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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의 별 8 (완결)
김혜린 지음 / 길찾기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북해 옆에 보드니아란 나라가 있었단다. 그 나라엔 멋쟁이 유리핀 멤피스가 있었고, 그는 역사를 읽을 줄 알고 민중을 사랑한 귀족이었다. 결국은 혁명에 성공하고 멋지게 은퇴하여 삶을 살아간다.
20년 전에 북해의 별을 읽을 때는 얼마나 가슴 졸이며 봤는지 모른다.
아마도 전두환 각하의 덕택이었을 게다.
무슨 집회만 잡히면 원천 봉쇄하던 무단 정치 시기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사랑에 대한 환상에도 잡혀있던 대학 새내기였으니...
이제 다시 김혜린을 읽는 일은 그때와는 전혀 다른 감정을 갖게 한다.
혁명이 뒤집어진 시대, 제국주의의 엄포만 횡행하는 시대.
어두웠던 과거에는 <별>이나마 있었지만, 이젠 별도 잃어버린 중세와도 같은 암흑의 시대.
중세의 크리스트교란 독단과 21세기의 미국이란 독선은 맞먹을 만한 블랙홀이 아닐까 하는 생각.
유리핀처럼. 인간을 믿을 수 있을까?
김혜린 나이도 나랑 비슷할 텐데... 이제 그린다면 그런 격정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사랑을 그릴 수 있을까...
고불고불 유려한 선들로 그려진 꽃들과 머리카락 선들 사이에 얽힌 뜨거운 인간의 감정과 혁명의 의지를 읽는 동안 나는 행복하였다. 비록 내가 나이를 먹어 순수함을 잃어가고 있거나 시대가 다시 암흑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한이 있더라도, 김혜린을 읽을 수 있는 책벌레인 인간이란 존재로 사는 것이 즐거웠고, 그 즐거움에 이름붙일 <문학적 생산성>에 엔돌핀이 발생하여 즐거웠는지도 모르겠다.
미국이란 나라가 생길 무렵 유럽의 정치 상황을 세계사 책은 빼먹고 있다. 유럽에는 독일과 프랑스와 몇몇 공국들이 있었다고 나온다. 과연 그랬는가? 소련이 무너지고 독립국가 연합에 속한 숱한 나라들의 역사를 역사가들은 고의적으로 빼먹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역사의식의 방기라고 할 수 있겠다. 직무 유기랄까. 그렇게 생각하면 한국의 역사 따위야 세계사 책에 속하지도 못하리라. 그러니 모르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고...
세계사 책에 없더라도 뜨거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한다.
존재 자체가 잊혀지고, 때론 부정당하더라도 뜨겁게 껴안고 사는 사람들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