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요즘엔 수능 바로 코앞이라서 아빠가 많이 바쁘구나.
지난 번에 '공감각적 심상' 이야기한 김광균 이야기를 마저 하자. 

말만 했을 뿐인데,
눈 앞에 환하게 그려져 보이는 시각적 심상이나,
향기가 확 지나간 것처럼 느껴지는 후각적 심상, 이런 걸 느끼는 시간을 가져 보자.

1.

향료(香料)를 뿌린 듯 곱다란 노을 위에
전신주 하나하나 기울어지고

먼 고가선(高架線) 위에 밤이 켜진다. 

2.

구름은
보랏빛 색지 위에
마구 칠한 한 다발 장미 

목장의 깃발도 능금나무도
부을면 꺼질 듯이 외로운 들길 (데생)  

이 시는 제목 자체를 '데생'이라고 붙였구나.
데생은 '상세하게 묘사한 그림', '소묘' 이런 뜻으로 쓰이지.
연필로 슥슥 그린 그림이란 뜻인데, <서양의 언어>잖아.
이런 것을 '모더니즘'이라고 그래. 

이 시를 읽으면 눈 앞에 석양에 물든 평화로운 경치가 눈에 선하지 않니?
그 곱다란 노을이 보이기만 하는 게 아니란다. 향기까지 나지. 향료를 뿌린 듯... 이렇게...
시각적 이미지를 후각화 한, 공감각적 심상. 

비유도 멋지게 쓰인단다.
구름이 붉게 물드는 석양 무렵을, 보랏빛 색지 위에 한 다발 장미를 마구 칠한 것 같다,고 표현했으니...
그런데, 그 아름다운 경치에서 화자는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는구나.
주제는 '해질 무렵의 쓸쓸한 경치' 이런 정도면 되겠지? 

1학년 국어에서 '정지용의 유리창'을 배웠잖아.
죽은 아이에 대한 아비의 마음을 쓴 노래.
감정이 절제되어있던 노래.
외로운 황홀한 심사라고... 역설적 표현법을 썼던 노래. 

김광균도 아이를 잃어버린 경험이 있는 모양이야.
하기야 1900년대 후반까지 한국은 세계 최빈국 중의 하나였으니 영아 사망률도 높았겠지.
정지용과는 아이 잃은 슬픔을 어떻게 쓰는지 보자.
이때도 감각적 심상을 잘 살려서 쓰는지 어떤지...

산이 저문다.
노을이 잠긴다.
저녁 밥상에 애기가 없다.
애가 앉던 방석에 한 쌍의 은수저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 

한밤중에 바람이 분다.
바람 속에 애기가 웃는다.
애기는 방속을 들여다 본다.
들창을 열었다 다시 닫는다. 

먼 들길을 애기가 간다.
맨발 벗은 애기가 울면서 간다.
불러도 대답이 없다.
그림자마저 아른거린다. (은수저)

시어는 쉬우면서도 허둥대는 화자의 심정이 보이는 듯 잡히지 않니?
아기를 화장해 뿌리고 왔겠지.
밥상에 우두커니 놓인 한 쌍의 은수저를 보고 화자는 눈물이 핑 고인다. 

밥상을 치우고 멍하니 누웠는데 바람이 부는구나.
바람 소리 속에 애기 웃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애기가 방을 들여다 보는 것 같아 들창문을 열어보기도 한다. 

꿈이라도 꾸는지...
먼 들길에 애기가... 맨발로 울면서 간다.
불러도 대답도 않고...
그림자만 아른거리는 꿈 속. 
아, 어렸을 때 그 예쁜 아이를 잃은 부모의 마음이야 어떻겠니?
자식이 죽으면 부모는 마음에 묻는다는 말이 있단다.
평생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 

가난해서 마음껏 먹이고 입히지도 못한 자식에 대한 미안함과 애정이 잘 느껴지지.
반짝이는 외롭게 앉은 은수저를 통해서 말이야.  

자, 다음엔 조금 긴 시를 하나 보자.
외국인 마을이란 '외인촌'이야.  

하이얀 모색(暮色) 속에 피어 있는
산협촌(山峽村)의 고독한 그림 속으로
파아란 역등(驛燈)을 달은 마차가 한 대
잠기어 가고 

바다를 향한 산마루 길에
우두커니 서 있는 전신주 위엔
지나가던 구름이 하나 새빨간 노을에 젖어 있었다.

바람에 불리우는 작은 집들이 창을 내리고
갈대밭에 뭍힌 돌다리 아래선
작은 시내가 물방울을 굴리고

안개 자욱한 화원지(花園地)의 벤치 위엔
한낮에 소녀들이 남기고 간
가벼운 웃음과 시들은 꽃다발이 흩어져 있었다. 

외인 묘지의 어두운 수풀 뒤엔
밤새도록 가느단 별빛이 내리고

공백(空白)한 하늘에 걸려 있는 촌락의 시계가
여윈 손길을 저어 열 시를 가리키면
날카로운 고탑(古塔)같이 언덕 위에 솟아 있는
퇴색한 성교당(聖敎堂)의 지붕 위에선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외인촌 外人村)

6연으로 된 시다. 한 연씩 살펴볼까? 

우선 1연. '모색'은 저물녘의 햇빛이야. 하이얀 이유는 안개가 끼었거나 그렇겠지.
안개가 뽀얀 저물녘, 산간 마을에 마차가 한 대 지나가고 있어.
<하이얀> 배경으로 <파아란> 등불이 대조적이지? 

2연에선 산마루(꼭대기)에 선 전신주 위로 구름이 빨갛게 솜사탕처럼 불타고 있어.
1연과 함께 한 장의 그림인데,
1연에선 <하이얀> 배경에 <파아란> 등불이고 2연의 바다쪽에선 <새빨간> 노을이 두드러진다.

3연에서,
오르내리는 창문을 단 집들은 한국식이지 않지?
바로 외국인 마을이 보이는구나.
돌다리 아래 작은 시냇물이 흐른다. 

4연에서,
화원지는 꽃밭이야. 벤치는 역시 '이국적'이지? <모더니즘>
시든 꽃다발이 흩어진 꽃반의 벤치.
이런 건 보이는 건데, 거기 '소녀들이 남기고 간 가벼운 웃음'이 흩어져 있대.
웃음은 들리는 거잖아. 청각적 심상.
근데, 흩어져 있다고 했으니깐, 공감각적 심상이지?
청각의 시각화~ 이제 술술 나오겠지? 공감각적 심상과 청각의 시각화 이런 거. 

5연에선 외국인 묘지가 나오는구나.
한국식 묘지는 동그스름한 밥그릇같잖아. 근데 외국인 묘지는 십자가가 돌 위에 있겠지?
이국적인 모습의 외국인 묘지에 밤이 되어 별빛이 비친다.

마지막 연.
공백은 하얗게 텅 빈건데 환한 아침이 된 모양이고, 하늘에 높직하게 걸린 시계가 열 시가 되니, 
언덕 위 낡은 성당에서 종소리가 울린단다.
근데, 또 공감각을 쓰고 있지?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종소리를 들었는데, 분수처럼 흩어진다고 했으니 청각의 시각화!

공감각적 심상은 김광균 시만 공부해도 충분하단다.
유명한 것이 박남수의 '아침 이미지'란 시에 나오는 '금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울림'이란 구절이 있단다.
태양을 봤으니 시각인데, 태양이 울리는 것처럼 표현했으니 시각의 청각화!가 되겠지? 

외인촌은 '외국인 마을을 보고 느낀 감상'을 쓴 시야.
시간이 저녁~밤~아침으로 흐르고, 다양한 감각적 심상이 쓰이고 있지.
또 시적 허용, 시적 자유가 해당되는 시어가 몇 있단다.
하이얀, 파아란, 가느단, 시들은... 이런 말들.          

다음엔 '눈오는 밤'의 심사를 그린 '설야'란 시를 한 번 보자.

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밑에 호롱불 야위어 가며
서글픈 옛 자취인 양 흰 눈이 내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 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차단한 의상을 하고
흰 눈은 내려 내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다.  (설야) 

이 시는 멋진 비유가 돋보이는 시로 유명하단다.
퍼얼펄~ 흰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시간은 한밤중...
화자는 마루 위에서 그 눈이 내리는 걸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지. 

우선, 한밤중 소리 없이 흩날리는 눈을 보고
 <어느 먼 곳의 그리운 소식>같다고 표현했어.
화자는 무슨 소식인가를 기다리는 사람이겠지.

처마가 있는 걸 보니, 한옥의 마루쯤에 기대서 있는 사람이야.
처마 밑에 호롱불은 마당에 외등 역할을 하는 등불이지.
호롱불 가늘게 밝힌 마당에 흰 눈이 내리는 걸 보고
<서글픈 옛 자취>인 양하다고 느끼는 걸 보면,
무슨 소식인가를 간절히 기다리는데,
지금은 사라진 서글픈 옛 자취와 관련있는 소식인게야. 

입김이 하얗게 나오는데, 소식은 없고 서글픈 옛 생각에
<가슴이 메>이는구나.
그래서 허전한 마음에 등불을 하나 더 켜들고
혼자서 밤 깊은 시각에 뜰에 내려간다. 

잊지 못할 옛 사랑을 떠올리는 것인지,
어디 신춘 문예에라도 응모를 해 두고 입선 소식을 기다리는 것인지,
일제 강점기 멀리 끌려가신 임을 기다리거나,
집나가서 소식이 없는 자식이라도 기다리는 것인지...

뜰에 내려가니 눈이 내리는데,
마치 그 소리가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같다고 표현했어.
이 대목을 가르치면 애들이 야하다고 난린데...^^
이 소리는 풀을 정성껏 먹인 빳빳한 한복 치마가 접히듯 나는 소리를 뜻하는 거야.
눈이 내릴 때 그런 '사르락 사르락' 소리가 난다는 건,
함박눈이 아닌 싸라기눈일 수도 있겠구나.
바람이 안 불 때 습기 많은 공기가 엉킨 눈은 덩치가 큰 함박눈이 되고,
습기가 적은데 바람이 많이 불어 엉킨 눈은 싸라기눈이 되기 쉽지. 

희미해지는 눈발을 본다.
그 눈은 마치 <잃어버린 추억의 조각>같대.
그리고 <싸늘한 후회의 추억>이 마음에 떠오르는 모양이야. 

뭔가 그 기다리는 소식, 잃어버린 추억은 화자에겐 회한(후회하는 감정)을 남긴 일인가 봐.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설레기도 하는 그런 사연.

흰 눈은 '환한 빛을 내지도 강한 향기를 뿜지도 않는' 존재인데,
차단한(차가운, 단정한) 의상을 입은 존재처럼 쌓이는데,
화자의 <슬픔>이 그 위에 서리서리 쌓인대.

눈내리는 밤, 화자는 눈을 통해서 옛날 생각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기는구나. 
그런 여러 가지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을 <회포>라고 그래.
회포에 잠긴 화자는 뜰을 거닐면서 쓸쓸하고 슬픈 마음을 시로 표현한 것이고...  

사람이 그럴 때가 있잖아. 
바람불고 비가 오면 마음이 쓸쓸할 때...
그런 마음을 보통 시간이 지나면 잊기 쉬운데,
시인이란 사람들은 이렇게 그 순간의 마음을 <시어>로 사로잡아 두는 사람들이구나.
누구는 <사진>으로, 누구는 <그림>으로 자기 마음을 남기는 법이지. 

아빠는 이렇게 글로 마음을 남기곤 한단다.
민우도, 네 마음을 무언가로 남길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즐겁고 신나는 주말 만들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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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1-12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이나 그림이나 글이 마음을 대신할 순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마음을 잡아둘 수는 있는 거군요.

마음을 무언가로 남길 수 있는 방법,기억해 두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샘 2010-11-13 13:59   좋아요 0 | URL
대신할 수는 없겠지요. 그렇지만 표현하고 잡아두려는 시도 정도야... ^^

반딧불이 2010-11-23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모든 감각을 총동원 한 것 같아요. 문득 김광균이 실제로도 이렇게 감각적이었는지 궁금해집니다.

글샘 2010-11-24 21:06   좋아요 0 | URL
김광균 시인 사진보면, 별로 감각적일 거 같지 않게 생겼어요. ㅋ 술꾼이고 둔하게 생겼는데, 시어는 엄청 감각적이죠. 저 데생~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