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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번째 파도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삐걱거리는 소리처럼 시작된 바이얼린 독주는,
잔잔한 쾌활함으로 점점 커지다가,
가슴 가득 전율할 만한 소음으로 귀가 찢어져라 비통의 갈등을 연주하더니,
한 순간,
뚝.
끊어져 버렸다.
이것이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였다면,
'일곱 번째 파도'는
통속한 음악을 한 곡, 뭐 적당한 춤곡이나 아니면 캐논 형식의 익숙한 피아노 협주 정도랄까.
통속한 해피 엔딩은,
워낙 익숙해온 '주제부'를 '재현'했을 따름이어서 쉽게 읽을 수 있다.
전편이 프렐류드부터 프롤로그 인터메조, 그리고 클라이막스와 수직의 하강을 보여주는 에필로그로 강렬한 기억이라면,
후편은 단조로운 연속극의 한 회를 관람한 정도의 평이한 기억이었다.
그렇다고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의 엇갈리는 인생 역정이 무한정 지향없이 진동하는 발산의 그래프를 그리다가, 점차 한 지점을 향해 수렴해가는 느낌을 읽는 맛은 그런대로 달콤하다.
커피 맛으로 치자면, 전편이 에스프레소의 고농축 커피라면, 후편은 별다방에서 나온 병에 담긴 브렌드 커피 정도.
스포일러가 되어 감상을 망칠 생각은 없으니, 줄거리는 생략!
좋아요. 하지만(......). 아니에요, 하지만이 아니라, 좋아요!
이 한 줄을 놓고, 스무 줄은 해석을 붙이는 이런 기호학적 취미가 이 책의 또다른 묘미이기도 하다.
처음의 좋아요는 단호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진술이에요. 그 뒤의 쉼표는 다음 진술을 위한 부가장치고요.
그 다음에 나오는 '하지만'은 유보를 예고하고 있어요. 그리고 여는 괄호는 글쓰기상의 형식적인 기교,
그 다음의 점 여섯 개는 비밀에 싸인 생각의 갈래들. 이제 충분한 고뇌를 거쳤으니 괄호를 닫아 말줄임표에 담긴 혼란을 꼭꼭 싸매두는군요.
그러고 나서는 내면의 혼돈 속에서도 외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보수적인 마침표.
그럼에도 그 다음에 불쑥 고집스럽게 나타나는 '아니에요'는 겉보기에는 단호한 진술이지만 뒤이어 또다시 나오는 쉼표는 앞의 진술이 뭔가 다른 말로 보완되리라는 걸 암시해요.
그 뒤에 나오는 '하지만이 아니라'는 더는 고민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요.
그동안 어떤 회의도 발설되지 않았지만 사실은 온갖 회의가 드러났는데,
이제 그 모든 회의가 밀려나요.
그리고 종국엔 과감한 '좋아요'가 고집스러운 느낌표와 함께 나오죠.
다시 한번 종합하면, "좋아요. 하지만(......). 아니에요, 하지만이 아니라, 좋아요!"는 당신의 흔들리는 마음이 보여주는 화려한 론도예요!
공개리에(요기서 잘못된 말! '리'는 '-속에'란 뜻으로, 비밀리에는 돼도, 공개리에는 좀 어색) 행해진 당신의 의사 결정 과정이 들려주는 매혹적인 돌림노래예요!(93)
행복이 있을 만한 곳의 약도와 그걸 찾아내는 법이 담긴 안내서는 없어요.
누구나 자기 방식으로 가장 빨리 발견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 곳에서 행복을 찾는 거예요.(303)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행운'의 네잎클로버를 찾아헤매는 인간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었는데,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지천으로 깔린 '행복'의 세잎클로버를 놓치고서 추구하는 네잎클로버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