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하는 공부 - 강유원 잡문집
강유원 지음 / 여름언덕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강유원은 한 마디로 시니컬한 사람이다.

시니컬한 사람은 비주류에 속하고, 왕따가 되기 쉬우며, 왕따인 주제에 남들을 혼자서 다 따돌렸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강유원의 책은 딱, 보면 안 팔리게 생겨 먹었다. 홍보도 안 될 것이 '여름언덕'이란 출판사는 보다보다 처음 본 출판사다.

그런데 점쟁이보다 못한 '철학과'를 그것도 박사가 될 때까지 공부한 사람으로서 그의 글은 참으로 정직하다. 그의 이력이 궁금하여 책날개를 보니, '동국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를 받았다. 몇 권의 책을 쓰거나 번역했다.'가 전부다. 이 사람 참 담백하고 깔끔하다. 딱 내 스탈이다. 여자들도 좋아할 스타일. 그런데, 돈이 없어서 속물들은 별로 안 따를 스탈이지만...

공부의 방식이 베끼기이고 한 50번쯤 좋은 책을 읽는 것이란 말에는 동감이면서도 50번에 질린다. 나는 좋은 책을 한 번도 제대로 못 읽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몇 번 읽어도 몽땅 까먹어 버리기도 했을 뿐더러...

공부라면, 공자 맹자를 달달 외우고, 그것들을 적절히 베껴서 글을 만들어 내는 것이 문학이고, 학문이라고 생각했던 민족, 개화 이후로는 오로지 썩은 동앗줄이 아닌 줄을 잡기 위해서 택해야 했던 '공부' 제일주의가  만든 '서울대학교' 및 명문대의 전설은 그래서 '부실한 명문'의 결과를 낳고 말았겠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학문적 성과보다는 폭탄주가 더 유효했으며, 제대로 된 논문 한 편 보다는 일 년에 수십 편의 쓰레기 잡글들을 '베끼고, 재탕 삼탕 우려내고, 바치고, 훔치는' 교수들의 '학자연'하는 실상을 정말 시니컬하게 읽어내고 쓰는 글이다.

이 책은 실제로 '대학 입학 공부'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다.
제대로 된 <학문>을 하자는 충언이다. 충언을 바친 충신을 죽여버린 임금의 말로는 어땠는지 다 알지 않는가. 이 땅의 학문이 밑도 끝도 없이 곤두박질치는 것에는 충신의 충언을 우습게 보는 권위자들이 있기 때문이란 것이 그의 판결이겠다. 이래갖고는 출세하기 힘들지^^ 그치만, 강유원씨 나같은 사람이 좋아하니깐 힘 내쇼~~

그의 시니컬한 말들에 속이 시원한 곳이 몇 부분 있다.

51. 그의 아들의 전락에 대해서는 애비가 나쁜 짓을 그만큼 했으니 마땅히 그런 벌을 받아야지라는 일종의 통쾌함을 느낀다. 뻔뻔스럽게 설치고 다니는 그의 큰딸에 대해서는 정말 때려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누구게요? 그란... 이렇게 시원스럽게 그때 그 새끼를 깐 책은 잘 없지 싶다. 때려죽이고 싶다...라고라...

56. 꽤 많은 소설가들이 소설만 써서 먹고 살기를 꿈꿀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런 단계에 들어섰을 때 그가 여전히 소설가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기업가로 변신할 것인지는 예측할 수 없다.... 그는 '소설가'로 부를 수 없고 '기업가'로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 죄일선보같은 데서는 그를 선전해주고 그를 화제의 중심으로 끌어올리며, 그런 신세를 갚기 위해서 그는 그 매체를 위해 글을 쓰기도 한다. 공생관계에 들어 있는 것이다.

이런 자식들도 많지만, 그 대표자로 꼽은 사람이 정말 딱, 이다. 통쾌하다.

74. 000 같은 이가 텔레비전 제작자의 이쁨을 받는 이유,... 그는 사회과학적 인식이 결여되어있으므로 미디어에서 말썽을 일으킬만한 소지를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 게다가 상당한 쑈맨쉽도 가지고 있다. 그가 다루는 주제는 언제 들어도 좋은 공자님 말씀이다. 방송의 입맛에 딱 맞아 떨어지는 안전빵이다. 그는 자신에 대한 진지한 학술적 비판에는 거의 응대를 하지 않는다.

카멜레온처럼 정권이 바뀔 때마다 텔레비전에 나와서 충성을 다짐하는 거 아닌가 싶은 이넘은 텔레비전에 나와서 지가 쓴 책 팔아먹는 데 도가 텄다.

75. 이들과 비슷한 부류들로 예전에 자유기업센터 소장을 하던 000처럼 기업의 연구소에서 일하는 박사들이나 국가기관에서 일하는 연구원들인데, 이들 모두를 우리는 유기적 지식인, 기능적 지식인이라 부를 수 있다. ... 그들은 월급 주는 회사를 위해서 일한다. 그들의 일은 이미 미디어에 길들어진 학자들을 관리하고 그런 재질이 있어 뵈는 똘마니들을 발굴해서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구사하는 것이다. 자신이 학위를 딴 학문 분야의 학회에 참석해서 학자인 척하며, 거기에 참석한 다른 학자들은 기자를 가까이 하고자 할근거린다. 어차피 미디어를 핥아먹고 살기는 매일반...

이 인간의 책들은 구역질 난다. 근데 죄일선보는 참 사랑하는 작자겠다.

리영희 선생님을 존경하는 이유도 솔직 담백하다. 선생님의 글을 읽고 나서, 결론을 보고 생각한 것도 재밌다.
결론 : 한반도에서는 전쟁이 안 일어난다.
반론 : 물론 예외는 있다. 미국이 전쟁을 일으켜야겠다고 맘먹으면 전쟁은 난다. 한국에서 전쟁을 일으킬 원인은 미국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쉬운 문제를 이렇게 쉽게 명백하게 이야기한 사람 어디 있던가? 쥐뿔도 잘난 체하면서 이리 저리 에두르고 다니기만 했지, 결론은 없지 않았던가 말이다.

인문학의 위기를 '학자들의 돈타령'이라고 하는 부분도 통쾌하다.
인문학자가 유사-공학적 태도로 문제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이미 인문학의 위기라고...

그의 충고. 리더십에 관한 고전을 쓰고 싶은가? 그러면 고전을 읽으라.
진정한 리더십을 가지고 싶은가? 그러면 고전을 읽으라...
부박한 세상에서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사회에서 믿을 건 고전뿐이다... 라고 하면서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쓰기 전에 이미 '티투스 리비우스의 첫 10권에 관하여'를 저술한 예를 든다. 징헌 넘들끼리 서로 알아보는군. ㅋㅋ

그의 <시니컬>한 방법론이 제시한 <지도교수론>은 그의 탁견이다.
이런 지도교수 만나면 나도 몸으로 한번 공부해 보고 싶다...

지도학생에게 잔심부름 시키지 않는 교수.
자기가 쓴 논문을 자기가 타이핑하고 편집까지 하는 교수.
출판사에서 넘어온 교정본을 자신이 교정보는 교수,
새로울 것도 없고 치열함은 더더욱없이 사교장으로 변해버린 학회 따위에는 관심도 두지않는 교수.
대학원 수업 시간을 꽉 채우고 끝내는 교수.
고전만 붙잡고, 세월가는 것도 모르고 그것만 읽히는 교수,
논문 주제를 상의하면 <알아서 써보라>고 하는 교수,
막상 논문을 써가면 주격 조사나 접속사부터 따지는 교수,
논문 인용문의 원전을 죄다 찾아보고 잘못된 번역과 적절치 않은 인용을 지적해주는 교수,
이렇게까지 해놓고도 <지금까지는 문장 연습과 논문쓰기 연습이었으니까 이제부터 주제를 잘 정하고, 본격적으로 써보라>고 한마디 툭 던지는 교수,
자신이 정한 기준에 합당치 않으면 아무리 여러 학기가 지나도 결코 논문을 통과시켜주지 않는 교수.
같은 주제에 대해서 자신이 가진 견해와 달라도 학생의 주장이 논리적이면 인정해주는 교수,
자신에게 박사 학위를 받은 학생에게 다른 학교 강의 하나 알선해주지 않는 교수,
아무리 오랜 세월을 공부해도 두 사람의 거리가 딱 그 만큼에 멈춰 있게 하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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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7-06-17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명성에 굶주린 거지들... 많죠. 서정주도 그렇고, 박목월도 그런데, 그 아들 박동규는 애비 뺨칩디다. ㅎㅎㅎ 박동규는 대학다닐 때 수업을 들었는데 거의 방송 출연한다고 결강이 많았어요. 3학점짜리를 30분 수업하는데, 지랄같이 들을 것도 없곤 했죠.
저같이 착한 사람에게 시니컬하고 욕도 잘 한다 하심은... ㅎㅎㅎ 제대로 보셨군요.

꼬마요정 2007-06-17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51의 그는 박정희인가요??^^ 56은.. 이문열? 74는 도올??
그 외에는 전혀 짐작이 안 가는데 왠지 이 책 꼭 읽어봐야 하겠어요~~ 궁금해서요^^

글샘 2007-06-18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퀴즈를 낸 것도 아닌데, 이렇게 정답을 다시다니... 이거 선거법 위반이라고 깝죽대는 미친개가 물까봐 못 쓴 거랍니다. ㅎㅎㅎ 공병호라고 한 사람은 못 맞추셨네요. 한번 읽어 보시죠^^

달팽이 2007-06-19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올 선생처럼 시니컬하고 과감한 언변은 사회의 가려운 것일수록 시원하겠죠.
하지만 그 이면에는 자신의 칼같은 말 언저리를 포용할 수 있는 마음까지 갖추고 있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으리라는 생각입니다.
간추려놓은 글들이 재미있습니다.
보관함으로 넘깁니다.

꼬마요정 2007-06-19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나머지 한 사람이 공병호였군요~ 그러고보니 딱이네요^^

글샘 2007-06-20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도올처럼 잘난 척 병에 걸린 사람들이 조금만 겸손하면 큰 사람이 될 수도 있을텐데요...
꼬마요정님... 저도 공병호는 아예 읽은 일이 없어서 그 인간이 욕먹을 인간인지는 분간이 안 되지만... 안 읽어도 뻔할 뻔자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