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모르는 우리말 - 365일 헷갈리는 365가지
김슬옹.김형배.조경숙 지음 / 모멘토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나는 국어 교사다. 그런데도 맞춤법엔 자신없는 것들이 많았다. 학교에서도 동료 교사들이 시험 문제를 낸다거나 공문서, 가정통신문 등을 작성할 때, 띄어쓰기나 헷갈리는 말들을 물어보곤 하는데 그때마다 자신있게 답할 수 없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그래서 오죽하면 그 어렵고 헷갈리는 맞춤법으로 석사 논문을 다 썼겠나 말이다.

내 석사 논문의 요지는 한글 맞춤법 너무 어렵다. 헷갈리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교육은 너무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이다.

그러던 차에, 작년에 실업계 아이들 대상으로 '국어생활' 과목을 수업하게 되었는데...
교과서가 너무 재미없는 설명문 투성이고, 아이들이 늘어지기 좋게 되어 있어서, '국립국어연구원' 홈페이지에 매달 실리는 '우리말 문제'를 따와서 아이들과 수업하기 시작했는데, 이놈이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열심히 들어서 좋고(시험 문제에 그대로 나니깐...),
아이들도 시험 공부 열심해 해서 좋고(우리 아이들은 조금 어려우면 아예 포기한다ㅠㅜ),
시험문제 낼 때, 복사해서 붙이면 되니 편해서 좋고,
무엇보다 시험 칠 때 빨리 끝나서 감독들이 좋아하고,
시험 마치고 나서도 아이들이 정답에 대해 왈가왈부 시비하지 않아서 좋았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아이들이 시나브로(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국어 맞춤법과 우리말 활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여느 인문계 아이들보다 헷갈리는 것에 대해 정확히 아는 아이들이 많은 편이다.
시험 감독을 갔다 온 젊은 선생님들은 답안지를 모아둔 다음에 아예 모여 앉아서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국어 생활' 시험 뒤엔 꼭 한차례 교사들 대상으로 우리말 강의를 해야했으니... ㅋㅋ 다른 국어 선생님들에게 마구 물어대는 통에 이 시험지를 안 가르친 선생님들은 곤욕을 겪기도 했다. 사실 공부하지 않으면 국어 교사도 자신없는 부분이 맞춤법, 표준어, 외래어 표기법, 헷갈리는 어휘, 띄어쓰기... 이런 것들이다.

이 책 한 권이면, 그동안 헷갈렸던 것을 무지무지하게 많이 해소할 수 있다.
내가 보던 책 수십 권 중, 이만큼 가려운 곳을 시원스레 긁어주는 책은 없었다.
맞춤법 해설서들은 한결같이 고리타분하며 흥미를 똑, 떨어트리는 책이었고,
우리말 바로쓰기 책들도 왠지 어수선하면서 양만 많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 책에 와서는 내가 1년간 아이들과 수업한 것을 책으로 엮은 듯한 생각이 들 정도로 고학력이면서도 우리말 부려 쓰기에 자신 없던 사람들에게 정확한 설명을 적절한 분량으로 하고 있어 보인다.

어제 이 책을 읽다가 아내와 아들에게 5천원 내기를 걸었다. '불평과 불만'의 차이가 뭐게? 하고.
아들이 맞혔다. 불평은 드러내 놓고 투덜거리는 '행위'고, 불만은 '심리 상태'다.

내가 전문가 수준은 아니지만 몇 년 간을 맞춤법 문제에 천착했기 때문에, 상당히 관심있는 편이었는데, 이 책에서는 나도 잘 모르는 문제들을 알기 쉽게 풀어 놓은 점도 마음에 들었다.

익숙지/ 무심치 같은 경우... 익숙하지/ 무심하지 의 '하'가 줄어들 때, ㄱ,ㅂ,ㅅ 뒤에서는 '하'가 통째로 빠지고, 그 외의 경어 ㅎ만 남는단다...

갱신과 경신... 늘 헷갈린다. 여권은 만료되면 갱신하고, 신기록은 경신되는 거다.

사용과 이용의 차이... 사용은 본 목적으로 쓰는 거고, 이용은 편의상 쓰는 일이란다. 성냥개비를 사용하여 불을 붙이고, 성냥개비를 이용하여 퀴즈를 내는 식으로... 도구나 물건은 사용하고, 사람이나 시설은 이용하고...

십만여 원/ 십여만 원...은 차이가 난다. 십만여 원은 십만 원까지가 만 단위고 거기 몇천 원이 더 붙은 것이다. 십여만 원은 십만 원에 만 원짜리가 몇장 더 붙은 것이다. 십만여 원은 십일만 원 미만이고, 십여만 원은 십일만 원 이상 이십만원 미만이다.

친구와 약속을 할는지/ 할런지,
꽃아!를 [꼬차] [꼬사] [꼬다] 어떻게 말음할지,
피해를 입으면 배상하는지/ 보상하는지,
달걀은 껍데기인지/ 껍질인지,
뒤뜰인지 뒷뜰인지... 글을 쓰면서 늘 헷갈리는 분들이 맞춤법에 관한 책을 몹시 목마르게 찾으셨다면,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다른 책들에 비하여 훨씬 시원시원하게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금방 이 문제들의 답은 오른쪽을 [긁어] 보시라! 앞의 것이 정답입니다^^

이 책에도 옥에티가 있었으니...237쪽에 '술 익는'의 발음을 [수릭는/술릭는]이라고 적어 두었는데, [수링는/술링는]처럼 고쳐야 옳다. 요정도 실수는 누구나 한다.^^
그리고 발음 문제는 정답이 없는 경우도 많다. 표준발음은 서울 사람들을 기준으로 삼는데... 정말 서울 사람들이 그렇게 발음하는지... 몹시 궁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걸 따지자면 인생이 너무도 짧을 것이다. 한 가지 예만 들자면, 나는 서울 사람들이 김밥을 [김:밥]으로 올바르게 발음하는 걸 들은 적이 없다. [김빱]이라고 고 이쁜 더 자두도 노래하지 않았나 말이다.(걔가 서울 사람인진 모르겠지만...)

날마다 쓰고 듣는 우리말이지만, 고학력자들도 바르게 쓰는 데는 자신이 없을 것이다.
모두 가르치지 않은 교사들 잘못이다.
그렇지만 [리콜]해서 A/S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런 책 한권 정도 줄을 쳐 가면서 읽으면, 문법 책, 맞춤법 책 재미 없었어도 조금은 나아지리라 믿어서 주례사 비평에 갈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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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7-02-24 15: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 글샘님이 맞춤법에 관심이 많은 것이 그저 국어샘이기 때문만은 아니었군요..
보관함으로 넣습니다.

글샘 2007-02-24 2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상들이 지킨 언어라서 소중하다는 둥, 과학적으로 만든 맞춤법이라는 둥, 뭐든지 신성시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합리적인 규칙으로 만든 맞춤법을 널리 알리고 가르치고, 맞게 쓰는 일도 중요한 일 아닐까요?

잘잘라 2008-02-02 2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믿음 가는 추천 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

안경이 2018-01-03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춤법 추천책˝으로 검색을 하다가 들어왔습니다. 딱이구나하는 마음이들어 구하려하니 절판인데, 혹시 다른 관련책을 추천 부탁드려도 될지요? 다른 책추천도 도움이 많이 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글샘 2018-01-03 12:37   좋아요 0 | URL
이수열의 ‘우리말 바로쓰기‘ 같은 책도 좋습니다.