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 - 18세기 조선의 문화투쟁
백승종 지음 / 푸른역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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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를 개혁 군주라고 부르기도 하고, 조선의 르네상스를 꾀한 지식인으로 부르기도 한다.
세계적 사조를 보나,
중국을 비롯한 북학의 영향으로 보나,
정조가 집권하였던 18세기 후반은 '문제의 세기'였음은 분명하다.
조선에서도 르네상스적 인물은 정약용 등의 실학자들 역시 이런 관점 정립에 기여한다. 

그러나 정조는 '왕조'를 지키기 위하여 애를 쓴 '군주'에 불과했다는 관점도 있다.
이 책에서 <문체 반정>을 다루는 관점은,
조선 왕조의 유지에 해를 끼치는 세력의 하나로서 '소품문'에 대한 왕의 관점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지난 주에 <아이들......>이란 영화를 보았다.
대구에서 개구리 잡으러 나간다며 나갔다 사라져버린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영화의 앞부분에서는,
오로지 상업적 히트만을 노리는 비인간적인 방송 감독과,
개구리 소년들 사건에 관심이 엄청 많은 심리학자가 의기투합하여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그들의 시점에서 한 실종자의 아버지가 이상하게 보였고,
정치적 영향 속에서 그 아버지가 꾸민 자작극 내지는 살인 사건으로 몰아간다.
의심은 꼬리를 물어 화장실을 푸고 방바닥을 파제키는 해프닝을 벌이고 문제는 닫히고 만다.
결국 십 년이 넘은 어느 날 동네 야산에서 아이들의 유골이 발견되고,
유골에 남은 흔적으로 범인을 찾으려 애쓰지만, 그 또한 하나의 시점일 뿐이다. 

<아이들...>에서 남은 것은 시점이다.
부모의 시점에서 보면 '수시로 걸려오는 장난 전화'에 심드렁하게 반응할 수 있고,
그 부모를 의심하는 자의 시점으로 보면 '수상한 행동'으로 비칠 수 있는 것이다.  

역사는 '무슨 일이 일어 났던가?'를 실증적으로 쓰는 것이라고까지 연구자들이 내세우지만,
결국 그 일이 일어난 것을 기술하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해석된 결과는 천양지차이다.
역사학자들은 그 차이를 <사관>이라고까지 높여 이야기하지만,
남은 것은 <차이>다. 

불량학자 강이천을 바라보는 시점은 다양하다.
이 책의 작가 백승종은 강이천 사건에 대한 다양한 시점들을 늘어놓을 뿐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생각, 정조는 개혁군주라기보다 왕조를 지탱하려 노력한 임금일 뿐이라는 시점을 강화한다. 

이 책에 등장한 각종 사료 역시 특정한 시점에서 기술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다양한 방향에서 발사한 <빔>이 한 지점에서 만나 하나의 상을 맺게 한다면 그 다양한 시점은 객관적일 수 있다.
다양한 시점이 하나의 홀로그램을 완성하는 시점이 소설이나 영화에서 인기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나 역사에서 등장하는 시점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다양한 방향에서 발사된 빔들은 많은 경우 서로 겹쳐지지도 않을 뿐더러,
전혀 다른 쪽을 향하여 발사하고 있다.
역사적 자료, 곧 사료를 읽는다 하여도 <팩트>를 이해하는 일조차 어려운 것이다. 

자, 여기서 다시 독자의 <시점>이 문제가 된다.
독자가 어떤 관점을 가지고 사료들을 접하고 취사선택할 것인가에 따라,
사료는 문제적 사료가 되기도 하고 무의미한 취향, 편향, 날조로 치부되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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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쪽에서 '무군무부'의 한자를 "無君無夫"로 적고 있다. 156쪽에서 다시 한 번 반복하고 있다.
천주교가 박해받던 것 역시 <시점>의 차이에 의한 것이었다.
순조 이후 정치적 혼란기에 마녀사냥의 대상으로 선택되었던 것이 천주교였을 수 있다.
그러던 천주교를 <임금도 부정하고 남편도 부정한다>고 한 것은 웃기는 일이다. ㅋㅋ
당연히 <지아비 부 夫>가 아닌 <아비 부 父>가 문제되었던 것임은 당연한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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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2-26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다운 리뷰네요. 비판적 읽기의 표본이랄까요.
'시점' 혹은 '관점'과 '차이'에 대한 말씀... 오래 생각하게 됩니다^^

글샘 2011-02-28 21:38   좋아요 0 | URL
저를 아세요? ㅎㅎ 저 다운 것이 어떤 것인지...
제가 비판적 읽기를 한단 말인가요?

'시점'과 '관점'을 혼용해서 써서 저도 혼란스럽지만,
'시점'이 좀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것 같고, '관점'이라면 객관적인 시점을 띠려 애쓴 흔적이 보입니다.
'차이'를 애써 감추는 관점도 있구요, '차이'를 애써 드러내려는 관점도 있겠죠.
이 책은 뭐 중요한 사료를 다룬 것은 아니지만, 여러 입장의 시점을 입체적으로 드러내려한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책이었습니다.

양철나무꾼 2011-03-01 0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 혼란스러워 했던 부분을 '관점'이라는 단어 하나로 깔끔하게 정리해 주시네요.
위 시조의 '성리학 '얘기와 같이 읽게 되니 일목요연해져요.

글샘님의 학생들, 좀 부러운걸요~^^

글샘 2011-03-01 13:03   좋아요 0 | URL
깔끔한가요? 그럼 다행이구요. ㅎㅎ
한국을 조선의 연장선으로 보는 <관점>에서는 8.15가 해방이 아니라 <광복>이죠.
다시 돌아온 조선과 임금님...

중국 학자들도 조선의 화폐에 <이순신, 이황, 이이, 사임당>이 있는 걸 보고 놀란대요.
차라리 <이승만>이 낫죠. <박정희>나...
대한민국 화폐에 조선의 성리학 대가들이 가득한 건 좀 웃긴 일이랍니다.
세종은 조금 다르지만 말이죠.

학생들은, 너무 이런저런 이야길 해대니... 오히려 혼란스러워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수준이 높잖은 애들에게 너무 많은 얘길 하면 오히려 역효과거든요.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