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열도는 지진으로 깊은 시름에 빠진 이 시각에도,
열사의 중동에선 유럽 강대국들이 약소국을 침범하는 포성이 멈추지 않는다.
인간은 왜 저렇게도 피흘리며 싸워서 조금이라도 더 가지려 하는지... 

리비아라는 작은 나라는 카다피라는 독재자가 오랫동안 집권하고 있었는데,
2월 중순에 민주화 시위를 카다피가 진압하면서 민간인을 살상했던 모양이야.
그런 틈을 타서 국제사회의 돈많은 나라들은 리비아를 이라크처럼 잡아먹으려고 달려들고 있단다. 

맨날 '세계 평화를 위해서 폭탄을 쏘는 미국'은 '민간인을 위해서 폭격'을 감행한단다.
미국 폭탄은 민간인은 안 죽이는 모양이야. 훌륭한 폭탄이지.
왜 세상은 늘 똑같은 식으로 돌아가는지...
어쩌면 미국은 이렇게 전쟁을 치르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나란지도 모르겠다. 


 

어느 시대나 힘 가진 자는 더 먹으려 하고,
자기가 <질서>라고 외치지.
못 가진 자는 그 <질서>가 맘에 안 들고, 대들면 다치고...
그 와중에 산중에 들어가 조용히 살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고,
조국을 위하여 충성을 다 바치겠습니다.  하고 아부하는 사람도 있어. 

전자처럼 조용히 살면서 술이나 마시려던 시인 '이백'은 시선으로 떠받들고,
후자처럼 우국충정의 시를 쓰던 시인 '두보'는 시성으로 존경하지만,
막상 조선이라는 나라는 '두보의 시'는 엄청 번역해서 뿌렸지만, 이백의 시는 괄시했단다. 

조선은 왕국이라고 했지?
오로지 왕의 행복만이 중요한 나라.
그러니, 조용히 술마시고 즐기는 삶은 널리 가르칠 <유교>적 질서와 무관한 거야.
오히려 유교적 질서처럼 '말 좀 잘 들어라~'하는 것과는 다르지.
그래서 '두시언해'는 엄청 번역해서 돌린 거란다.  

조지훈의 산중문답을 한 편 보자. 

(새벽닭 울 때 들에 나가 일하고
달 비친 개울에 호미 씻고 돌아오는
그 맛을 자네가 아능가)

(마당 가 멍석자리 쌉살개도 같이 앉아
저녁을 먹네
아무데나 누워서 드렁드렁 코를 골다가
심심하면 퉁소나 한 가락 부는
그런 멋을 자네가 아능가)

(구름 속에 들어가 아내랑 밭을 매면
늙은 아내도 이뻐 뵈네
비온 뒤 앞개울 고기
아이들 데리고 낚는 맛을
자네 태고적 살림이라꼬 웃을라능가)

(큰일 한다고 고장 버리고 떠나간 사람
잘 되어 오는 놈 하나 없네
소원이 뭐가 있능고
해마다 해마다 시절이나 틀림없으라고
비는 것 뿐이제)

(마음 편케 살 수 있도록
그 사람들 나라일이나 잘 하라꼬 하게
내사 다른 소원 아무것도 없네
자네 이 맘을 아능가)

노인은 눈을 감고 환하게 웃으며
막걸리 한 잔을 따뤄 주신다.

(예 이 맛은 알만합니더)

청산 백운아
할 말이 없다. <조지훈, 산중문답(山中問答)>


이 시는 두보보다는 이백의 시에 가깝겠지?
이백의 '산중문답'이란 시도 있으니 패러디한 거나 마찬가질거야. 

이 시에서 괄호의 역할은 따옴표 " "와 같은 구실일거야.
대화를 말하는 거지. 

앞부분에서 '노인'이 다섯 마디를 했어.
1. 조용히 농사짓는 맛, 자네는 아는가?
2. 그저 조용히 먹고 자는 맛, 자네는 아는가?
3. 늙은 아내와 아이와 조용히 사는 맛, 비웃겠는가?
4. 출세보다 소원은 평화로이 추수하는 거야.
5. 마음 편하게 살도록 정치가가 잘 하길 바래. 이 마음 아는가? 

노인은 '입신양명'하려는 사대부들의 욕망따위는 '그들'의 것으로 치부하고 있단다.
사실 누구나 잘 살고 귀하게 되는 일은 바라고 있는 거잖아.
그렇지만, 누구나 부귀영화를 누릴 수는 없는 거고 말이야.
그러니, 마음 편하게 즐겁게 사는 일에서 '행복'을 찾는 일이 지혜로운 것이지,
굳이 애써 네잎 클로버처럼 '행운'만을 좇는 일은 드문 확률에 기대는 어리석은 일임을 조용히 말하는 거겠지. 

노인과 손님은 막걸리 한 잔만을 권할 뿐.
예, 이 맛은 알 만 합니다.
그 맛이 막걸리 맛인지,
아니면, 산중에서 고요히 사는 삶의 맛인지... 

그런 것을 구태여 밝혀야 쓰겄는가?
청산에 졸고 있는 뜬 구름아. 무어라 꼭 말해야 알겠느냐? 

하~
이렇게 평화로운 곳이 세상이라면 얼마나 좋으랴만,
화자도 <정치가들에게 잘 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세상은 늘 어지러운 곳이란다.
일본처럼 자연재해가 일어나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인간 만사 정치와 얽히는데, 그것에 너무 마음쏟다보면 참 허무하고 더럽지. 

오늘은 일요일 밤이니, 간단하게 이백의 원시 <산중문답>을 한번 읽자.

문여하사서벽산(問余何事棲碧山)
소이부답심자한(笑而不答心自閑)
도화유수묘연거(桃花流水杳然去)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왜 푸른 산중에 사느냐고 물어봐도
대답 없이 빙그레 웃으니 마음이 한가롭다.
복숭아꽃 흐르는 물 따라 묘연히 떠나가니
인간세상이 아닌 별천지에 있다네. <이백, 산중문답(山中問答)>

전에 김상용의 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에서 '왜 사냐건, 웃지요'가 나온 적 있지.
그 원 작품이 이백의 이 시다.  

왜 이렇게 사느냐?
남자라면, 공맹을 본받아 입신양명하여야하거늘...
이렇게 말하는 것이 유교를 공부한 선비들의 이야기지.
그런데, 화자는 그저 웃는대. 

산중에 사는 것이 마음이 한가로우니 말이지.
복숭아꽃 흐르는 물에 인간세계처럼 추하지 않은 별천지가 있다는구나. 

이렇게 7자로 짝이 맞은 정형시를 7언절구라고 한단다.
넉 줄이니 기승전결의 형식을 이루고 있지. 

탈속적인 시의 대표자로 이백을 꼽는다.
그래서 조선의 유학자들에게는 환영을 받지 못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국가 체계를 왕조체계로 만드는 자들 이야기고,
풍류를 즐기던 선비들은 두보따위를 술집에서 읊진 않았겠지.  

고3이라고 맨날 공부만 하라는 건 아니지만,
중요한 시기니만큼 성실성을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최선입니까?
하는 물음에 그렇다는 답을 할 수 있으면 좋겠지? 

암튼, 우리 최선으로 살자.
최고...보다는 최선을 목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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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1-03-21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백의 '월하독작'이 생각난다는~^^

글샘 2011-03-21 01:02   좋아요 0 | URL
자작하지 마시고, 수작합시다. ㅎㅎ

pjy 2011-03-21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중문답 좋습니다..그렇죠~ 해마다 시절이나 틀림없으면 되는게 제 맘인거죠^^; 근데 왜 전 여자 팔자는 뒤웅박으로 들리는지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