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의 나라 럭셔리 코리아
김난도 지음 / 미래의창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패션과 유행의 거리, 프랑스에도 다 없다는 세계 유명 화장품 브랜드들이 서울에만도 즐비하단다.
어쩌다가 이 나라는 잘 살지도 못하는 주제에, 여성들은 얼굴에 화장품을 떡칠을 해야 하고, 수십 만원 짜리 양복과 넥타이를 매고 다녀야 신사 축에 드는 단정한 복장이 되어버린 것인지...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라는 사람이 "한국의 명품 현상"의 원인을 주로 분석한 책이다.
책 표지에 심층 인터뷰를 통해 알아본 대한민국 '명품 소비 증후군'이라고 부제가 붙어있다.
그런데 읽다 보니 웃음이 난다.
심층 인터뷰는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것부터 사치가 아닐까? 서울대 교수라는 사람이 책을 내는데,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부제를 쓰도록 냅두다니...
열두 명을, 그것도 상류층(월 1000만원 이상 가계 수입), 중상류층(800만원 이상), 중류층(400만원)이라는 특이한 기준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눈 것을 (이런 것은 인터뷰도 아니다. 인터뷰라면 대화의 방향을 가지고 논의를 이끄는 것이어야 한다.) 대학원생들에게 작업하게 해서 책으로 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대략 개요를 맞춰 두고, 자료를 끼워 넣은 듯한...

그렇지만, 이 사람의 논리는 꽤나 명쾌하다.

'보이지 않는 잉크' 이론을 이야기한다. 음악, 시, 놀이, 춤, 등 상류층의 소속기호로 삼는 은밀한 표지라는데 계급성이 사라진 현대에선 사치품의 높은 가격만이 지위를 상징하는 '잉크'가 된다는 것이다. 사치품은 단순한 사물의 자리를 뛰어넘어 '물신'이 되어버린다. 그 물건은 '사용하는' 물건이기에 앞서 '이야기하는' 물건이라는 것.

특히나 한국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최근까지 '신분제'가 엄격하게 적용된 사회였다. 오죽하면 아직도 '쌍놈 = 상민 = 평민'이 욕으로 자리잡고 있는 나라다. 가진자 = 양반 = 우월한 인간, 이었으며, 못가진자 = 쌍놈 = 저열한 인간의 두 세계를 명쾌하게 살아냈던 역사가 우리 유전자에 남긴 것은 쌍놈이 되어선 안된다...는 지상 명령이었는지도 모른다.

텔레비전도 명품이고, 가방, 손수건, 양복 하찮은 액세서리까지도 다 명품이다. 그것이 보이지 않는 잉크 역할을 해서 쌍놈을 양반으로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상품이 지위의 대리물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한국은 왜 부자를 존경하지 않는지도 잘 밝히고 있다. 신분제가 혁명을 통해 무너진 것이 아니라, 일제에 의해 강제로 근대국가 이행을 요구당했고 해방 이후 부의 재분배에서 극도의 실패한 것이 한국 사회이기 때문이다. 친일파의 후손은 땅부자로, 독립운동가의 후예는 거지로 살아온 현대사가 그것을 말해준다.

파노플리 효과라는 것도 있단다. '세트'를 일컫는 불어라는데, 아이들이 부엌놀이 세트, 병원놀이 세트를 갖고 놀면 잠시 그 신분이 된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외제 고가 사치품의 선호를 설명하기에 이 논리도 맞아들어간다.

상품의 로고는 100가지도 넘게 알지만 나무의 종류는 열 가지도 알지 못하는 존재('어플루엔저'의 저자 존 더 그라프)
"천국을 표현하라고 하면, 세계에서 가장 큰 백화점을 묘사할 것"(에리히 프롬)
소비자는 정말 스스로를 보호할 힘이 없는 것일까?

그가 인용한 '박남수의 새'는 그래서 어쩌면 현대 인간 욕망의 비극을 가장 잘 표현한 시인지도 모르겠다.

새의 3 부분.

...... 포수는 한 덩이 납으로/ 그 순수를 겨냥하지만,  / 매양 쏘는 것은 / 피에 젖은 한 마리 상한 새에 지나지 않는다......

그 갈망의 결과물이 '피에 젖은 한 마리 상한 새'에 지나지 않음은, 소비가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없음을 힘주어 말하는 것이다.

소비라는 목발을 짚고 서지 않고는 바로 설 수 없는 장애인으로 현대인을 그린 프롬.
물건을 사는 買 정열을 행복한 삶을 사는 生 열정으로 바꾸어라! 행복한 삶이 명품이다! 하는 지은이의 주장은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나라"에서 그닥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사람살기 좋은 나라>가 아닌 <기업하기 좋은 나라> 대한민국에서...

그가 소비 사회의 물질 문화의 특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바람에, IMF 이후 급부상한 명품의 문제점을 '한국의 특수성'으로 이해하기는 어려워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선진국의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말해버리면 이 못사는 나라의 물신 숭배의 광풍은 '티파니 보석점의 그림의 떡'을 우러르는 거지들만을 양산할 따름이다.

외제 사치품 공화국으로서의 '럭셔리 코리아'는 소비자의 문제만이 아니다. 저자도 마지막에서 잠시, 너무도 짧게 언급하듯이 정부가 '경제 부양책'으로 내놓은 카드 경제의 소산이지, 개인의 허영에 그 원인을 두기엔 너무도 구조적인 문제이다.

아, 그러나... 구조적 문제라는 말로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은 '해결책이 없다'는 말을 동어반복하는 것과 다름없어 보여서 언제나 가슴이 먹먹하다. 물건에 둘러싸인 인간이 물건을 파괴할 순 없는데...

세계화의 정글 속에서 약육강식, 적자생존만이 정글의 법칙이라면,
럭셔리 코리아는 '약한자의 고기'가 되어 '강한자의 식사'거리로 전락하게 되어버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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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6-11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비자본주의 라는 말 자체가 이미 소비가 한국적 특수성을 벗어나 있다는 뜻 아닐까 합니다....'나는 소비한다.고로 존재한다'

글샘 2007-06-11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네요^^ 예찬이랑 잘 놀고 계시죠?
근데, 과도한 소비가 한국의 특수성의 한 측면이기도 한 것 같지요. 명품이란 이름의 외제 사치품들이... 정말 소비해야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걸까요?

혜덕화 2007-06-11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저는 명품 하나도 없는데, 그런데도 세상에서 제일 부자 같다고 느끼니, 저 명품족들이 보면 저도 쌍놈일까요?^^ 그래도 대한민국 제일의 럭셔리한 삶은 권정생, 전우익 같은 분이 아닐까, 싶네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_()_

글샘 2007-06-11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끝간데 모르는 소비지향의 세계를 이미 거꾸로 돌리기엔 늦은 듯 싶습니다.
그래도 전에는 권정생 선생님, 전우익 선생님처럼 서늘한 죽비를 내리치는 분들도 간혹 계시곤 했는데요... 미디어가 갈수록 저질스러워져서 걱정입니다.

드팀전 2007-06-11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품소비는 한국 사회의 특수성은 아니라고 봅니다.그건 자본주의 사회의 특성이라고 보여지구요.우리가 한국에 사니까 그 부분을 조금더 민감하고 실제적으로 바라보는 것이겠지요.명품소비를 소비자 의식과 윤리 문제로만 보기에는 어려운지점이 생각보다 많다는게 제 생각이랍니다.
권,전 선생님들처럼 체제로부터 탈영하는 것이 답인데..실제 그분들을 추앙하는 사람들중 많은 이들은 여전히 그 체제를 향유하며-달아날 수 가 없으니까- 그 분들의 '탈영'만을 소비하는 건 아닌지도 의문이 생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