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노트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80가지 생각 코드 지식여행자 11
요네하라 마리 지음, 김석중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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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판 제목은 'mahiru no hoshizora'이다.
'한낮의 별하늘'이란 뜻이다. 
이 상황은 맨 처음에 실린 글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온 말인데,
이 책의 전체 제목으로도 부족하지 않은 제목이다.
교양 노트에 비해 훨씬 함축적인데, 한국어판은 다소 힘빠진 제목으로 발간되고 말았다. 

각 챕터의 앞장에 그려진 그림이 인상적이다.
유리상자 안에 모래가 들었고, 거기서 낙타들이 쉬고 있다. 한 귀퉁이엔 와인이 얼음에 담겨있는 것 같고,
저 뒤론 오아시스가 있다.
다시 하나의 유리상자 안에는 낙타보다 훨씬 큰 닭이 한 마리 있고,
바깥 유리상자 위엔 비둘기라도 두 마리 그것들을 들여자보고 있다.
이 큰 유리상자는 하나의 기둥에 서 있고, 푯말에 '상식'을 뜻하는 common sense 가 붙어있다.
양복을 입은 뒷모습의 신사, 아가씨로 보이는 뒷모습의 여인, 티를 입은 배나온 아저씨가 그 상자를 들여다본다. 

세상의 모든 판단은 상대적인 것이고,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영원한 진리란 없다. 태양은 내일 떠오른다? 이것도 어느 날엔간 거짓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인간은 얄팍한 경험들에서 - 그것도 폭력적이어서 잘살게 된 몇몇 나라의 생각을 '상식'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한 마디로 웃기는 노릇이다.
마리 여사는 자신의 세계적 삶에서 우러나온 경험들로 '상식'의 무용함을 증명하려 한다.
그 경험들은 재미있고, 때로는 통쾌하기도 하다. 

이 글들은 요미우리 신문에 연재되었던 것들인데, 어쩜 이렇게 멋진 글들을 다작으로 쓸 수 있었을지...
하긴 그렇게 에너지를 집중해서 쏟다보니 삶의 질은 높아졌지만, 삶의 길이는 짧았겠다. 

아무리 고급스러운 정보를 많이 담아넣기만 하는 뇌가 과연 지적이라 할 수 있을까?
지성이란 지식의 많고 적음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지식에 대한 저작 능력이나 운용 능력에 달린 것은 아닐까? 요컨대 '사고력' 말이다.(186) 

세상은 정보의 바다라고는 하지만, 맨날 누가 누굴 때리고 죽이고 하는 저질스러운 뉴스로 가득하다.
정치가들도 참으로 치사하고 졸렬한 일들을 벌인다고 뉴스는 주절댄다.
이런 것들은 지적인 인간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적인 인간은 뉴스를 보지 않고도, 세상의 잘잘못을 판단할 수 있다. 그것이 사고력의 힘이다. 

한때 신문 활용 교육이란 방편을 마구 떠들던 신문이 있었다.
과연 신문을 아이들에게 읽혀 교육이 될까? 심히 우려된다.
지식에 대한 '저작 능력'과 '사고력'을 기르는 일.
그것이야말로 '상식'을 뛰어넘는 '살아가는 힘'을 기르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는 숱한 글을 쓰면서 그걸 '취미'로 여긴다. 

   
  취미를 직업으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이야말로 행복하다.(198)   
   

나도 이런 생각을 20년 가까이 품고 한 가지 직업에 만족하며 살았던 사람이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정말 즐거웠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물론 짜증나는 순간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길게 보면 아이들은 속도의 차이는 나지만 모두 성장한다.
그래서 모두가 아름다운 아이들이다.
그치만 요즘엔 월급이 많이 오른 반면, 세상이 교직을 두들기기에 여념이 없다.
그런 뉴스를 듣노라면 마치 나의 가치가 많이 하락한 기분이다.
근데, 방금 전에 032- 이런 국번의 전화가 떠서 받아보니, 군대가있는 제자 녀석이 1월에 휴가나온다고 미리 안부 전화다.
이런... 군바리가 그 추운 전방에서 크리스마스에 기껏 전화한다는 게 2년 전 고3 담임이라니...
이런 맛에 선생한다. 남들은 모를 경험들을 누릴 수 있는 호사가 평범과 함께 하기 때문이다.
몇몇 순간에 굵은 줄기를 놓쳐버리는 일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유 주제>로 글을 쓰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한 가지 생각'을 염두에 두고 세상을 살다 보면, 글쓸 일이 도처에서 눈에 띈다.
길을 걷다가, 버스에서, 뉴스를 보다가, 운전을 하다가, 책을 읽다가, 일을 하다가,
갑자기 글쓸 주제와 부합하는 순간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가득차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부자유한 편이 자유로워지는 것이다.(249)   
   

이런 역설은 역시 겪어본 자들이 공감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일이다. 

마리 여사의 책을 읽는 순간은 늘 행복하다.
그 사람이 느낀 생각들도 내 머릿속엔 언전게 스쳐갔던 것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신선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새롭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또 한편 그미의 책을 읽는 일은 늘 불안하다.
그의 책은 이미 한계가 보이는 '끝'을 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책에 대한 카테고리라도 하나 만들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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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0-12-26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마리 여사의 책을 읽을 때도 즐겁고 행복한거 같습니다. 그녀의 생각들이
참신하고 유쾌하기 때문이죠. 제가 좋아하는 마리 여사의 리뷰를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

글샘 2010-12-28 00:54   좋아요 0 | URL
드디어 저는 마리 여사의 카테고리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참신하고 유쾌한 사람... 맞죠.
글쓰기의 달인이기도 하고, 이야깃거리 찾아내기의 달인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마리 여사는... 기억력이 좋거나 아니면 메모의 달인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
cyrus 님도 마리 여사에게 푹 빠져 보세요.

세실 2011-01-20 0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이 책 읽으면서 그녀의 박학다식함에 놀라고 있는 중인데 님은 이미 마리여사의 팬이시군요.
제가 은근히 보수적이라 팬티 인문학은 좀 그랬어요.

글샘 2011-01-20 12:50   좋아요 0 | URL
네. 제가 이렇게 누구의 왕팬이 된 적도 잘 없죠. ㅎㅎ
마리 여사의 책 중에서 팬티 인문학이 제일 재미 없습니다. ^^
다른 책들은 정말 재밌으니 '프라하의 소녀시대'는 꼭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세실 2011-01-26 20:40   좋아요 0 | URL
프라하의 소녀시대 읽고 나면 프라하 가야 되는건 아닐까요?

글샘 2011-01-26 22:12   좋아요 0 | URL
프라하에 가고 싶은 게 아니라, 거기서 살고 싶으실 거예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