수로 그게 가능하겠느냐? 
          임금의 은혜를 이제야 더욱 알겠도다.  
          아무리 갚고자 하여도 갚을 길이 없구나.

이렇듯 자연이 아무리 좋다 한들, 자신의 분수로 어찌 얻겠느냐.
임금의 은혜는 이제 더욱 알겠구나.
아무리 갚으려 하여도 할 수 있는 일이 없구나. 

캬, 이 정도면,
안빈낙도, 자연친화에서 <충신연주지사>까지 쫙 잘도 달렸지?  

이 시의 배경인 금쇄동 일대는 해남 윤씨 고택(古宅)에서 멀리 떨어진 산속에 있어 아무도 그 위치를 몰랐대.
그러다가 최근에서야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윤선도가 여기 은거하기 시작한 때는 반대파의 탄핵을 받아 유배되었다가 돌아온 직후였어.
그는 가문의 일마저 아들에게 맡기고 산속에서 십여 년간 혼자 지냈다는구나.
살 집은 물론 정자와 정원까지 조성해 놓고 날마다 거닐며 놀았다고 해. 
자연 속에서 유배 체험에서 입은 상처를 치유하려는 목적도 있었다고 봐야겠지. 
‘다툴 이 없는 강산’ 같은 말은 정쟁이 벌어지는 현실과 대비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겠고. 

자연을 노래한 한시 중 '최치원'의 시가 있는데 한번 읽어 보렴.

첩첩 바위 사이를 미친 듯 달려 겹겹 봉우리 울리니,
지척에서 하는 말소리도 분간키 어려워라. 
늘 시비(是非)하는 소리 귀에 들릴세라.
짐짓 흐르는 물로 온 산을 둘러버렸다네. <최치원, 제가야산독서당>  

狂奔疊石吼重巒(광분첩석후중만)

人語難分咫尺間(인어난분지척간)

常恐是非聲到耳(상공시비성도이)

故敎流水盡籠山(고교유수진농산)

'가야산의 독서당을 노래함'이란 한시야.
이 시는 '만흥'과는 분위기가 다르지?
'만흥'이 자연과 인간의 교감이 중시된 노래,
곧 자연친화적인 노래라면,
최치원의 '제가야산독서당'은
인간 세상의 시비하는 소리가 싫어서,
짐짓 흐르는 물로 온 산을 둘러버려서 세상과 단절을 기하고 있는 노래지.
곧, 자연과 인간은 상반된 속성을 가지고 있어 보인단다. 

이렇게 사대부의 삶은,
비록 지금은 상황이 여의치 않아 자연 속에 머물고 있지만,
좋은 시절만 만나면,
다시 임금님 곁으로 가서 훌륭한 정치를 펼치려는 야망을 담고 있는 것이라 봐야겠지. 

힘들 때라고 해서 한숨만 쉬기보다는,
자기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즐기는 자세도 바람직한 태도의 하나일 것 같구나.
그런 말이 있잖아.
<과거에 후회하지도 말고, 미래를 불안해하지도 말고, 현재를 잡아라>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이런 말들은 '죽은 시인의 사회'란 영화에 나왔던 말들인데,
삶의 힘든 순간에 기억해둘 법한 이야기기도 한 것 같아 적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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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5-30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방금 퀴즈 하나, 수업 한타임 듣고
헉헉 대다가 이 글을 읽었답니다. 그런데....... 머리 속에서 쏴아하고 외치네요.
한글로 풀어진 글도 좋지만, 원문이 참 좋군요. 호젓하고 숨을 터주고.

그런데 옛분들의 글귀는 매우 훌륭한데도 여전히 임금을 그리워한다는 것이 신기해요.
(음, 사회 교육의 효과랄까... 이런,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 하는 제 모습이 또다시 보이네요.)

글샘 2011-05-31 08:26   좋아요 0 | URL
원문을 읽는 맛이 나죠.
평시조는 원래 창으로 부르던 노래였대요. 시조창이라 하죠.
조선 후기로 가면서 연시조가 등장하는데, 이런 것들은 문학적인 가치가 높아요.
노래로 부르던 거라 입으로 읽는 맛이 특별하거든요.

왕조시대의 글을 우리 기준으로 읽으면 안되겠죠? 철저해요. 그 사람들은. ㅋ
우리도 거기 입각해서 읽어야죠.

pjy 2011-05-31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들쑥날쑥한 날씨에 감기조짐이 보여서 찬물말고 따뜻한 녹차 먹고 있습니다^^;
게으를'만'이라니 "만흥" 땡깁니다ㅋ 맘에 쏙드는 제목입니다~
근데 시를 보니 한가롭고 좋고 세상에 이렇게 편할수가 없는데, 그걸 왜 임금님한테 감사해야하는지는 @ㅅ@; 내쳐줘서 덕분이라는 뜻인가요ㅋㅋ

글샘 2011-05-31 12:12   좋아요 0 | URL
그래요. 따뜻한 녹차로 드세요. ^^
게으를 만... 좋아하면 살쪄요. ㅋㅋ

왕조 시대의 패러다임이죠. 무조건 복종. ㅎㅎ
오늘 쓴 페이퍼 보시면,
임금도 임금이지만, 당파간의 대결에서 살아남으려면 연군, 연주...는 필수였던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