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을 자유 - 로쟈의 책읽기 2000-2010
이현우(로쟈) 지음 / 현암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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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슈퍼스타K2(줄여서 슈스케2)가 공전(空前)의 인기를 끌고 있다.
오죽하면 슈스케의 4인에서 탈락한 강승윤의 음원이 인기 가수들(뭐, 노래를 잘하는지는 모르겠는)을 제치고 1위를 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고 하니...
슈스케의 인기는 어디서 오는 걸까, 생각해 본 일이 있는데,
로쟈의 '지젝'을 읽다가 '시차적 관점'이란 대목을 읽으면서 유사 현상이 얽힐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씩 탈락하는 서바이벌 게임 자체가 가지는 재미가 있는데,
각기 다른 캐릭터를 가진 참가자들을 보면서 관객들은 '자기 동일시'를 하게 될 수도 있다.
또는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마치 '아바타'인 양 응원하게 된다.
게다가, 그 프로그램은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윤종신과 이승철, 엄정화가 신이 되어,
"네, 이번 주 생존자는 허각과 존박입니다." 이렇게 발표하지 않는단다.
시청자들이 문자 메시지를 통하여 자신의 아바타에게 응원을 보낸다.

그 상황은 이미 그들이 얼마나 오늘의 무대에서 노래를 잘 소화했고,
멋진 스타로서의 자질을 보여주었는가를 떠나는 문제가 되어 그 무대와 시차가 발생하는 문제로 이행하게 되고,
결국, 상황은 누구도 모르는 사태로 돌아가고 만다.
생방송이라는 상황.
그리고, 시청자는 누구나 문자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환경이라는 상황.
또, 자기들의 응원이 충분히 반영되어 자신의 <아바타>가 결승까지 진출할 수 있는 상황을 연출하는 그 프로그램은
일종의 <가상 현실>이고 <시뮬라시옹>의 세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제 두 명의 남자 캐릭터가 남았다.
허각처럼 노래도 잘 하고, 그들을 이끌어온 카리스마도 있지만, 키가 작고 외모에서 핸디캡이 있는 가수와,
존박처럼 스타일 죽이고, 키도 되고, 노래할 때 표정조차 죽이는, 그치만 노래는 조금 안 되는 가수의 대결.
가수왕 선발대회라면 당연히 노래가 더 되는 허각이 우승을 하겠지만,
그 프로는 어디까지나 <스타> 선발대회이므로 스타일이 우승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심사위원의 발표'와 '관객의 투표'란 시차를 이용한 것이 슈스케의 인기 비결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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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책을 읽었지만, 나는 로쟈의 책을 읽은 것이 아니다.
로쟈는 이제까지 '인문학 서재'와 '책을 읽을 자유'의 두 권의 책을 냈지만, 아직 그는 한 권도 책을 쓴 적 없다.
'책을 내다'와 '책을 쓰다'의 차이를 그는 잘 이해할 것이다.
내가 그의 책을 읽으면서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그가 '쓴' 책을 읽고 싶은 욕망의 실현이다. 

하지만, 그의 '책을 내는 행위' 또한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아주 중요하다.
조정래가 한국 사회의 온갖 문제의 밑바닥을 헤집으려 '허수아비춤'이란 소설을 썼지만,
1980년대 한국 사회의 변화를 가져왔던 것은 결정적인 한 권의 책이나 한 사람이 아니라,
점조직처럼 숱한 대학에 흩뿌려졌던 '세미나 조직'이었기 때문이다. 

많은 대학생들은 '데모하지 마라'는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고 대학에 입학한다.
그렇지만, '못된 선배'들을 만나면서 그들은 '의식화'가 된다. 그 의식화 과정을 '세미나'라고 한다.
글을 읽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문제 의식을 가지고 행동으로 옮기게 되는 것을 온몸으로 익힌 것이다.
2년 전 촛불 집회의 현장에 그토록 많은 중년들이 등장한 것은 이미 그들의 세포들이 그런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로쟈의 이 책은 내가 참 싫어하는 '형식'을 가지고 있었다. 여러 지면이 이미 발표된 것들을 짜깁기하여 책을 만든 것.
그리하여 이 책의 글들에 중언부언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한계이지만,
로쟈의 이 책은 비평할 수 없이 알찬 '내용'이 가득함을 부정할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우뚝한 '선배(아마 그는 대학 후배일 것이지만)'의 입에서 나오는 그 많은 책 제목들에 기가 눌리기도 했고,
또 그 '선배'가 읽었던 책들을 읽고 싶은 이뤄질 가망없는 욕망이 보글거리기도 했지만,
이 책을 읽은 성과라면, 그가 들려준 '가라타니 고진'과 '지젝' 이야기에 힘을 입어,
이제 나도 시간을 내서 지젝을 지젝거린 책들을 찝적거려 볼 엄두를 내었다는 정도다. 

대학 시절 '선배'와 '세미나'가 없었다면 엄두를 내지 못했을 마르크스 레닌과 마오쩌둥의 책들을 접할 수 있었던 경험이 이제 '데리다와 라캉'을 이어 '헤겔과 지젝'까지 읽지 않을 수 없게 다리를 놓아준 '선배'의 글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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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시 지젝인가?
헤겔의 말대로 철학이란 '개념으로 포착한 자기 시대'를 인용하여, 지젝이야말로 그 정의에 가장 충실한 철학자이기 때문이란다.(574)
아내를 강간하는 몽골군의 불알에 먼지를 묻힌 것으로 만족하는 따위의 자기 위안은 집어치워야 한다는 일갈!
베케트, 다시 시작하라, 다시 실패하라, 더 잘 실패하라!
그래서 근본적 혁명은 오래된 꿈을 실현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꿈꾸는 방식 자체를 다시 창안해야 한다.(569)는 글을 읽으면서 나는 가슴이 뛰었다.
오늘날의 적은 제국이나 자본이 아니라 민주주의(알랭 바디우)이기 때문이다. 

다시 슈스케로 넘어가서,
심사위원이 결정해주던 시대는 갔다.
코카콜라가 후원하고, 문자 메시지(한 통에 200원인가 먹는다. 60,000명이 참여하면, 12,000,000원?)로 수익을 얻는 구조를 감추고, 시청자는 자신의 캐릭터를 응원하기 위해 키보드 워리어가 되는 것이다.
관점의 이동. 

어느 하나가 나머지의 진리가 아니라, 진리란 관점의 이동, 시차적 관점에서의 진리를 보여주려는 지젝의 노력을 간과할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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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인간다운...에 대해 물었더니 '같잖은 인간, 덜 된 인간, 값싼 인간'의 대립항으로서의 '인간'을 내세운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책읽기란 것.
그렇지만, 그에게 가장 절망스런 미래는 다음 대선에서 정권교체가 이뤄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526) 

나는 울고 싶은데 신은 내게 쓰라고 명령한다.
그는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걸 바라지 않는다.
아내는 울고 또 운다. 나 역시 운다. (163) 

니진스키란 전설적 무용가가 요양원에 입원했을 때 정신을 놓기 전 쓴 일기라는데, 나는 이런 말에서 로쟈의 진심이 담긴 구절은 아닌가 싶어 마음이 짠해진다. 
시도 간간이 썼다던 문학 청년 로쟈가 유난히 집착하는 '눈물'이란 단어를 만나는 일은 조금 마음 애린다.

로쟈의 문체를 해석해줄 멋진 사람이 알라딘에 한 사람 있긴 하지만,
그 이가 이런 걸 좀 분석해 줬으면 좋겠다.
로쟈가 문학 작품에 대한 비평을 할 때의 다소 멜랑꼴리한 문체와,
그가 번역의 문제에 대한 의견을 낼 때의 조금 깐깐해 뵈는 문체와,
어쩔 수 없이 사회적 문제에 입장을 제시하며 '선배'로서 서야 하는 대목에서의 어쩌면 당당하고 일면 당황스런 표정의 문체가 드러나는 것인지 어떤 것인지를 말이다. 

비평이란 걸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취향에도 안 맞는 나는 같은 책을 여러 번 읽는 일이 잘 없다.
그런데, 왠지 꼼꼼하게 비평을 한다면, 위와 같은 차이가 나지 않을까...하는 생각은 해 보았다.
로쟈가 가장 맘 편하게 읽고 쓰는 분야가 문학 작품에 관한 것이라면,
로쟈가 지젝거리긴 하지만, 결코 마음 편할 수 없는 '선배'로서의 입장도 어쩔 수 없는 로쟈의 반쪽이다.
그래서, 로쟈가 제대로 된 책을 내려면, 마음 편하게 맨날 강의하는 러시아 문학에 대하여 책을 써 줬으면 하는 갈망과,
또한 '가라타니 고진'과 '지젝'처럼, 헝클어지고 혼돈스런 세계에 철학의 빗질이란 세례를 내려줄 수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계속 소개해 주기를 바라는 열망이 이 책의 독후감이다.
 
다만, 내가 자꾸 시비를 거는 것은, 그것들이 이렇게 뒤섞인 책보다는, 깔끔하게 '러시아 단편 문학 강의'나 '로쟈가 읽는 지젝'처럼 칸을 나눠서 출간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로쟈는 그 이름에서 감지되듯,
인문학의 '인간'과 '문학' 중, 문학 쪽으로 아무래도 감성적으로 치우친 유형인 모양이다.
그렇지만, 그의 '이성과 의지'는 언제나 '인간 세상'의 문제를 좌시할 수 없도록 방향타가 자동-조향 되어있는 것 같기도 하여 중심을 잡아주는 것 같다.

'문학'은 과거의 사건에 '형상'을 입혀 관심을 부르는 것이고,
'인문학'은 현재의 난삽한 삶에 관심을 집중하여 '이성적 분석'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면,
'문학'과 '인문학'은 동떨어진 것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쿤데라의 소설에서 강박적 여성 편력을 가진 바람둥이를,
'여자들에게서 자기 자신을 찾으려고 하면서 매번 실망하는 서정시적 유형'과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면서 언제나 만족하는 서사시적 유형'으로 나누었듯이,
문학과 인문학은 '실망'과 '만족'의 사이를 오가는, 영원히 정지할 수 없는 진자나 마찬가지인 '개념'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홍어(洪魚)'도 '광어(廣魚)'도 모두 넓을 홍, 넓을 광을 쓰게 된 나름의 진화지만,
제각기 세상에 적응하는 양태가 달랐던 것처럼,
로쟈의 홍어와 광어가 제대로 자리를 잡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 일요일 아침 타자 속도를 제법 낸다.

건필을 그저 글 잘 쓰라는 요식적인 안부 인사로 알았는데,
나이가 들고,
책을 더 볼수록,
정말 좋아하는 사람은 '건필'을 간절히 빌게 된다.
요네하라 마리가 '건필'하지 못하고 멀리 가서 아쉽고, 김현이 '건필'하지 못해서 아쉽단 생각을 많이 한다.  

로쟈가 나보다 젊어서 다행이고, 부디 그가 오래오래 건필하기를 바란다. 

 

-----------이 좋은 책에서도 시빗거리 몇 가지...

199쪽. 나보코프라는 듣도보도 못한 사람 이름이 자꾸 '나코보프'라고 읽혀서 몇 번 시선을 버벅거렸는데, 드뎌~~~ 하하하!!! 로쟈도 '나코보프'를 인정했다. 나는 이런 사소한 데서 환희를 느끼는 변태인가??? 

229쪽. 기형도의 '엄마 걱정'을 초등이나 중학교 교과서에 수록됐다고 하는 건 오류일 것이다. 이제까지 초중 교과서는 국정이었는데, 기형도의 시는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나 실릴 법한 어두운 시였다. 글쎄, 새로 나오는 중학교 교과서는 국정에서 해제되었으니 실린 책도 있을 법하다.
242쪽. 이청준의 '서편제'가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려있다는 사실... 이런 건 확인해 봐야 한다. 실려있지 않다.

399쪽. 한국은 1제곱미터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다. 1제곱킬로미터당 5천톤에 이르는... 일관성이 없는 걸로 보아 오류로 보이는데, 다음판에선 수정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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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10-10-17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타 지적 감사합니다. <엄마 걱정>이나 <서편제>는 아마 문학교과서에 실렸던 듯싶은데, 오래전 학원강사 시절의 기억이라 바로 확인은 안되네요.^^; 이산화탄소 관련은 다시 확인해보니 필자가 그렇게 썼습니다.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127# 장문의 리뷰 잘 읽었습니다.^^

글샘 2010-10-18 13:56   좋아요 0 | URL
엄마 걱정은 18종 문학 교과서(고딩) 중 3권에, 서편제는 4권에 실려있습니다. 국어 교과서에는 이청준의 '선학동 나그네'가 실려있었지요. 6차 교과서(2001년까지)에요. 뭐, 저 제곱미터는 어찌되었든 말은 되지만, 통일이 안 되니깐, 좀 거슬리네요.^^

비로그인 2010-10-18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넓고 깊게 보시는군요. 알라딘 서재의 영원한 '선배'님^^

글샘 2010-10-20 10:51   좋아요 0 | URL
박이정 博而精 이 되어야 하는데, 뭐 책읽는 게 직업이 아니다 보니, 설렁설렁 많이만 읽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