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괜찮아 푸른도서관 40
안오일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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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용 소설, 동화는 좀 유치하다.
문제를 가진 아이가 등장하고, 좋은 선생님이나 할머니가 등장하고, 문제는 약간 꼬이는 듯 하지만 극적으로 해결된다... 이런 거. 뻔하디 뻔한 거. 

근데, 최근 들어 청소년 소설이 많이 등장했다.
문제를 가진 아이가 등장하는 것은 같지만, 문제는 여전히 꼬여있고, 극적인 해결이 없는 걸 주인공은 안다.
그렇지만, 마음이 완전히 꼬이지 않게 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해결의 희망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청소년용 시집은 거의 없다. 왜 그럴까?
시와 소설의 차이는... 표현되는 언어의 방식에 있다.
<자기의 이야기를 스스로 독백> 형식으로 풀어내는 것이 '시'이고,
<들은 이야기를 남에게 전달>하는 형식으로 적는 것이 '소설'이다.
그래서 '시'에는 화자의 처지, 시적 자아의 입장과 분위기가 중요한 반면,
'소설'에선 주인공의 '인물(인간성)', '사건', '배경' 등이 중요한 것이 된다.
어려운 말로, 시는 세계의 자아화(세계의 이야기가 화자 속으로 들어오는)라고 하고,
                  소설은 자아의 세계의 대결이라고도 하는 거다. 

청소년은 아직 주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독립하지도 못한 주제에 생각만 많다.
그렇다면 시가 많이 등장할 법도 한데, 왜 청소년 시집은 구경하기가 힘든 걸까?
초딩용 동시들도 대부분 어른들이 아이들의 말법을 흉내낸 쓰기가 대부분이다. 엄밀하게 동시라 보긴 어렵다.
초딩들에겐 많은 글을 쓰게할 시간여유가 있지만, 중고딩에겐 그런 글을 쓰게 하고 발표하게 할 공간이 드문 탓도 있으리라.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의 청소년들은 <자아> 따위는 기르지 말라고, 그저 문제푸는 기계, 학원가는 기계로 살라고 강압적으로 억압받으며 살고 있는 것이 현실이어서, 세계 따위가 자아에 기어들어올 여지가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세계가 자아에 기어들어오는 순간 갈등하게 되고, 질풍노도의 풍랑에 휘말리게 되기 때문이다.
1980년대 고딩들이 교사들과 갈등하고 세계에 대하여 고민하게 된 것도 그런 때문이리라.
1980년대 시들이 그토록 찬란한 것도, 그 참혹한 세상이 자아 안에 새겨 넣은 핏덩이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괜찮아. 청소년 시집치곤 참 괜찮은 제목이다.
시인은 세상의 많은 사물들을 청소년과 비슷하다고 본다.
올망졸망한 산봉우리들, 발가벗은 겨울 나무, 고장난 리모컨, 꽃피기 어려운 선인장... 

그러나 그들에겐
평생 내 길만 펴느라 굵은 주름 여기저기인 어머니의 다림질을 볼 수 있는 눈이 있고,
수학여행가서 친구들이랑 몰래 마실 때와는 다른, 왠지 나를 믿어주는 것같은 한 잔의 술맛도 느낄 줄 알고,
내가 밑줄을 긋듯, 누군가 밑줄 그어줄 내 마음도 있었던지 돌이켜 볼 삶의 여유도 가질 줄 아는 '눈'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상을 보면 '한대 치고 싶다'고 느끼기도 하지만,
'그럴 때도 있지' 하고 넘기기도 하고,
'이 정도는 웃어 주세요'하고 얼버무리는 아이들은 <지금 우리는> 무언가로 성장하고 있는 중임을 작가는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중고딩을 보고 있는 일은... 열통 터지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는 일이다.
바로 부모가 견뎌야 하는 그 일이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아이들 옆에서, <그래도 너희를 응원해> 하는 자세를 보여주는 일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런 시집이 좀더 나와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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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2-14 0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대 치고 싶다','그럴 때도 있지'를 넘어
'이 정도는 웃어 주마'를 거치면,
'그래도 너를 응원해'하는 자세를 갖게 될까요?

이 책, 시집으로가 아니라, 마음수련서로 장만해야 할까봐요~^^

글샘 2010-12-16 23:02   좋아요 0 | URL
저 네 꼭지가 이 시집의 네 파트 제목입니다. 제법 그럴듯한 구성이죠? ㅎㅎ
그 제목들의 흐름 빼고는 좀 약한 시집입니다.

cyrus 2010-12-14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해보니 청소년 소설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봤어도 정작 청소년 시집이란
책을 접해본 적이 없는거 같네요. 청소년들의 마음에 와닿을 수 있는 글들이요.^^

글샘 2010-12-16 23:03   좋아요 0 | URL
시집이나 소설 같은데다가 어린이~~, 청소년~~ 이렇게 붙이는 거야말로 상술이 아닌가 합니다.
어린이 시가 있고 어른 시가 따로 있나요?
어린이 삶이 따로 있고 어른 삶이 따로 있잖듯... 지나치게 갈라붙이는 것도 경계해야할 분야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