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꽃나무 우리시대의 논리 5
김진숙 지음 / 후마니타스 / 2007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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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왜 이 책은 첫머리에서부터 내 상처를 헤집기 시작하는 것인지... 영원히 아물지 않을 상처인 줄은 알았지만, 그래서 더욱 잊고 살아왔던 상처였는데...

생일 선물로 아들 녀석에게 이 책을 사달라고 했다.
아들은 무슨 책인줄도 모르면서 사다 주었다. 생일 축하한다는 편지와 함께.
나중에 아들 녀석도 노동자가 될 것이고, 그러면, 이 책을 다시 읽혀 주리라.
아니, 대학생 정도 나이가 되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라고 하는 열일고여덟의 청춘을 김진숙에게선 읽을 수 없었다.
그저 파리하게 마른 여자애가 늘 잠에 쫓기고 일에 짓눌려 직장을 전전하는...
멋도 모르고 대기업에 취직한 것만 좋아하던 기숙사 생활과,
치욕스러움이 일상이던 버스 안내양 생활.(돈을 만지는 일이었기에 온갖 치욕스런 일들이 뉴스거리였다.)
그리고 한진중공업의 조선소 그 험하던 일과 해고 이후의 투쟁으로 일관한 삶.

아, 이제 오십줄을 바라보는 김진숙, 그의 이야기를 어찌 눈물 없이 읽을 수 있으랴...

작년 가을, 홍세화 강연을 들으러 가던 길에 부산일보 엘리베이터에서 그를 본 적이 있다. 자그마한 키에 후질근한 색을 하나 메고 있었는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이 책의 페이지마다에는 눈물이 가득하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흘린 땀이 바래서 소금꽃이 되어버린 그 삶들이 펼쳐져있다.

군사 독재 정권은 노동자들을 짓밟아 재벌을 키웠고, 재벌과 정권은 개미와 진딧물처럼 서로를 키워왔다.

하느님도 썩은 디를 포크레인으로 파다파다 못 파서 도로 덮어 버린 데가 우리 나라...라는 농섞인 노동자의 목소리는 노동 현장의 모습을 지옥으로 그린다.

87년 쌍팔년... 생각을 하면서, 그 때만 혀도 우리 힘이 너무 많응께 나 같은 건 으디 낄 자리도 읎었지라. 참말로 그 때가 봄날이제. 그때 겨울을 준비혔어야 되는 거인다. 사시사철 봄만 있을지 알았제. 요로크롬 찬바람 씽씽 부는 겨울이 올지 누가 알았간디... 하는 이야기는 삶을 너무 많이 살아버린 사람들의 달관도 느껴진다. 사실, 89년 전교조 탄압을 필두로 공안 정국이 계속되지 않았던가...

아직도 학교에선 교사가 노동자냐?하는 배부른 소리들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교사는 전문직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지금 당장 교육부에선 예체능 교과를 성적에서 제외하겠다고 하는 판국에...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들을 어떻게 한줄로 평가를 하겠다는 건지, 그 의도는 분명하다.
경쟁을 붙이면 결국 노조의 힘은 극도로 약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교사는 국가공무원의 신분을 잃고, 지방직화 될 것이다.
대한민국은 서울공화국과 대동소이한 고유명사이기 때문에 지방직화 된 공무원의 신분은 곧 비정규직에 다름아니게 될 것이다. 아이들은 점점 줄고 있는데, 올해가 무슨 황금돼지핸지 뭔지 떠벌여서 잠시 출산율이 높아지곤 있지만,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회적 불임>은 시대적 대세요, 국가적 패인이 될 것이다.

이 나라가 굴러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야말로 교회라도 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언제까지고 국가보안법은 탄탄하게 유지될 것 같고,
붉은 줄 좍좍 긋는 뉴스들은 시도때도 없이 줄을 타며,
이 땅덩어리의 훌륭한 인물들이 예전엔 모조리 군인이었는데(우리 초, 중딩때 교과서엔 무슨 장군과 애매한 독립운동가들이 수두룩했다. 김구도 왜곡된 인물 중 하나이지 않은가.),
이제 이 땅의 위인들은 스포츠 선수들 뿐이다. 이승엽과 박세리, 박찬호와 김연아, 그리고 박지성과 박태환, 이영표, .... 아, 스포츠 참 싫어하는 나도 이렇게 많은 운동 선수를 외우다니...

이 나라 국민들은 월드컵때 축구 안 보면 마치 '신자 아닌 사람'을 보는 교회 사람들 같다.
자기들끼리 똘똘뭉쳐 무슨무슨 모임에 정말 부지런한...

김진숙의 글들을 읽으며 오래 오래 부끄러웠고, 많이많이 반성한다.
하종강의 노동 운동이 거시적이고 원론적인 것이라면,
김진숙의 노동 운동은 온몸으로 때운 그것일 것이다.
그것이 인텔리와 노동자의 출신 차이에서 온 것일 수도 있겠다.

누군가는 권영길이 87년 6월에 에펠탑 앞에서 특파원으로 찍은 사진을 보면서 그래서 그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된다는 말도 하지만, 이젠 이 땅에서도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그런 찬란한 하늘 말고,
'노동자'도 '사람'인...
그래서 '공고'에 자식을 보내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은 그런 나라가 되어야 하겠다.

내일부터 가난하고, 부모가 못 배우고, 관심이 없어서,
또는 아이들이 머리가 나쁘고, 성질이 게을러서 '공고'에 오게 된 내 아이들에게,
'처지가 공고생'이지만 '인종이 공고생'인 것은 아니라고 또 한동안 핏대 올려 떠들어 보겠지.
우리 아이들의 부모들은 뻔뻔스럽게도 수학여행비 19만원 중 10만원을 넣어 보내며, 나머지는 담임이 알아서 하라는 둥, 1년에 밥값이 천 만원 이상 미납이 되는 현실은 어떻게도 바뀔 수 없는데도...

노동자가 될 아이들에게 '노동자는 자랑스런 것'이라든지, '노동은 신성한 것'이라고 말할 용기가 내겐 별로 남아있지 않다.
'노동자는 투쟁만이 살 길'이고 '단결만이 그 긍지를 지켜낼 수 있다'는 원칙을 이야기하기에는 내 주변에는 너무도 비정규직이 많아져 버린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단 말인지...

그래. 한국엔 없는 '근로기준법'이지만, 그 속에는 노동자의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이 있다.
평화시장 앞에서 온 몸을 횃불로 밝힌 청년 노동자가 죽은 지 37년이 지났지만, 이 어두운 땅엔 아직도 근로기준법이 없고, 근로기준법을 지키는 사장(요즘엔 씨이오라더만, 빌어먹을 씨이오)도 없고, 근로기준법에 맞춰 재판하는 법관도 없다.

오로지 노동자의 힘은 똑같이 못난 노동자들 사이에서 나오는데, 이놈의 빌어먹을 나라는 IMF가 걱정할 정도로 비정규직화가 급격히 이행되고 있어, 노동자들 사이가 하늘과 땅만큼 벌어지고, 서로 낯을 바라보기가 어색하게만 변해가는 시절을 읽는 일은 눈물겨운 일이고, 서글픔만 가득한 일이다.

어제는 밤새 꿈자리가 뒤숭숭했다. 김진숙 때문이었다.
오늘도 곱게 잠자긴 글렀다. 6월에 길바닥에서 썸머타임때문에 길어진 해를 원망하며 독재타도, 호헌철폐를 외쳤던 그 날이 20년이 지났는데, 노동자들의 삶의 질은 갈수록 나빠만 지는 현실을 원망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대학 시절로 시간이 되돌아간다면... 아마 스스로를 포기할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시대는 다시 그 시절로 거꾸로가는 열차를 탄 것이 아닌가 하는 무섬증이 든다.
박공주가 설치고 다니고, 개발 독재를 꿈꾸며 운하를 판다는 삽질맨도 목청을 돋운다.
그들의 본색은 '빨갱이 적출'과 '노동자 탄압'을 모토로 한 '경제 개발'을 표방하는 재벌 살찌우기인데 말이다.

아, 정말 내가 빨갱이가 아니며, 노동자를 돕지도 않고, 나는 노동자도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서 전교조를 탈퇴하고 교회라도(산업 선교회 같은 무서운 빨갱이 교회 아닌) 독실하게 다녀야 할 시대가 오고 있는 걸까?

(그리고 앞으로 다시는 '대학 물먹은 표'내는 '학번' 운운하는 일은 없도록 주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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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6-11 0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퍼갑니다~

드팀전 2007-06-11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힘내삼!!
<사기>에 보면 그런 말이 나옵니다.
"치솟아 오른 용은 떨어지기 마련이고 달은 차면 기운다."
...20년전 항쟁은 역사적의미를 갖는 만큼 또 역사적 한계를 갖는 시위였다고 생각이들어요.그 임계점에서 다시 숨을 고르고 성찰하고 사유해야 하는데 .....
호헌철폐와 직선제라는 과실을 얻었으돼 사회문화적 변화로 이어지지 못한 점이 아쉽습니다.물론 한 방에 모든 걸 해결할 수야 없겠지만...그래서 혁명은 역시 영구적인 듯 합니다.

글샘 2007-06-11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인님... 퍼가서 모하게요? ㅎ
드팀전님... 요즘 날씨 탓인지... 별로 힘이 안 나네요.^^
87년 이후로 벌써 네 번째 맞는 대통령 선건데, 기호 2번이 두 번이나 당선됐는데... 이 사회는 그 가열찬 시대를 거슬러 오르는 '반동'과 '비정규직'의 기운으로 가득한 것 같아 갑갑합니다. 언제 소주나 한 잔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