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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의 일기 ㅣ 올 에이지 클래식
안네 프랑크 지음, 최지현 옮김 / 보물창고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안네의 일기를 삼중당 문고 작은 책으로 첨 읽은 게 중학교 때쯤이었나보다.
상상 속의 안네는 옹색한 공간에서 갑갑한 생활을 하면서도 톡톡 튀는 끼를 발산하지 못해 안달이다.
늘 상상과 현실을 오가며 멋진 일기를 완성한다.

그러나, 안네는 영원히 소녀 시절에 묻히고 만다.

실제 무덤이 아닌 상징적 무덤 속에서 안네는 웃고 있을까?
인류의 가장 잔혹한 역사 중 한 순간인 시클로 가스실 안에서 안네는 어떤 생각을 하며 눈빛을 잃어 갔을까.

살고 있어도 사는 것이 아닐 것처럼 보이는 공간에서 안네가 펼친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는,
그의 부재를 기화로 하여 오히려 안네를 영원히 남게 하였다.
1944년 8월 1일 '모순 덩어리'로 시작하는 일기를 쓰고,
안네는 언니 마고트와 아우슈비츠로 간다.
베르벤-벨젠 수용소에서 언니 마고트는 티푸스로 죽고, 안네도 충격으로 죽는다고 한다.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영국군은 수용소를 모두 태웠고, 시신도 모두 태워 한 구덩이에 묻는다.
그들의 무덤도 상징적 무덤일 뿐이다.
안네가 1944년 3월 14일에 쓴 일기에서,
아, 전쟁이 4년째 접어들었어. 지긋지긋해.
이 썩어빠진 비즈니스가 끝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쓰고 있다.
열 세 살 소녀가 전쟁을 <비즈니스>라고 표현했다니.
아마도 그 아이가 살아있었다면 훌륭한 통찰력을 가진 사회학자가 되었을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반전 작가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고,
한나 아렌트처럼 폭력에 대한 연구를 평생 했을 것 같기도 하다.
'정말 누군가와 간절히 이야기 하고 싶어져서...'
이런 구절이 숱하게 등장한다.
그래서 '키티'를 창조하고, 페터와 대화를 나누지만, 안네의 마음을 채워줄 상대는 없다.
그가 간절히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더 들어주고 싶지만, 그는 없다.
무서운 세상은 무심히 돌아간다.
안네가 지긋지긋해하던 비즈니스는 아직도 지구 어느 모퉁이를 돌아,
여전히 바삐 일하는 넥타이 맨 사내에 의해 자행되고 있음을 생각하면... 사는 일도 참 부질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