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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와 계급재생산 - 반학교문화, 일상, 저항
폴 윌리스 지음, 김찬호 외 옮김 / 이매진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요즘 '진상'이란 말이 많이 쓰인다. 꼴통, 문제아, 못생긴 넘. 뭐, 이런 경우에 쓰는 말인 듯 싶다. 바보, 병신, 온달같은 욕보다는 덜 비속해 보이지만, 암튼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 쓰는 말이다.
실업계 학교의 아이들은 시간이 많다. 그 시간을 유용한 데 쓸 수 없을까?를 많은 선생님들이 고민했다. 무료로 한자나 수업을 해준다고도 해 봤고, 연극반 같은 걸 이끌기도 한다. 풍물반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활동시키기도 하고, 봉사 동아리도 꾸려보고 한다. 의욕적으로 시작한 결과는 참 초라하다. 아이들이 무슨 활동에도 참여하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이 책은 1978년에 나온 책이어서 현대 사회의 아이들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이 아이들의 모습은 지금 우리 사회의 아이들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다.
이 책의 결론은 이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육 패러다임은 '공정한 테스트'를 거치는 것처럼 보인다. <지식>을 통해 <자격>을 주고, 자격에 따라 <고소득>이 분배되며 <풍요로운 소비>로 이어지는 삶. 이에 반하는 사람은 무식하고 무자격이고 저소득이고 가난의 재생산으로 이어진다는 것. 사회가 구조적으로 부모와 아이들을 재생산 구조 속에 밀어 넣는다고 하는 이야기는 많았지만, 이 책은 아이들과의 면담을 통하여, 아이들이 스스로 노동자 조직에 알맞을 만한 행동을 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아이들이 스스로 가난과 역경을 극복하려 하지 않고, 억척스러운 노동자성을 강조하는 "싸나이"를 좋아한다는 것.
나도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야외활동 나가기가 부끄럽다.
우리 아이들은 '존나게'가 입에 붙어 있으며 'C발'같은 말들도 1분에 한 번은 넣어 줘야 말발이 매끄러워진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쉬는 시간에 복도, 계단, 화장실 등에서 흡연하는 일은 다반사고, 심지어는 교실에서 흡연 방뇨를 일삼는 넘들도 있다.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는 데 이골이 나 있으며, 쉬는 시간에 도박을 즐긴다.
마음에 안 들면 주먹이 먼저 나가고, 좀 물렁한 교사에게 대들며, 여자아이들을 따먹는 다는 둥의 이야기를 서슴지 않고 한다.
지각 조퇴 결과 결석을 숱하게 하면서도 결코 자퇴는 하지 않으려 한다.
사물함 안은 정리되어 있지 않고 자물쇠도 없다.
이 아이들에게 의미있는 양식은 교사들이 생각하는 것과 완전히 달라 보인다.
이 아이들은 긴 머리 휘날리며 오토바이에 몸을 싣고 부-아아앙----- 달리는 멋진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삶의 낙인지도 모른다.
이 책이 70년대 산업화 사회 말기에 쓰여진 책이었기에 말미에 비정규직의 증가, 자동화에 따른 노동인구 감소에 대한 우려가 조금 들어있긴 하지만, 일단 이 연구의 대상이 된 '싸나이'들은 장래 노동 계급이 될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이름도 노동자스러운 '해머타운'의 아이들의 현재는 어떨까?
중간 계급으로 진입할 수 있는 길을 애써 외면하고 스스로의 능력을 낮게 평가하며, 반항적이고 무식한 길을 자발적으로 걸어간 그들의 현재는...
노동 시장은 세계화에 편승하여 자동화되고, 이주노동자들로 가득 들어찬다. 우리 아이들은 장래 비정규직 노동자가 될 희망조차 없는 아이들이다.
자본주의 시장의 극단에서조차 내몰린 아이들의 미래는 범죄와 파괴로 이어지는 것이나 아닐는지... 이 책을 읽으면서 걱정이 크다.
그저 일상적 저항과 반학교 문화를 거쳐 노동 계급으로 성장하여 자본주의에 반체제적 사고를 가지는 건강한 사람으로 자란다면 이 아이들의 일상적 일탈은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지만... 문제는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라는 무서운 걱정이...
장마는 계속 우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