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 - 이덕무 청언소품
정민 지음 / 열림원 / 200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독서토론반 아이들을 데리고 도서관 구경을 갔던 날.
원래는 도서관 앞산을 산책하며 중간고사 스트레스를 좀 날리려 했는데,
금세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을 보면서 도서관 구경만 했다. 

우연히 맞닥뜨린 이덕무의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
너무 가난해서 한서로 이불처럼 덮었다는 둥, 논어로 병풍처럼 막았다는 이야기인데,
가난 속에서도 책만 읽는 바보의 사고는 끝없이 펼쳐진다. 

신선이란 마음이 담백하여 때에 얽매임이 없으면 도가 원숙해지고 금단이 거의 이루어진다. 

이렇게 신선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공부를 한 모양이다.
마음을 담백하게 하는 것은,
욕심을 버리고,
집착도 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현재에 몰두하는 것이리라.
때에 얽매임이 없다는 것은,
지금 이 일을 꼭 마쳐야 할 것처럼 열을 내고,
이 나이때는 꼭 이런 사람이 되어 있어야 할 것처럼 골몰하느라,
현재의 자신이 가진 가치를 잊고 사는 사람이 되지 말자는 뜻이리라. 

마음을 담백하게,
때에 얽매임이 없이 사는 삶.
아, 말은 간단하지만,
반야심경의 그 숱하게 많은 '빌 공 空'자 하며, '없을 무 無'자가 가리키는 바가
인간이란 참으로 많은 '색'과 '신체의 망상'에 끄달리는 존재가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게 한다. 

세모시 가는 실이 호박 구슬을 자르고, 얇은 판잣조각이 쇠뿔을 자른다.
군자가 근심을 예방함은 소홀히 하기 쉬운 것을 삼가야 한다. 

작은 금이 가 있는 상태를 방치하면 굵은 금으로 발전하듯,
장차의 근심거리를 예방하려면,
소홀히 여기기 쉬운 것을 미리 삼가야 한다.
그래서 홀로 있을 때조차도 <경건>하게 여기라는 '위기지학'으로서의 퇴계의 말씀이 오래 남는 것이다. 

시문을 볼 때는
먼저 지은이의 정경을 살펴야 하고
서화를 평할 때는
도리어 저자신의 마음가짐과 됨됨이로 돌아가야 한다. 

시를 읽을 때, 글을 읽을 때는, 지은이가 처한 상황을 살피면서 읽어야 한다.
그저 제 멋에 겨워 칭찬하거나 폄하해선 안된다는 이야기겠다.
글씨와 그림을 평가하는 자리에선,
제 자신의 마음가짐과 인격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은 곧,
제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남을 탓하고 비평하지 말라는 말이렷다.
마치 얄팍한 재주로 남의 글을 비평하는 글을 써두고는 재치있는 표현을 한 것인 양 우쭐하는 나같은 사람에게 경고하는 글이다. 

어린 아이가 거울을 보다가 깔깔 웃는다.
뒤쪽까지 터져서 그런 줄로만 알고 급히 거울 뒤쪽을 보지만 검을 뿐이다.
그러다가 또 웃는다.
그러면서도 어째서 밝아지고 어두워지는지 묻지 않는다.
묘하구나
구애됨이 없으니 스승으로 삼을 만하다.

인류의 원죄는 '선과 악'을 구별하려는 순간부터라고 성경에 씌어있다.
그 원죄를 대속하신 예수님은 '옳고 그름'을 구별하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에 따른다.
어린 아이와 같은 자가 천국에 간다는 이야기를 이덕무도 하고 있는 것이다.
밝아지고 어두워짐에
구애됨이 없는, 분별력을 발휘하지 않는 순수함의 스승이란...  

남의 문장에 대해 망령되이 논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지극히 미세한 일이지만 큰 재앙이 이 가운데서 일어나지 않음이 없다. 

자기의 생각으로 자신의 글을 엄격히 적을 뿐이지,
남의 문장에 대하여 함부로 논하는 일의 엄중함을 재삼 강조하는 글이다. 

조선의 학자들의 글읽는 자세를 본받을 만 하다.
그들은 글을 가슴 속에 담아 두고 수백, 수천 번 곱씹으면서 자기의 것으로 만들려 하였다.
자기의 것이 된 글은, 곧 그 사람 자신이 되어버리는 것이기도 하다.
책을 반복하여 읽는 일은,
자신이 선 자리를 돌아보는 일이고,
자신이 하는 일을 늘 반성하는 일이다.
그저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말을 빌리고 글을 훔치는 자들과는 근본이 다르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하지만,
그 길은 결코 왕도는 아니다.
가시 면류관으로 가득한 길이고,
옳음을 알기에 가지 아니할 수 없는 통곡의 길이기도 하다.

글의 겉멋만 만나고 흥얼거릴 노릇이 아님을 생각한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실 2011-05-09 0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곳 학생들도 학교가는 토요일에 도서관에 와서 독서토론 해요. 방 빌려주지요~~~
어린이를 스승으로 삼을수도 있다는 자세. 음 좋은데요.
이번 한주 모토로 삼아야 겠습니다.

저두 요즘 잠이 없어졌어요. 하루에 5시간 자네요.
몽땅내사랑에서 전이사가 하루에 10분만 자도 괜찮다고는 하더만 저는 7시간은 자야 개운한데
아 피곤해.........

글샘 2011-05-09 08:56   좋아요 0 | URL
헐~ 하루 5시간...
연속극에서 무슨 말을 못하겠어요. ㅎㅎ

갈수록 잠 못 잘 일만 가득 생기네요. 날씨도 흐리멍텅하고... ^^

석란1 2011-05-23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은 때가 있다고 하지요. 정말 그 말이 가슴에 팍 와 닿는 기분입니다. 요 몇년 저는 한문학에 푹 빠졌습니다. 옛날엔 고리타분하다고 느껴지던 것들이 끌리는 걸 보면 살만큼 살아서 고전을 이해할 수 있는 때가 되었다는 느낌입니다. 잘 계시죠?

글샘 2011-05-23 10:37   좋아요 0 | URL
맞아요. 때가 있죠.
한문학... 석란님께 잘 어울리는 분야입니다. ^^
고전은 살만큼 살아야 다가오는 게 맞아요.
아이들에게 괜히 고전고전 할 필요 없다니깐요.
님도 잘 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