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푸른숲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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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레 드 발자크. 프랑스의 근대 문학 대표주자로 발자크가 있다.
단테의 '신곡'이 중세의 천국을 그리는 <신들의 희극>이라면,
발자크의 '인간 희극'은 근대의 인간 세계를 그리는 <인간들의 희극>이다.
제목을 보자면 그렇다는 거다. devine comedia, human comedia   
신의 구조물에 맞선 '인간 사회의 구조물'로서의 <인간 희극>. 멋진 발상이다.

자신을 단테만큼의 비중에 놓으려는 오만과 자신감에 가득찼던 작가 발자크.
그의 인간 희극에는 근대 프랑스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인간상으로 가득하다고 한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지막 작품인 '발자크 평전'은 유작이기때문에 쌈박한 평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마지막 부분이 발자크의 죽음으로 다소 당황스럽게 끝나고 있기 때문이다. 
발자크의 삶, 그 자체가 하나의 인간상을 이루어 <인간 희극>의 한 장을 이룰 법하다. 

여러 가지 사업을 의욕적으로 벌이지만 늘 경제적 곤란에 부닥치고,
경제적 곤란을 극복하려 여러 여인들에게 선을 대 보지만 결국 여인들과도 엇갈리기 일쑤.
보잘것 없는 작품이라도 이해할 수도, 표현할 길도 없는 생산 속도로 작업하는 작가.
작업복으로는 '수도복'을 입고, 한밤중부터 온몸으로 쓰는 대 작가(그로쎄 발자크)

발자크는 한 세계를 만들어냈지만, 세상은 그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았다.(520)
이런 것이 츠바이크의 평가다. 냉정하다.
평전이라면 마지막 부분에서 대상 인물에 대한 평가가 드리워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런 부분이 없는 마지막은... 8월의 크리스마스같은 느낌이랄까... 

의지를 투입하면 물러설 줄 몰랐던(546) 탓에 늘 경제적 곤란에 직면했던 발자크. 
그러나, '큰 나무는 주변의 땅을 메마르게 만든다'는 그의 말처럼 수많은 사람들과 일시적으로 알고 지냈지만 서른 살에 이미 내면적 인간관계를 확대하지 않는다. 독한 작가...

그의 창작 활동은 '리얼리즘의 승리'라고 불리우는데, 그 방법은 이렇다.
모든 인간은 제대로 관찰되고, 그 비밀까지 탐색된다.
그들이 서로 맞서도록 그대로 놓아두기만 하면 된다.
세계는 계속 뒤섞이고 악은 악하고, 선은 선하고, 비겁함, 간계, 비열함 등을 전혀 도덕적인 강조 없이 힘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밀도가 전부다.
그것을 내면에 지니고 그것을 인식할 줄 아는 사람이 곧 작가다
.(307) 

발자크에게 있어서 바라보는 것은 곧 꿰뚫는 것이며, 배우지 않고도 알고, 마법을 통해 알게 된다는 사실(457) 

투철한 리얼리즘의 정신이 그의 작품 속 인물들에게 그 시대를 숨쉬어서 독자들에게 날숨을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그의 작품 속에 살아있다.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개별적인 인물들을 여러 작품에 되풀이하여 등장시키고,
인물 유형들이 이렇게 여러 작품에 돌아다니게 함으로써
모든 계층과 직업과 사상과 감정과 맥락들을 포괄하는 복잡한 문학적 시대사를 쓴다는 결실 풍부한 착상
.(184) 
파헤칠 줄만 알면 현실은 끝도 없는 광산이고, 모든 인간은 <인간 희극>의 배우가 된다.(308)
그래서 개별적 인간들은 전형적인 유형으로 묘사되는 것이다.(310) 

인간 본성의 무한한 다양성을 예술가는 관찰하기만 하면 된다.
우연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소설가.
창조적이기 위해서 인간은 우연을 탐구하기만 하면 된다.
프랑스 사회 자체가 역사 서술가이고 나는 단지 그 서기일 뿐.
미덕과 악덕의 목록을 만들고 사회의 가장 중요한 사건들을 고르고, 수많은 동일한 종류의 성격들을 통합시켜 유형을 만들어냄으로써 그 많은 역사가들이 잊었던 풍속사를 쓴 것.(561)

이것이 150년이 지난 오늘날도 발자크의 이름을 남기게 된 힘이다. 

발자크의 평전은 그를 위인으로 그리기보다는, 그의 삶의 굴곡을 묘사하는 데 힘을 쓴다는 느낌이다. 
파국의 상황에서 혼란을 느끼고 절망상황에서 창조하기는 불가능한데, 발자크라는 특이한 현상에서는 모든 논리적 결론이 빗나간다.
그가 살고 있는 두 세계, 현실과 상상 세계는 그의 내부에서 공기가 통하지 않도록 서로 차단되어 있었다.(281)  

그의 자신감은 역시 대작가임을 증명한다.
사회의 역사와 비판, 사회적 악의 분석과 사회적 원칙의 언급을 포함하는 이 엄청난 계획은 내 작품에 지금 주어진 <인간 희극>이라는 제목을 주기에 무리가 없다고 생각된다.
이 제목이 주제넘은 것인가? 그것은 정당한 것인가?
전집이 완결되고 나면 여론이 그것을 판정할 일이다
.(563) 

자신의 꿈을 오직 책에서만 만들어낼 수 있을 뿐,
현실에서는 절대로 이룰 수 없었던 발자크의 운명의 법칙
.(657)
츠바이크의 발자크에 대한 평가는 이렇게 뾰족하고 까칠하다.
누구도 섣불리 함부로 말하기 어려운 <괴물 발자크>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큰 애정을 가졌던 츠바이크였기에 발자크에 대하여 이런 말을 할 수 있으리라.  

발자크의 속도로 삶을 사는 일.
열정과 자신감과 의지로 일관하는 삶에 대하여 읽는 일은 타인의 힘겨운 삶을 통하여 에너지를 얻는 일이 되리라 생각한다.  

글을 쓰는 이들이라면 발자크 평전을 꼭 틈내서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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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1쪽에 '버력덩이'란 말이 나온다.
'버력'이란, '광석이나 석탄을 캘 때 나오는, 광물 성분이 섞이지 않은 잡돌'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것들이 덩어지진 게 아니라, 더미로 쌓여있는 것이므로 버력더미라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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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란 2010-03-05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마치 한사람의 인생을 눈앞에서 바로 바로 보는 것처럼 생동감이 넘칠정도로 제대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저는 제대로 감정이입을 했었죠! 또한 츠바이크야 말로 제가 알고 있는 인물평전의 최고의 대가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작가의 마지막 삶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끝내 못내 아쉽기도 합니다. 더 오래 살았다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려줄수 있는 양반이었을 텐데.....

글샘 2010-03-05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만, 발자크를 써놓고 자유롭게 죽은 츠바이크의 영혼이 부럽기도 하더군요. ㅎㅎ 저도 최고의 평전 작가라는 의견에는 동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