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땅은 지금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고 있다.
가장 무서운 자연과의 전쟁.
인간의 오만은 높은 바벨탑을 쌓아 올려 하늘에 도전하지만,
하늘의 뜻은 그 바벨탑에 벼락을 떨어뜨리지. 

인간의 거만함은 자연의 흐름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님을,
그래서 인간이 정말 겸손해야 함을 일본 지진 사태를 보면서 느낀다. 

오늘은 한국 전쟁 중,
가난의 극심함을 심리적으로나마 이겨내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 서정주의 시를 한 편 보자.                                   

가난이야 한낱 남루(襤褸)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山)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靑山)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에 없다.

목숨이 가다 가다 농울쳐 휘어드는
오후(午後)의 때가 오거든,
내외(內外)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애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놓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靑苔)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 <서정주, 무등을 보며>

'남루'는 '누더기'야.
가난은 '누더기'다. 이런 은유를 썼다.
그럼, 둘 사이에 유사점을 찾아야겠지. 

1연에서 또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는
<갈매빛(진녹색) 등성이를 드러내고 선 여름 산>같다고 했어.
우리들(전쟁으로 누더기를 입고있는 사람들)의 본질은 당당한 멋진 사람이란 거지.

누더기를 입고 있으면 사람이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누더기가 그 사람의 본질, 멋진 본성을 가릴 수는 없는 것처럼,
가난도 그 사람의 본성을 가릴 수는 없단 이야기야.  

청산이 난초를 기르듯,
인간은 제 새낄 기른다.
힘들다고 난초를 내쳐버리지 않는 청산처럼,
전쟁기 가난하다고 새끼를 버릴 순 없다. 기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먹고 살 것이 없는 극빈의 시기.
너무 배고픔이 극심하지만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곡식.
목숨이 가다가 휘어지는 가지처럼 지친 때가 오면,
더러는 앉고, 누워서
서로 바라보며 의지하며 살 일이다.
마치 박재삼의 <흥부 부부상>을 읽는 것처럼,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부정적 현실(가시덤불, 쑥굴헝)에 놓이더라도
우리는 호젓이 묻힌 <옥돌>같은 존재다.
'청태(이끼)'가 끼었다고 옥돌을 버리지 않듯,
우리의 본질을 잊어서는 안될 일이다.

전쟁 중의 극심한 궁핍도 의연하게 이겨내자는 <의지>가 강하게 표현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전쟁 중 자식을 잃기도 하고 놓치기도 하였지만,
제 자식을 고아원에 버리기도 하였다.
극심한 가난은 인간을 무심하게 만드는 모양이다.

절제된 감성으로 부정적 현실을 이기려는 의지가 돋보이는 시.
구체적인 대상(무등산)을 보면서 그 산처럼 의지의 한국인이 되려는 마음을 먹은 거겠지.   

 

<무등산 서석대 瑞石臺, 상서로운 돌이 있는 높은 곳>

'무등 無等'이란 뜻은 불경에서 자주 보이는 말이야.
대등한 것이 없는~ 이런 뜻이지.
필적할 만한 것이 없는~ 그래서 <최상급>의 표현으로 쓰는 말이란다.
최고의 산, 최고의 명산. 무등산. 
사진의 서석대는 기둥 모양(주상)의 돌조각이 갈라져있다 해서 <주상절리>라고 부르는 지형이야.

그러나 30년 전 광주에서 군부의 쿠데타로 시민들이 죽어갈 때,
무등산은 '오르지 못할 산 無登'으로 일컬어 지기도 했어.
산으로 피할 길도 다 막아버리고 젊은이들을 학살했던 무서운 과거가 담긴 말이지.
지금도 광주의 상징은 무등이란다.
무등산 수박, 무등 양말, 무등 경기장...
무등이 <최고>란 최상급의 의미를 가진다면 멋진 이름이겠지.

간혹 서정주가 살아온 삶을 보면,
저항정신보다는 순응적 삶이 두드러지다 보니,
<정신적 승리>로 보이는 이 시도 <사치>가 아닌가? 하고 비판할 여지도 있긴 해.
힘들어도 긍정적으로 살자. 그래 놓고는 자기는 그 독재자 전두환을 엄청 숭상했거든.

다음엔 박목월의 시 <가정>을 읽으면서 가난하던 시절의 아버지 마음을 한번 살펴 보자.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 문 반(十九文半).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 문 삼(六文三)의 코가 납작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壁)을 짜 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憐憫)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 문 반.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 문 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가정, 박목월>

'지상'이란 말을 쓰니 왠지 화자가 지상 말고 다른 세계,
뭐, 하늘나라나 천국을 생각하며 쓴 시 같기도 하다. 
또는 아버지가 직장에서 퇴근해 보니
부엌이나 마루 밑 땅위(지상)에 아홉 켤레의 신발이 헝클어져 있는 모습을 생각할 수도 있지.  

아이고, 아이가 아홉이나 되니 참 많기도 했다.
현관, 들깐(다용도실)에
시인의 가정에 저녘 무렵
치수가 다른 아이들 신발이 우루루 모인 풍경. 좀 정겹지만,
가난하던 시절, 배고픈 시인이 먹여살리기엔 너무 많다. 

아빠인 시인의 신발은 19.5문(요즘으로 치면 250센티쯤)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온 아버지 시인의 길은 시련의 길, 배고픔의 길이겠다. 
그 아빠의 신발 옆에 6.3문의 막내둥이 신발.
고 귀여운 앙징맞은 크기는 아버지 신의 1/3 크기다. 참 귀엽다.
그 귀여운 신을 상상하면 아버지의 고달픈 삶도 금세 따스해 지는구나. 

검정 고무신이란 만화처럼 수십 년 전 한국은 최빈국 중의 하나였단다.
그 시절엔 정말 살찐 사람을 부러워하던 시대였어.
돼지라고 안 놀리고 '사장님'이라고 놀렸거든.
학교엔 살찐 아이들이 별로 없었고 말이야. 

미소하는, 웃는 얼굴을 보래.
여긴 <천상>이 아닌 <지상>이고
<얼음과 눈>의 시련이 가득한 세상이야. 

가엾은(연민한) 삶의 길은 시련투성이일 뿐이지. 

아홉 마리의 강아지, 강아지 같은 것들은 <귀여운 아이들>이겠지.
아버지는
<굴욕과 굶주림과 추위의 길>을 걸어온 사람이란다. 

여기는 천상이 아니라 지상이기 때문이야.
그리고 아버지는 <어설픈 존재>라는구나.
인생은 무엇이든 준비 안 된 상태에서 살아가는 것이란 이야기 여러 번 했지? 

아이들을 제대로 벌어 먹이지도 못하는 아버지는
스스로를 자조적으로 <어설픈 아버지>로 여긴다.
그렇지만... 

마지막에서 <미소하는 내 얼굴>은 진정한 아버지의 사랑이 담긴 모습이다.
비록 가난하지만 극복하겠다는 의지가 잘 드러나 있지.
가난하다고 아버지의 사랑까지 가난한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야.

이 시와 흡사한 시로 김현승의 <아버지의 마음>도 있어. 읽어 보렴.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 아버지의 동포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이 될 수도 있지만……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는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어린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로…… <김현승, 아버지의 마음>

1연에서 <바쁘고 굳세고 바람같이 만나기 힘든> 속성을 가졌던 아버지들이 등장한다.
그렇지만 집에 돌아오면,
<아이들 곁에 있고, 마음 약하고, 부드러운> 아버지가 된다고 했다. 

바쁘고 굳세고 바람같던 아버지들은 열심히 일하느라 보여준 모습이었고,
집에서의 아버지는 그저
<어린것들을 위하여 / 난로에 불을 피우고 /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일 뿐이다.
아이들이 추울까 <저녁바람에 문을 닫고 /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대.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이 된대.
전쟁이 나거나 시위가 있으면 제 자식이 다칠까 걱정이 되잖아.
일본에서도 부모들이 얼마나 자식 걱정 많이 했겠나 생각해 보면 될 거야. 

아버지는 어린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 아버지의 동포다. 

아버지가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고,
아이들은 아버지의 <전부>란 이야기지.
함께 살아갈 장소, 사람이란 이야기. 

<굳건해 보이는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아버지는 박목월의 <가정>에서처럼,
<얼음과 눈의 벽>에 사는 사람,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걷는 사람,
<어설프>지만 꿋꿋하게 살아야 하는 사람으로서의 아버지는,
그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외롭다.
겉으로는 올빽머리 근육빵빵 슈퍼맨처럼 보일지라도,
폭탄 제조자, 감옥 교정공무원, 술집 주인은 모두 터프해 보이는 이들이지만
이들은 모두 <바쁘고 굳세고 바람같은> 사람들이어야 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순수한 아버지가 된다. 

어린것들의 깨끗한 피로 인하여
씻김을 받는다.
그들이 비록 아무리 험악한 일을 하는 존재라 하여도,
아버지로서 아이를 볼 때,
그는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사람으로 변하게 됨을
<씻김>, 곧 <세례>를 받는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자식들이 있어 극복할 수 있는 아버지의 고난을 이야기하고 있지.

늘 가족을 아끼고 책임지려는 아버지의 마음.
자식들은 아버지에게 <나라>나 <민족>만큼 소중하고 무게가 큰 존재다.
박목월과 김현승의 생각은 비슷하지.
차분하고 조용한 어조로 아버지의 삶의 무게를 표현한 시들이다. 

글쎄. 아빠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사니 행복한 일이다.
그리고 지금 시대는 아빠의 직업으로도 먹고 살 만큼 벌 수 있으니 시대도 잘 타고 났고.
민우도 아빠가 되었을 때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 건지... 한번 생각하며 읽어 보렴.


댓글(4) 먼댓글(1) 좋아요(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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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3-16 0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아하시는 일을 하고 사니 행복한 일이라는 님이 좀 부러운 걸요.
오늘 페이퍼는 테드창이 떠오르네요~^^

글샘 2011-03-16 08:57   좋아요 1 | URL
저는 힘들다고 생각할 때, 저 아버지들을 생각합니다.
힘들게 지겨운 밥벌이를 하시는 아버지들을 말이죠. ^^
테드창은... ㅠㅜ 금시초문이라...

시간의안그림자 2011-04-01 1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지만, 아버지의 술잔에는 눈물이 고인다'는...
'아버지는 어슬픈 존재'라는...
마음이 시리고 여운이 흘러 내립니다^^ 이 지상에는 모성은 있지만, 부성은 없다고 말을 합니다. 왜 부성이 없다고 했는지.. 누군가를 위해서, 자식을 위해서 살아 갈 수 있는 당신이기에 아버지의 존재는 어슬픈 존재라고 해도 위대하고 너무 크 보입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그들의 희생이 있어 주었기에 오늘 우리들이 각자 자기의 자리에 안주하면서 살아 가고 있는 거 겠죠^^ 그런 것 같습니다. 많이 권위적이었고 엄했던 내 아버지와 지금의 내 남편이자 딸 아이의 아빠가 되어 버린 30, 40대 아버지를 들여다 봅니다. 아버지는 한결 같아 보입니다. 내 아버지가 왜 딸 자식한테 엄격했어야만 했는지, 30,40대 아버지란 이름 역시 그러하다는 시실과 현실을 보면서 아버지는 생명이 세상에 붙어 있는 한 가족들을, 자식들을 지키고 보호해야 만 되는 자라는 사실을, 새대의 애환이 아버지들을 강하게 만들어 버렸다는 사실을,,, 당신들은 누군가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야만 되는 자이기에 눈물을 흘러서는 않된다는 것을....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스스로 패배자라는 것을 인정해야 된다는 것을 알기에 스스로 인내하고 걸어 가야 되는 자라는 것을 알기에 마음으로 우는 사람이 아닐까요^^ 현실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사람을 사람답게도 만들어 주지만 사람에게 엄청난 댓가도 요구하는 곳이라니... 나이는 사람한테 지혜를 전해주지 않지만, 세월은 사람에게 지혜를 전해 주는 자 인 것 같습니다. 엄마의 죽음은 자식들한테 마음의 빈 자리를 만들어 주고 아버지의 죽음은 자식들한테 영혼의 빈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아버지의 힘이 세상에서 큰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글샘 2011-04-03 10:56   좋아요 1 | URL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고 가시네요. ^^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