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에서  

                                           나희덕

길을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터덜거리며 걸어간 길 끝에
멀리서 밝혀져 오는 불빛의 따뜻함을 

막무가내의 어둠 속에서
누군가 맞잡을 손이 있다는 것이
인간에 대한 얼마나 새로운 발견인지 

산속에서 밤을 맞아 본 사람은 알리라
그 산에 갇힌 작은 지붕들이
거대한 산줄기보다
얼마나 큰 힘으로 어깨를 감싸 주는지 

먼 곳의 불빛은
나그네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어가게 해 준다는 것을

그대. 

아파하지 말게나. 
슬퍼하지도 말게나. 

설혹,
어느 날,
뒷머리가 너무 무겁고 지쳐서
병원을 들렀다손 치더라도,
그래서 몇 시간만 늦었더라면 뇌혈관이 터져서 큰 병으로 진행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이런 삶에 무거운 경고를 들었다손 치더라도, 

몇 시간 일찍 병원에 들렀던 덕분에,
그리고 삶에서 모든 것을 내려 놓을 수 있는 것이 우리 사는 나날임을 배울 기회를 얻은 것에
우리 고맙게 사세. 

비록
건강에 자신감을 가진다고 오만하진 않았지만,
삶이란 놈은
내가 제어해 나갈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나는 아직도 젊은 나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오던 나날이었음에 부끄러워할 것도 없을 걸세. 

고통의 순간을 겪음으로써,
인간의 한 호흡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이루며,
살아있다는 단 하나, 그것이
천상천하 유아독존.
나의 존재만이 천상천하 최고의 가치임을 배우게 하지 않았던가. 

그대가 배운 교훈은 
비록 날마다 운동을 하는 단조로운 삶을 영위하며
존재하기 위해 힘써야 함이라는 사실일는지 모르지만,
어쩌면,
그 하나의 교훈을 모르는 인간들이 만드는 세상사는
또 세상을 아픈 줄도 모르고 아프게 사는 일에 다름없는 일이 아닌가 하네. 

그대,
절망을 만났던 그 곳에서,
비로소 희망이 터질 수 있음을 배웠다고 하는가?  

그렇게 인간은 어리석은 존재일지도 모른다네.
길을 잃어 봐야
자신이 걸어왔던 길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었던가를,
풀포기 그늘진 나무 그늘의 향그런 내음새들이
얼마나 사랑스런 것이었던가를,
새삼 깨닫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군. 

아니,
길을 잃어 보면
모든 아름다움과
향기로움과
세심한 고마움으로 얽힌 것들의 연속이고 지속임을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일지도 몰라.
그리고 잃고 나서야
비로소 향기와 아름다움의 가치가 고마운 것임을 얻게 되는 건지도 모르고 말이야. 

길을 잃었을 때,
자신과 같은 처지였던 사람이,
저 멀리서
멀리서 밝히는 하나의 불빛이
그렇게 의지가 될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는 거지.
인간은 그렇게 어리석게 살다 가는 존재인 게지. 

길을 읽었을 때,
비로소
세상은 막무가내의 어둠 속임을 깨닫게 되는 거지.
그래서 좌절하려는 순간,
비로소,
맞잡을 손이 거기에 있다는 것이,
이적지,
지옥이었던 타인이,
타인과의 비교가,
타인으로 인한 부러움과,
타인으로 인한 부끄러움과,
이 모든 것들이 속절없이 가벼운 것들이었음을
만나게 될는지도 모른다네. 

내가 굳이 이것은 버리고 저것은 얻으려 애썼던
그 가치라고 내세우던 것들 역시,
아무런 가치로움 없는 것임을,
내 몸을 통해 가르치려 하는 운명의 힘을
고맙게 여길 수 있게 된다네.
고맙게도. 

산 속에서  
어둠 속에서
좌절의 구렁텅이에 빠져 살아본 사람만은 알 거야.
산줄기들의 어두움은
새까만 어두움보다는 두렵지 않음을...
산줄기가 보이는 정도의 어두움은
새까만 어둠의 지경보다는 밝은 것임을...
아무리 작은 지붕 속의 삶이라도,
아무리 팍팍한 삶들의 연속일지라도,
죽음의 그 거리감 앞에서
얼마나 큰 힘으로 어깨를 감싸주는 동지가 되는지 말일세. 

그대,
만나 보았나?
만나 보기나 했던가? 

그저 쉬어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꿈꾸던 그대가
쉼보다 계속 걸어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임을 느끼게 되는 그 순간을 만남이,
삶의 본질보다,
실존의 가벼움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되는 순간임을,
그리고,
먼 곳의 불빛이
비로소 나그네 삶의 쉼보다
나그네의 걸음걸이에 더욱 즐거운 노랫가락을 덧붙여 줌을 말이지. 

그대,
거기 살아 줘서 고맙네.
그리고
나도 이제 욕심내지 않기를 빌어 줘서 진정 고맙네. 

삶이란
그대나 나라는 인연의 고리를 벗어나,
한 순간 숨 쉬는 것임을 배우는 일임을,
불빛을 바라보며 걸어갈 때,
마음을 내려 놓고 그저 걸어가는 것이 소중한 일임을
배우는 순간들에서야
비로소
의미를 얻게 되는 건지도 모를 일일세. 

먼 곳의 불빛이란,
이름이 불빛일 뿐. 

삶에 불빛도, 팔뚝도
내가 지금 숨쉬는 것에 비한다면,
해골바가지의 한 모금 물인지도 모른다고 그랬던가.
그토록 달디 달았던 물도,
한 순간,
한 호흡 돌이키고 나면,
그토록 역겨운 물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고 그랬던가. 

고마우이.
산 속에서 길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길을 걸어가고 있음의 고마움을 알게 됨을 가르쳐 준 그대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네. 

이슬맞은 나그네라야만,
비로소 추녀 밑의 차가운 자리라도
고마운 베풂임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임도...
비로소 배울 수 있다네. 

산 속에서 만난,
그대와,
그대의 먼길과,
나의 앞길과,
지금 이 순간의 삶. 

그대.
고맙네. 

그리고,
우리 부디 잊지 말고 사세.
지금 나를 잠들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야말로,
나의 호흡에 가장 방해물이 되는 것임을. 

그리고, 나의 호흡만큼 중요한 것은 세상에 아무 것도 없음을 말일세.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양철나무꾼 2011-05-04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인과의 비교가,
그로인한 부러움이 저를 곧추 세우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었는데 말이죠.
절, 좀 부끄럽게 만드시는군요~ㅠ.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벅(__)

글샘 2011-05-04 12:50   좋아요 0 | URL
비교와 부러워함이
그리고 적절한 스트레스가 삶에 활력을 주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적절한 스트레스를 즐기다 보면,
어느새 괴물로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서 마주하게 되잖겠습니까?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쉬운 사실을
매일 되뇌고 살아야 할 나이입니다.
나도 그대도... ^^

세실 2011-05-07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젠 다이어트가 아닌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루만 걷지 않아도 목이 뻣뻣해요.
요즘 제가 길을 잃은 걸까요? 저는 똑바로 가고 있는거 같은데.....
포용력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비 오는 토요일 아침은 참 운치있어요. 오늘처럼요^*^

글샘 2011-05-07 20:49   좋아요 0 | URL
늙었어. 늙었어요... ^^
저는 목은 안 뻣뻣한데,
밤에 잠을 못 잔답니다. ㅠㅜ
너무너무 피곤해서 누웠는데,
두시간 세시간, 꿈지럭거리면서 일거리가 떠올라서요. 이거 나쁜 징조예요.

비 오는 토요일 아침... 지금은 안개낀 토욜 밤인데, 참 운치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