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을 때린 동영상이 화제다.
5학년 아이 하나를 청소용 빗자루로 마구 때리는 모습은 분명 흥분한 모습이었고, 다른 아이들을 다섯 대씩 때리는 것도 퍽퍽 패는 느낌이었다. 아이가 동영상 촬영을 한 것은 이전에도 문제 상황이 많았을 것이란 추론까지 하게 한다. 비슷한 말도 함께 올렸다.
아고라 교육 칸에도 체벌 논란이 벌어졌다.
아이를 때리거나 벌세우는 일은 체벌이라 한다.
반성문 쓰거나 상담하는 일이 아닌, 몸으로 벌을 서는 일.
오리걸음(작년에 죽은 아이도 있다.), 토끼뜀, 귀잡고 일어섰다 앉기, 푸시업, 꼬라박기(원산폭격), 한강 철교, 코브라 트위스트, 명태말리기(엎드린 자세로 다리 높은 곳에 올리기, 군대에서도 못하게 하는 벌)... 이런 것들은 모두 군대 훈련소에서 배운 것이다. 옛날엔 서로 뺨때리기 등도 서슴지 않고 시키기도 했지만...
때리는 것도, 손바닥, 엉덩이, 허벅지, 종아리... 이정도는 괜찮지만, 발바닥, 대퇴부, 등짝, 뺨, 머리 등을 때리기도 한다. 몽둥이의 규격도 가느다란 회초리부터 빗자루 몽둥이처럼 묵직한 것, 각목의 수준까지 있고, 플라스틱이나 골프채 등도 동원된다.
나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체벌의 효과를 절실히 깨닫는다.
아이들도 안 때리는 선생님보다, 엄격하게 수업을 이끄는 선생님을 선호한다. 그냥 안 때리면서 수업이 흐트러지면, 이건 수업이란 목적 자체를 달성하지 못한 것이므로 무효다. 그렇지만, 문제는 아이들이 수용하는 체벌과 저항하는 폭력 사이가 0.00000000000000001밀리의 차이도 없다는 것이다.
인문계 고3 아이가 수업 시간에 책도 없이 앉아있다. 회초리로 팔뚝이라도 한대 때려 줘야 속이 시원하다. 얄미운 넘. 어떻게 수업 시간에 그렇게 무관심하게 앉았을수가... 단속을 하고 야단을 쳐야 마지못해 준비한다. 이런 다큰(나보다 더 큰) 아이들도 그런데, 초딩들이야 오죽하랴.
특히 부모님이 챙겨주지 못하는 아이들, 거기다가 초등 남학생의 많은 수는 적응하지 못하고 ADHD 수준의 행동장애까지 보이는 판이니, 사랑의 회초리나 체벌이 아니라 매질하고 싶은 순간들도 많을 것이다.
나는 교육적 체벌과 폭력의 간극을 성폭행과 애정표현의 사이에 비유하고 싶다.
받아들이는 사람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성폭행이 되지만, 받아들이면 애정 표시가 되듯,
학생이 받아들이면 교육적 체벌이 되지만, 저항하면 폭력이 된다.
어른들의 잣대로, 인권을 운운하면서 체벌에 대해 쏟아놓는 발언들은 학교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아이들이 부당한 체벌이라고 여겨지는 경우가 반복될 경우, <시정을 요구할 수 있는 통로>를 학교에 개설해 둬야 한다.
그 통로는 권위적이거나 소통이 막힌 '학교 관계자'여서는 안 된다.
객관적으로 사태를 파악하고, 교육적 해결을 도모할 수 있는 입장이어야 한다.
지금의 학교는 사건을 덮기에 급급하고, 교육청도 꼬리 잘라내기에 신경이 몰린다.
보신주의가 판친다. 지금의 교장, 교감, 장학사들의 권력 구조가 그렇게 되어있다.
학생을 아예 못 때리게 한다. 그리고 교칙대로 정말 처벌하나? 그럼 매일 징계위원회 열기에 학교는 정신없어질 것이다.
현실적으로 체벌을 제한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엉덩이에 멍들었다고 진단서 끊어서 고발하는 부모도 있는가 하면, 내 자식을 때려가면서라도 올바르게 가르쳐 주기를 바라는 부모도 많지 않은가.
인권의 기준도 사람에 따라 다르듯, 체벌도 아이들이 견디지 못하는 치욕스러운 경우에 <시정을 요구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 기구는 '교육청'이나 '학교'와도 관계없는 '독립된 기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시청이나 구청 단위에서 <감사>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기구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져 본다.
서울시에서 제대로 된 교육감이 당선된다면, 다양한 건의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